에필로그
사무실에 들르기 전, 친구 병원에 갔다가 잠시 짬을 내 백만 년 만의 혼영. <에일리언: 로물루스>를 보았다.
국내에서 에일리언 시리즈가 최초로 상영을 했던 것은 87년인가.. 시리즈 순서대로가 아니라 에일리언 II 가 먼저 개봉을 했었고, 그 이후에 몇 년이 흘러 에일리언 I 이 뒤늦게 개봉을 했더랬다. 그때부터 에일리언 시리즈의 리플리 역을 맡았던 우리의 히로인 '시고니 위버' 누님은 '린다 해밀턴'이 연기한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사라 코너와 함께 헐리웃 영화 역사상 최고의 여전사 캐릭터의 지위를 지금까지도 공고히 하고 있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샤를리즈 테론’이 연기한 퓨리오사도 근래 들어 꽤나 인상적인 캐릭터였지만, 역시 두 분 누님의 카리스마를 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번에 개봉한 <에일리언: 로물루스>는 이 에일리언 I 편과 II 편의 사이 시점에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었는데, 이후의 에일리언 영화들이 방향을 잃고, 프레데터랑 대결시키고 하면서 그동안 배가 산으로 많이 갔던 것에 비해, 초창기 I, II 편에서 보여준 특유의 미장센을 다시 보게 된 듯하여 반가웠다. 폐쇄된 공간에서의 어둡고 눅눅한, 뭔가 스멀스멀 찐득하게 올라오는 공포감을 잘 재현한 듯. 회사의 이익과 목적을 우선시하는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갈등요소 역시 긴장감을 잘 유지시켜 주는 장치로 작용한다. 특히 시고니 위버가 나왔던 I 편의 노스트로모호에 탑승했던 안드로이드 애쉬(Ash)가 다시 등장한 것이 반가웠다.
이 영화 시리즈의 주인공 외계 생명체 '에일리언'은 그야말로 극강의 생존 병기로 등장한다. 왕성하고 빠른 번식력과 어떤 숙주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각각 그 숙주의 특성을 닮은 제노모프가 등장한다. 심지어 그들의 강력한 산성 혈액은 강철보다 강할 것이 틀림없는 우주선의 벽과 바닥조차 순식간에 죽처럼 녹여버리며, 진공의 우주 공간으로 방출되어도 죽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 에일리언을 보고 있다 보면 태초에 신들이 실수로 너무 자신들의 능력을 똑 닮은 존재를 만들어 버려 그 강력함에 우려를 표하고 제거하려고 하나, 제거조차 쉽지 않아 서로 끊임없이 싸우게 되는 타이탄 거인족과 같은 류의 고대 신화를 떠올리게 된다.
실제 머나먼 우주, 타 은하계까지 갈 것도 없이 지금 우리 태양계 안에서도 생명체 존재 가능성이 대두되어 있는 목성의 위성 엔셀라두스나 토성의 위성 타이탄 같은 곳들이 있다. 엔셀라두스의 경우에는 두꺼운 얼음 아래에 소금기가 있는 액체 바다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그 바다의 수량은 지구보다도 훨씬 더 많다고 한다. 추위로부터 차단된 깊은 곳의 바다가 있다면, 그곳은 비록 태양빛을 받지 못하더라도 지구의 심해 열수구 같은 자체적인 열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상상해 보자면 엔셀라두스의 두꺼운 얼음 지각 속 드넓은 바다에 지구와 비슷한 생명체들이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겠다.
