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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크슈타인 Jun 06. 2024

꿈의 대화

무논리, 상징체계, 의식의 흐름.. 그냥 개꿈!


짧은 시간 긴 꿈을 꾸었다.  


제안서 작업을 하다가 눈알이 빠질 것 같아 잠시 눈을 붙였더니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꿈속에서 뭔가 식겁해서 깨어난 듯.  기억이 명료하진 않지만, 그나마 꿈에서 깨었을 바로 지금이 꿈에 대한 기억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을 때라는 것을 잘 알기에, 떠오르는 의식의 흐름대로 꿈 이야기를 적어본다.  여러모로 버라이어티 한 꿈이다.


학원을 갔다. 무슨 학원이었는진 기억이 안 난다.  뭔가 산뜻한 관심을 끄는 광고 전단을 보고 기대하며 갔던 것 같다.  데스크에 있는 상담하는 여직원 분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잠시 좀 기다리라며 자리를 뜨더니 그 직원은 한참이 지나도 당최 오질 않는다.  뭔가 수강신청 내지 가입을 해야 하는 것이었는지 내 신분증도 줘버린 채였는데 말이지.


그 와중에 '은행도 아니고 대체 무슨 학원인데 신분증을 달라고 하지?' 하며 의아해했던 것 같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열이 올라서 여기 원장 나오라 하며 성질을 좀 냈더니 B사감 같은 나이 지긋하신 분이 나와 사과를 하기에 그 여직원분 오는 대로 연락을 달라 전하고 나왔는데, 집으로 가는 길에 그 여자를 만났다.


꿈의 세계, 무의식의 세계


그녀는 두 손에 가득 뭔가를 사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꿈이란 게 참 희한한 건, 당연히 신분증을 돌려받으며 '상담을 하다 갑자기 어디를 갔다 온 거냐' 하면서 따끔히 한마디 했어야 했건만, 전혀 그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우리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더니 내가 뭘 작성해 줘야 할 게 있다며 같이 우리 집으로 간다고 한다.


내 딴엔 손님이 온 김에 과일이든 뭐라도 좀 대접해야 할거 같아 마트에 가려고 나왔다. 그런데 어느새 바깥은 눈 내리는 겨울에 심지어 난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를 탄 채였다. 힘들게 과일과 음료수를 몇 개나 샀나..


마트에서 나와야 하는데 작은아버지와 외삼촌을 만났다. 본가와 외가 쪽.. 평소에 같이 만나실 일이 전혀 없던 분들이다. 두 분 모두 지병으로 일찍이 돌아가신 터였다.  이상한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어르신들 집에 가져가시라고 선물을 좀 사드리고 나왔더니 어느덧 내 두 다리는 다시 멀쩡한 채였고, 두 분께 인사드리고 헤어진 후 건너편에 주차된 내 차로 가서 운전을 한다.


난 어느덧 짐을 잔뜩 실은 트럭을 차 뒤에 매달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분명 마트에서 간단한 장을 보고 나왔는데 갑자기 이사라도 가고 있는 듯한 신(scene)으로 전환..  그리고 집 앞에 다 와서 갑자기 황당하게 나타난 계단이 보인다.  각도가 40도는 족히 되어 보이는데, 무슨 배짱인지 포기를 안 하고 그냥 차를 몰고 오르기 시작한다. 덜커덩 덜커덩.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장소는 어릴 적 살던 이문동 집 앞 풍경과 비슷한 듯하다. (할머니는 항상 그 계단을 힘들게 오르내리시면서 일본식으로 '가이당(かいだん)'이라 부르셨었다).  절벽을 타는 심정으로 결국 뒤에 매달린 트럭까지 무사히 올라왔다.


시지프스의 계단, 오르기 힘든 가이당


집에 들어가니 웬걸. 아까 그 학원에서 같이 온 여직원이 여전히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난 그녀를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집인 듯 편안하게 누워 있었다. 잠깐 마트에 다녀온다고 해놓고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는데, 마치 아까 학원에서 그녀가 날 기다리게 한 것에 대한 반발이랄까, 이번엔 내가 그녀를 오랫동안 기다리게 한 것이다.


그 뒤의 몇 가지 장면들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어느새 우린 섹스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누군지 모를 어떤 사람이 갑자기 방문을 열어젖혔다. 당황한 난 누군지 급히 돌아봤고, 서로 눈이 마주쳤는데 세상에나! 누구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나나 그 친구나 불시에 들이닥친 그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히 그냥 하던 일을 계속한다. 나의 리비도(Libido)가 자신의 세상에서 각성이라도 한 것인 양 말이다.


