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푸른 점을 인류는 완벽히 이해했는가
인류는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지구의 최상위포식자가 되었고, 에너지 생산을 위한 화석연료의 무분별한 남용으로 기후 환경마저 망치고 있다. 또한 몸살을 앓고 있는 해양 쓰레기와 미세 플라스틱의 역습이 우려되는 해양 오염의 주범이기도 하다.
하지만 심각한 피해를 끼치고 있는 현실적인 영향에 반해, 우리 인류에게 지구 표면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바다는 여전히 그 자체로 두렵고 신비로운 존재이다. 드넓은 바다의 심연과 심해는 우주만큼이나 인간에게 도달하기 어려운 미지의 공간이 것이다.
인간은 우주 탐사를 통해 경외감을 느끼고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상상하며 이를 과학적, 철학적으로 탐구해 왔지만, 정작 지구에 존재하는 심해라는 '외계'에 대해서는 여전히 탐험이 부족하다. 심해는 그 어마어마한 무게와 압력, 차가움 속에서 인간이 감히 침범하기 어려운 곳이자, 과학적으로 가장 신비로운 영역인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우주 탐사와 심해 탐험은 다를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비슷한 두려움과 경이로움을 품고 있다. 인간이 바다에 대해 탐험하고 탐구한 부분은 여전히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고, 그 일부분의 탐사로 우리가 알게 된 것은 그 안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생명체들이 존재한다는 것. 이 생명체들은 우리가 지구에서 알던 통상적인 생물학 법칙을 넘어서는 존재들일 수 있으며, 우리 인류와의 관계에 있어 새로운 철학적, 윤리적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심해에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생존하는 놀라운 생명체들이 발견되고 있다. 심해의 생명체는 고압, 저온, 무산소의 환경에서도 살아남아 생존하고 있으며, 그 자체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생물학적 특성을 보여준다.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마리아나 해구 같은 깊고 깊은 심해 미지의 영역에 인간이 보지 못한 새로운 통로나 공간이 있어 그곳에서 지능이 발달한 진화적 존재가 살고 있을지 누가 알겠으며, 누가 단호히 그럴 리 없다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혹은 수만 년 전에 이미 지구에 찾아와 고대 인류에게 불이나 도구 제작 등 문명의 씨앗을 알려준 외계인들이 자신들의 일종의 과학실험 연구를 계속하고자 이제는 심해로 숨어들어 자신들이 계도해 주었던 저 인류라는 ‘종’이 어떻게 진화해 나가는지 관찰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를 일이다.
마치 쥘 베른이 쓴 소설 <지구 속 여행>처럼, 지구 속 지하 깊은 곳의 속이 비어있고 그 내부에는 중력이 거꾸로 지구 바깥쪽을 향하게 작용해, 지상과 유사하게 생명이 살 수 있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지구공동설(地球空洞說)과 같이 심해 밑바닥 어딘가에 깊고 넓은 동굴이라던가, 이상 중력이 작용하는 미지의 공간이라던가, 혹은 시리우스와 연결되어 있는 포털이 존재한다던가 하는 상상은 말 그대로 상상일 뿐이지만, 거꾸로 그것이 부재한다는 것을 명확히 증명할 길도 없는 것이 달과 화성을 탐사하고 있는 현재 인류의 과학기술 수준이다. 그만큼 심해 탐사는 어렵다.
만약 인류의 과학이 더 진보해서 아직까지 탐험하지 못한 심해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된다면, 그곳에서 결국 최소한 ‘고래‘ 이상으로 고도의 진화를 이룬 다른 생명체를 만난다면, 인간은 이들과 공존할 수 있을까? 심해를 더 깊이 탐험하며 이런 생명체들과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아바타 2: 물의 길> 영화에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툴쿤(Tulkun)’이란 외계 종족이 등장한다. 잘 알다시피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영화감독, 제작자이자 33번이나 마리아나 해구 등 심해 탐사를 했던 해양 전문가이다. 2012년에는 그 스스로가 설계 단계에서부터 직접 참여한 1인 잠수정 '딥씨 챌린저'를 타고 지구에서 제일 깊다고 알려진 북태평양 마리아나 해구의 챌린저 해연(Challenger Deep)을 홀로 탐사하고 온 바 있다. 그런 그가 설정한 툴쿤은 지구의 고래에 대응되는 거대한 해양 생명체로, 판도라 행성에서 가장 큰 동물이며 현재까지 등장한 판도라의 생명체들 가운데에서 나비족과 함께 지적으로 진화한 유이한 고등 생명체이다.