그러나 타이탄의 경우에는 지질활동이 있어 지구와 유사한 지질환경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98% 이상의 질소와 탄화수소로 가득 찬 너무나 추운 팔한지옥과 같은 곳이다. 지구와 같은 바다와 강, 삼각주 등의 형태가 있지만 그곳을 채우고 있는 것은 물이 아니라 액체 메탄과 에탄인 것이다. 이런 곳에 지구와 같은 유형의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을까? 이런 곳이야말로 에일리언 제노모프 정도의 극강의 생명체는 되어야 서식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계속 반복되는 얘기이지만, 우주의 광활함 속에서 지구는 단지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다. 칼 세이건의 의견으로 머나먼 곳을 항해하던 보이저의 기수를 돌려 한낱 먼지처럼 보이는 '지구'의 사진을 찍어 전송했고, 그가 이 표현을 사용한 이후, 우리는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보잘것없고 연약한 지를 더욱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작은 점이 현재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생명의 요람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더욱 큰 책임감을 안겨준다.
현재 지구의 상황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무분별한 자원 채취, 환경 파괴와 오염, 온실가스 방출로 인한 기후변화 가속화 등 자연적이지 않은 인류의 활동이 지구 생태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우리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류의 미래, 그리고 지구와 우주와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인간의 기술적 발전이 가져올 변화를 상상해 볼 때, 포스트 휴먼의 개념을 고려하여 인류와 지구, 그리고 우주와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고자 하는 노력이 어째서 이토록 어려운 것일까. 우리가 지금 어떤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류의 '인간다움'에 대한 의미는 어떻게 변화해 갈 것인지, 그리고 우리의 존재가 우주 속에서 어떻게 확장되고 진화해 갈 것인지는 너무나 궁금하다.
우주 탐사와 인간 존재의 확장
인류의 우주 탐사는 단순히 물리적 영역의 확장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적 확장을 의미한다. 지구 밖으로 나아가는 것은 우리의 인식, 지식, 그리고 존재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주 탐사 기술이 더욱 고도화되어 진행됨에 따라, 우리 인류는 어떻게 확장되고 변화해 나갈 것인가.
첫째, 인식의 확장을 들 수 있겠다. 우주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의 확대는 우리의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발견하고, 오리엔트에 탐닉하며 그들의 세계관과 권력을 확장시켜 나갔듯이 우주탐사가 진화할수록 인류는 지구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점차 우주적 관점에서 존재와 생명을 바라보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둘째, 신체적 적응의 문제가 있겠다. 지금도 열심히 연구 중이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한 무중력 상태, 방사선 노출 등의 우주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인간의 신체는 생물학/유전학적으로 진화하거나 혹은 기술적으로 보완될 것이 분명하다. 이는 여러 영화에서 보여주듯이 점진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인간'을 탄생시킬 수 있겠다.
셋째, 고도의 기술적 융합에 따라 인류의 능력과 경험이 확장될 것이다. 우주 탐사를 위해 발전된 기술들은 인간의 능력을 크게 확장시켜 가령 원격조정이나 인공지능과의 협업, 가상현실 등 여러 방법을 통해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는 경험과 활동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넷째, 문화적 다양성 증대 및 윤리적 진화가 수반될 것이다. 다른 행성에 정착한 초기 이주 집단에게는 지구에서의 문화나 규칙은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당장은 '생존'이 화두가 될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이주한 행성에 적응하면서 그 행성에 맞는 독특한 문화와 사회구조를 발전시켜 나갈 수밖에 없다. 또한 가용 자원의 극한적 제약, 기후 등에 있어서의 돌발상황이나 알 수 없는 위험 앞에서 인류는 새로운 도덕적, 윤리적 기준을 정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인류 문화의 다양성을 크게 증가시키고, 지구에만 한정되어 있던 '인간'이라는 개념의 재정의를 요구하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초기 이주민이 전멸하지 않고 인류가 다른 행성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게 된다면,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변화가 될 것이다. 