리비도의 표출 vs. 그냥 개꿈


그리고는 동생을 만났다. 어느새 그녀는 사라지고 없었다.  동생 녀석과 일 얘기인지 한참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다 오토바이를 타고 둘이 곧잘 가던 바(Bar) 앞에서 멈췄다.  오토바이는 그 녀석이 몰고 온 것 같았다.  한잔 하려고 들어갔는데 곧 누가 다가와 아는 척을 한다.


오래전 직장이 있던 구로디지털단지에서 잘 알고 지내던 주점 사장이다. 젊었던 시절 한때는 종로에서 음식점도 여러 개 운영하면서 자칭 종로 바닥을 휩쓸었다던 친구다. 그렇게 잘 나가던 와중에 불의의 사고로 어린 자식을 잃고 몇 년 동안 슬퍼하며 폐인처럼 지내다 주변을 정리하고 그 동네를 떠나 다시 자리 잡은 곳이 구로디지털단지 앞 먹자골목이었다.  


그 사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한잔 하시게 좀 이따 보자며 얼음사탕 같은 조그만 사탕 봉지를 같이 있던 동생에게 주고 간다. 파란색 사탕조각들, 몇 개 없어서 그런지 그 새파란 색이 유난히 이쁘게 보였다. 여러 나라 해외의 과자나 캔디류를 파는 샵에서 봤던 것 같기도 하고.  


이 녀석이 그걸 뜯어서 입에 털어 넣는다. 난 냅다 동생의 뒤통수를 한대 갈겼다. 먹을 게 있음 맛보라고 형님을 먼저 줘야지 4가지 없게 먼저 입에 넣느냐 일장 훈계..  봉지를 열어 맛이나 보자고 남아 있는 사탕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2~3초나 지났나.. 경찰관 한 명이 다가오더니 우릴 좀 보잔다. 난 동생이 헬멧을 안 쓰고 오토바이 운전을 해서 딱지를 끊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마치 음주단속이라도 하듯이 입에 뭘 갖다 대며 불어 보란다.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인지.. 단속반에 이끌려 경찰서로 들어갔다.  우리가 먹은 사탕이 마약이란다.  우리가 마약류 관리법이니 뭔지를 위반해서 현행범으로 체포된 거란다.  아오.. 너무나 억울했다. 사탕인 줄 알고 한 조각 입만 댔는데.


꿈의 미로 (갈림길)


찰나의 순간 패닉이 왔다. 감옥에 들어가 있는 동안 가족은? 회사는? 아, 내 경력이 여기서 다 무너지는구나 싶었다.  그 와중에도 사탕 봉지를 주고 간 그 주점 사장을 고해바치지도 않았고, 밉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진술할 때 그 인간 얘기를 하지도 않았는데, 아마 의리라도 지키는 듯 일부러 말을 안 한 건 아니었고, 어느새 내 꿈의 의식에서 단절된 채 그 사장은 까맣게 잊고 넘어간 게 아니었나 싶다.  


그나저나 경찰들이 민생치안에 할 일도 많을 텐데, 어떻게 우리가 잠시 거리에서 얘기를 나누다 사탕을 먹는 걸 보고 단속 내지 검사를 할 생각을 했을까. 이건 함정수사가 아닌가. 혹은 오랜만에 마주친 가게 사장이 어떤 의심을 산 혐의자로 비밀리에 감시를 받고 있던 것이었을까.


이제 와서 따질 일도 아니고, 그저 동생 녀석이 먼저 사탕을 입에 털어 넣을 때 다 먹지 않고 한 조각 남겨져 있던 사실이 원망스러웠다. 이게 대체 무슨 영문인지.


간단한 조사를 받고 우린 감옥으로 갔다. 잠시 대기하는 곳 같았으니 아마 교도소가 아니라 구치소였을 터. 한데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식판은 어디서 받고 청소와 빨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는 것들을 배웠다.  그리고는 잠에서 깼다. 아 땡벌. 욕이 나온다.


경찰서에 잡혀가 놓고는, 경찰 고위직에 근무하고 있는 친한 후배에게도,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어린 시절 절친에게도 기별을 넣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사실. 그것도 매우 기분이 나빴다. 꿈속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인지, 깨고 나서 기억해 보니 그 사실이 기분이 나빴던 건지는 모르겠다. 모든 것이 불분명하다.  아무런 맥락도 없고 의미도 못 찾겠는 꿈.. 괜스레 찜찜하다.


그래, 개꿈이겠지. 오늘은 로또나 하나 사야겠다.



#꿈 #dream #rêve #songe #sueño #sogno #traum #сновидение #夢 #حل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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