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났단다.
아직 남자친구의 군 생활이 반년쯤 남아 있는데, 얼마 전에 헤어졌단다. 자기가 먼저 이별 통보를 했다고. 대학 1학년 때부터 사귀었으니 어느덧 3년. 제법 오랜 시간을 함께한 녀석이었기에 그 결정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을 터다.
어쩌다 헤어졌냐고 물어보니 싸웠단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끝내 알 수 없었지만, 다툼 중에 자기한테 언성을 높이고 욕까지 했단다. 그래서 헤어졌다고.
그 말을 듣자마자 와이프와 난 약속이라도 한 듯,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잘했다고. 우리 딸 다 컸다고.
모든 것을 부모에게 기대고 의존하던 아이가 어느새 성인이 되어,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스스로의 판단으로 ‘헤어질 결심‘을 했다는 사실. 그 나이에 내리기 어려웠을 단호한 결단을 미련 없이 실행에 옮긴 딸아이가 기특하고 대견하다.
그러면서도 자꾸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무슨 일로 다투었을까. 처음엔 아마 아주 사소한 일이었겠지. 그 작은 불씨가 어쩌다 그렇게 커졌을까. 그 녀석은 왜 그 순간 그렇게까지 했을까. 어떤 말이 나왔을까. 물론 아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해주지 않을 테지만, 이런저런 상상의 사연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친해지고 깊어진 상대와의 관계가 어느 순간 틀어지고 그 관계를 쉽사리 회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너무나 편해진 이유로 상대방을 서서히 자신과 동일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걸 당연히 알겠지, 당연히 들어주겠지 하면서 기대치는 한껏 높아지게 마련.
그렇기에 부모든 부부든 형제자매든 친구 사이든 그 관계에 걸맞은 적절한 거리 유지는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성인군자가 아닌 이유로, 위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가령 서로 존댓말을 쓴다던지 어떤 상황에서는 일단 어떻게 하자고 미리 약속을 하는 등 서로 간의 규칙을 마련하는 실천적인 대안이 현실적인 솔루션이 될 수 있겠다.
감정은 언제나 앞서고 사랑은 언제나 뜨겁다.
그 사랑이 상대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것이 아니라 태워버리지 않도록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하는 법.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 특히 젊은 시절 뜨거운 청춘의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뜨겁고 거친 청춘에 다가온 질풍노도와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순간적인 실수나 그에 따른 관계의 파탄을 막아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나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알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올바른 ‘태도‘에서 시작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알량한 자존심이 아닌 진짜 자존감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상대를 사랑하고 이해하려는 건지, 아니면 내 이기심을 채울 수 있는 도구나 곁에 두고 소유하고 싶은 트로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처음엔 외모나 목소리 같은 생물학적인 이끌림으로 시작되었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한 사람의 인생과 생각에 대한 공감과 존중으로 그 마음이 깊어지고 있는지.
사랑의 도파민에 흠뻑 취해 있을 때 이렇게 상대와의 관계를 돌아보며 이런 객관적인 인식을 하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다.
수십 년을 함께 산 부부 사이에서도 누적된 갈등의 씨앗에 사소한 트러블이 기폭제가 되어 결국 이혼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하물며 법적 책임도 의무도 없는 청춘의 사랑은 오죽하랴.
대부분의 싸움은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다. 작용과 반작용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태도가 무너지고, 어느새 처음에 왜 다투게 됐는지는 까맣게 잊은 채 서로가 서로를 이겨먹으려는 마음만 남는다. '이번에 봐주고 물러서면 평생 이런 식이 되겠지..' 하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주도권을 가져오고자 하다가 그렇게 분위기도, 입도 험악해진다.
험한 세상이다. 스토킹, 데이트 폭력, 치정에 따른 살인.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이 매일 뉴스를 채운다. 그래서 딸아이들에게 종종 이렇게 말하곤 한다. 한 명 만나 사랑한다고 덥석 결혼하겠다 고집부리거나 무작정 매달리지 말고,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을 두루두루 만나보라고.
갓 성인이 된 딸아이의 청춘 로맨스를 마냥 응원만 해주기 어려운 이유다.
헤어진 남자친구는 내가 이름까지는 알던 녀석이다. 자세한 연애 이야기는 엄마랑 조금 나눈 모양이지만, 우리 아이에게 꽤나 공을 들이고 잘해줬다고 들었었다.
늦은 시간, 아이가 먹고 싶다는 것을 엄마가 밤이 늦었다고 안 시켜주면, 군대에 있는 그 녀석과의 통화 중에 그 얘길 툴툴대며 전하고, 그럼 남친 녀석이 대신 배달앱으로 주문해서 집으로 보내줬다 하니 말 다 했다. 그 부모님이 알았다면 혀를 끌끌 찼을 일이었을 테지.
이 말을 들었을 때 난 혼자 피식 웃었다. 같은 일을 두고도 누구는 고마워하고, 누군가는 못마땅해한다. 자신의 입장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느껴진다는 게 어찌 생각해 보면 참 우습다.
내 아이가 부모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그토록 소중한 존재였다는 사실. 기분 좋은 일이면서도 처음엔 낯설고 얼떨떨하고.. 뭐랄까, 딱 꼬집어 설명하기 어려운 어색하고 묘하게 복잡한 기분이었다.
몇 달 전엔 휴가 나온 남자친구를 만나 한아름 꽃다발을 들고 들어오기도 했었는데.. 왜 그랬을까.
이제는 끝난 이야기. 우좌지간 언성을 높이고 욕까지 했다니, 당연히 아웃이다. 우리 아이가 먼저 끝냈고, 뒤늦게 연락하며 매달리는 그 녀석에게 단호히 마침표를 찍었다는 사실에 그저 안도한다. 이 녀석이 벌써 이렇게 컸나. 한층 성숙해 보이는 딸아이의 등을 조용히 두드려 준다.
그러면서도 내심 한편으론, 얼굴도 모르는 그 녀석이 조금은 안쓰럽기도 하다. 아마 지금쯤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하며 후회하고,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처 속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바라건대 그 녀석도 이번의 경험과 아픔을 통해 한 뼘 더 자라서 조금 더 성숙한 어른이 되길, 언젠가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나 예쁜 사랑을 하길..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