이럴 경우 지구와 인류의 운명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긍정적으로는 다른 행성 정착을 통해 얻은 기술과 자원을 활용해서 지구의 환경을 복원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지구 자원의 채취에 대한 압력이 줄어들어 인류는 기후변화의 위기에서 벗어나고 생태계를 회복하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위의 예측은 확률적으로는 가능한 이야기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반복되어 온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너무나 낙관적인 시나리오라고 판단된다. 지구는 새로운 이주처에 대한 기대와 환상으로 더욱 '버려진 행성' 취급을 받게 되면서 어차피 새로운 행성으로 가면 되니까, 이제 지구의 자연과 기후가 파괴되는 것에 대한 걱정을 덜고 오히려 자원 채굴과 기술 발전에 더 올인하여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지구의 자원을 새로운 이주 행성의 개발에 활용하면서 지구는 더 빠른 속도로 망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영화 ‘엘리시움’처럼 선택받은 소수의 부유한 권력자들과 그들과 연이 닿은 사람들, 이주 행성에서도 필수적으로 필요한 기술 및 전문인력을 제외한 대다수 - 아이와 여성, 노인들을 비롯한 다수의 인류는 파괴되어 가는 지구 위에서 오염된 공기를 마시며 하루하루 버티다 스러져 갈 수도 있지 않을까. 그야말로 최악의 시나리오인데, 어찌하여 이 시나리오에 대한 신빙성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인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당장 내가 죽기 전에 일어날 일은 아니라고 치부하지 말고, 그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대비하고 그에 맞는 시스템과 규칙, 윤리적/제도적 기반을 서둘러 만들어 가야만 한다.
이는 바로 우리들의 다음 세대에서 현실로 닥쳐올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성찰 없이 기술만 먼저 발전했을 때, 마치 어린아이의 손에 권총을 쥐어준 것처럼 어떤 비극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른 관점으로는 인류가 다른 행성에서 성공적으로 생존하게 된다면, 이후 장기간에 걸친 변화이겠지만 결국에는 신체적 진화가 일어날 것이다. 지구와는 다른 이주 행성의 중력과 대기 조성, 우주 방사선 수준 등에 적응하면서 인체는 큰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가령 이주 행성이 지구보다 저 중력 환경이라면 인류의 키는 더 커지고 근육량은 적은 체형으로 진화할 수 있겠다.
또한 다른 행성의 일주기, 연주기에 맞춰 생체 리듬이나 생리학적 변화도 수반될 수밖에 없겠다. 새로운 환경에서의 영양 섭취와 대사 과정의 변화에 대한 연구와 적응은 이주 행성에 있는 의사나 생물학자들의 최우선 연구과제가 되지 않을까.
그런데 아마 까마득한 훗날이 될 수는 있겠지만, 이런 변화가 진행된다면 그렇게 오랜 기간 다른 행성에서 진화한 인류를 여전히 '인류'라고 부르고 지구의 인간과 동일하게 볼 수 있을지에 대해서 아래와 같은 여러 가지 윤리적, 철학적, 생물학적 물음이 따라올 수밖에 없지 않을까?
먼저 얼마나 많은, 또는 어떠한 유전적 변화가 일어났어야 새로운 종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인지 말이다. 특히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당장의 생존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질병 예방, 수명 연장, 신체능력 향상 등을 위한 유전자 편집 및 조작 기술을 활용하려 할 공산이 크다.
또한 이주 행성의 사회가 더 이상 지구 문명과의 연결성이 유지되지 못하고 끊어진다면, 그들을 여전히 '인류'라고 할 수 있을지? 만약 새로운 행성에서의 적응과정의 결과로 이주민의 인지/생체 능력이 기존의 인류와 크게 달라진다면, 그들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인간과 기계의 융합이 가속화할 경우,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서부터 '기계'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또한 증강된 능력을 가진 사이보그 같은 인간과 그렇지 않고 평범한 기존 인간 사이의 불평등 문제는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진다.
만약 인간의 의식을 디지털 형태로 저장하고 전송하는 기술이 발전하면 논의의 차원은 더욱 심각해진다. 이는 서식지의 변경 차원을 넘어서 우리 인류의 '자아'와 '존재'에 대한 이해 자체가 변화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의식의 디지털화는 물리적 신체의 한계를 넘어선 존재 방식이 가능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인류가 생물학적 죽음을 극복한 영생의 길로 접어드는 것인지, 당장 디지털화된 의식만을 여전히 '인간'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인지, 의식의 복제까지 가능해질 경우 그와 관련된 개개인의 정체성 문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지 말이다.