툴쿤같이 고도로 진화하진 못했지만 우리가 심해에서 발견한 생명체들은 외계 생명체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힌트를 제공한다. 인류는 외계 생명체를 찾기 위해 우주로 나아가고 있지만,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극한 환경은 인류가 접근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미 지구 안에 있는 ‘외계’와 다를 바 없다.
그리고 그런 극한 환경 속에서도 수많은 생명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존재들의 생명 메커니즘은 우리에겐 외계 생명체와 마찬가지의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예를 들어, 빛이 없는 심해의 열수 분출구에서 발견된 미생물들은 태양 에너지가 아닌 화학적 에너지를 이용해 생존하고 있는데, 이는 외계 생명체의 가능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겠다.
이는 또한 우리가 새로운 생명체를 발견하고 탐구하는 데 있어 반드시 우주로 나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지구의 극한 환경에서 생존하는 생명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다른 환경의 행성에서도 어떠한 형태로든 생명이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심해 탐사는 외계 생명체와 관련된 연구의 중요한 일부분으로서, 지구 생명체의 다양성을 넘어 다른 세계에서 생명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은 점차 심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는 있지만, 그 공간을 정복하는 것은 우주 탐사만큼이나 많은 어려움과 함께 또한 윤리적 문제 역시 동반할 것이다. 인간이 심해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고 그곳을 자연 그대로 유지하면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까. 인간의 상업적 활동으로 인해 심해 역시도 심각히 오염되거나 파괴될 경우, 그 안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의 존재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과학 및 심해 탐사기술의 발전뿐만 아니라 그와 동시에 이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산업혁명 이후 고작 200~300년 정도의 기간 동안, 인류는 지구에 엄청난 해악을 끼쳐왔다. 초창기에는 우리가 쓰는 화석연료나 생명에 해로운 각종 화학물질들의 유해성과 장기적 영향에 대해 몰랐었다는 무지의 면죄부라도 받을 수 있겠다. 하지만 생명과 환경, 그리고 지구의 기후에 인류가 끼치고 있는 나쁜 영향력에 대한 연구가 심화되고 대중적으로도 많이 알려진 지금, 인간이 심해까지도 지구 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어지럽히고 피해를 끼친다면, 이는 인류의 우주탐사 및 장기적인 이주계획에 있어서까지 암울한 미래를 예견하게 될 것이다.
심해 탐구는 단순히 자원 탐사 및 생물학적 발견을 넘어 인간 존재와 관련된 철학적 문제들도 제기한다. 심해는 인간의 인식을 확장시키는 공간이다. 우주의 드넓은 광막함이 인간에게 자신의 초라함과 미약함을 일깨워 주었다면, 끝 모를 심해의 깊이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마주하게 한다. 이 두 공간은 서로 다른 차원에서 인간 스스로를 탐구하게 하고, 우리가 그동안 탐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자극한다. 인간은 무언가를 알면 알수록 더 많은 미지의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심해 탐사는 인간에게 겸손함을 가르치고, 우리의 존재가 그저 얇디얇은 지각, 지구의 표면 위에 머물러 있는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을 준다. 칼 세이건 교수가 우주를 보면서 느꼈던 겸허함과 같은 그런 깨달음을 우리는 망망한 바다와 그 속을 알 수 없는 심해의 존재 앞에서 똑같이 느끼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심해에 대한 탐험 자체의 한계를 경험하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경외감을 소중히 간직해야 한다.
심해는 그 자체로 우주와 같이 인간에게 끝없는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다. 우주와 심해는 그 자체로 신비로운 경계선이며, 이 경계선을 넘기 위해서 인류는 기술뿐만 아니라 이 경외감과 깨달음을 윤리적, 철학적으로 함께 승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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