우주탐사 및 이주의 시대가 도래한다면, 이러한 위와 같은 질문들은 단순히 생물학적 분류의 문제를 넘어 우리가 '인간'과 ‘인류’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고 이해하는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함을 요구한다.
우주 시대의 도래와 함께, '인간'과 '인류'에 대해 더 포괄적이고 유연한 정의를 발전시켜 서로 상생하며 그야말로 희망의 우주 개척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지구와 새로운 이주 행성 및 위성들 간에 집단 이기주의만 팽배해 각자의 생존이 먼저이고, 시기와 반목으로 가득한 새로운 전장만 확대될 것인지는 오롯이 우리 인류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기후 및 생태계 변화에 따른 지구 인류의 적응
기후 변화가 계속됨에 따라, 지구에 남아 있는 인류의 미래는 둘 중에 하나가 될 것이다. 지구 환경을 예전처럼 복구하거나, 망가진 새로운 지구의 환경에 적응하거나.
첫 번째 긍정적인 시나리오는 지구환경 복구 기술의 발전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기후변화를 막아내고 지구 생태계를 되살리는 것이다.
이를 위한 기술 기반으로는 탄소 포집과 저장 기술의 고도화, 기후조절 기술 (인공강우, 태풍의 강도 조절이나 경로 변경 기술 등),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재생 가능 에너지로의 완전한 전환, 기타 국제적 공조 하의 대규모 생태계 복원 프로젝트 등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두 번째는 암울하지만 그래도 인류가 멸종하지는 않고, 생명의 생존에 척박하게 바뀐 변화된 지구의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시나리오다.
극한의 기후에 견딜 수 있는 주거시설 조성, 유전자 조작을 통한 인체의 환경 적응력 향상, 식량 생산기술의 혁신 (도시농업, 수직농업, 인공고기 등 실험실 배양 식품), 물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첨단 정수 및 담수화 기술 등 현재 이미 연구 중이거나 앞으로 연구해 나가야 할 과제들이 많을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어느 한쪽으로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이 두 가지 접근법이 동시에 추구될 가능성이 높다. 진인사 대천명인지라, 인류는 지구환경의 복원을 위해 노력하면서도 악화되어 가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기술도 개발해야만 할 것이다. 결국, 기술의 영향은 기술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고, 따라서 기술 발전과 함께 윤리적, 환경적 고려사항을 함께 논의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겠다.
창백한 푸른 점: 미래를 향한 사색
지금까지 인류의 발자취를 따라 지구를 돌아보고, 그 무수한 역사의 순간들을 돌이켜 보며 이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 깨달아 왔다.
우주의 무한함 속에서 보잘것없는 ‘창백한 푸른 점’, 그 속에 사는 우리는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자원과 환경을 무지막지하게 소모하며 성장해 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성장의 한계점에 도달해 그 끝자락에 서 있는 느낌이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이 '창백한 푸른 점' 위에서 살아온 인류는 이제 그 점 너머의 우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과연 인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진화할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 것인가? 우리는 지구를 되살려 낼 수 있을까, 아니면 망가진 지구를 떠나 새로운 터전을 찾아 나서게 될까? 만약 새로운 터전을 찾아낸다면 우리는 여전히 지금의 인간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기술의 발전과 인간 영역의 확장이 우리를 새로운 차원으로 인도하고는 있지만, 동시에 그로 인해서 인간성과 지구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하는 순간에 도달한 것은 아닌지 자문해 봐야 할 시점이다.
미래의 기술과 인류의 진화가 우리를 어디로 이끌든 간에, 파멸과 멸종의 길만 피할 수 있다면, 그때에도 우리는 아마 여전히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이렇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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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