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은 연애> 열두 번째 이야기
크리스마스에 차인 일(上)에 이어서...
여전히 오른팔은 마비상태다. 누가 손을 잡아도 느낌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이상한 패닉 상태였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너무 놀래서 아픈지도 모르는 걸 거라고 했는데,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놀래도 그렇지, 쇄골뼈 좀 부러졌다고 이렇게 없는 팔처럼 되다니! 누가 물 잔을 내밀면 습관적으로 오른팔을 움직이려고 의미 없는 몸짓을 하다 왼손을 내밀었다. 양손잡이가 될 것을.
의사 선생님이 뼈를 맞추는 수술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 주면서 수술을 하지 말라고 했다. 수술을 하지 않고 아물게 되면 양쪽 쇄골이 짝짝이가 될 것이며 오른쪽 어깨가 왼쪽에 비해 미묘하게 짧아지겠지만, 이게 싫다고 커다란 수술 흉터를 남기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부러진 뼈 토막이 어긋나게 붙어 있는 거지 벌어진 게 아니라서 그냥 두면 잘 붙을 거라고 했다. 사람은 원래 좌우 비대칭이라 걱정하지 말라고 한 번 더 강조했다.
쇄골이 부러졌다고 석고붕대를 감을 순 없었다. 등 쪽, 견갑골 위로 양쪽 어깨에 엑스자로 걸어 어깨를 고정시키기만 했다. 바른 자세를 잡아 주는 교정기가 이런 느낌일 것 같았다. 나는 상황에 비해 어깨를 활짝 펴고 몹시 당당한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붕대를 너무 세게 감았는지 오른손이 손바닥 주름이 없어질 것 같이 부었다. 무슨 크림빵처럼 보였다. 그래도 제일 괴로운 것은 코를 찌르는 똥물 냄새였다.
병원에 희동이 오빠가 나타났다. 동민이 오빠가 쓰레기 어쩌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쓰레기인지 궁금했는데 내가 물어보기 전에 희동이 오빠의 웃음소리가 먼저 들렸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머리카락 똥냄새 걱정이 사그라들었다. 냄새보다 웃음소리가 더 무안했다.
“야! 너 얼굴이 그게 뭐야? 아 진짜 뭐야? 얼굴이 푸하하.”
“내 얼굴이 왜? … 어!?”
말하는 순간 입술이 왜 이렇게 안 움직여지나 했다. 왼 손으로 만져보니 입술이 코보다 튀어나와 있었고 무슨 손등 만지는 느낌이었다. 턱뼈도 만져지지 않을 만큼 아래위 입술이 부어 있었다. 내 이런 얼굴이 웃기다며 희동이 오빠는 저렇게 큰 소리로 웃고 있는 것이다. 뭔가 머쓱해서 나도 따라 웃고 싶었는데 입술이 잘 움직여주질 않았다. 입술이 안 움직이니 덩달아 눈도 웃어지질 않았다.
“아 이 쓰레기 새끼! 야! 넌 지금 웃음이 나오냐?”
“아! 웃기잖아? 안 웃기냐? 너는? 크크크크. 완전 명란젓이네!! 크크크. 알탕이야 알탕. 크크”
동민이 오빠는 병원비랑 다 계산이 끝났으니 걱정할 건 없다고 했다. 뒤늦게 부은 입술 때문에 다시 의사를 기다려야 했고, 희동이 오빠는 다시 가봐야 한다며 병원을 떠났다. 술을 마셔서 같이 있던 일행의 차를 얻어 타고 왔다 가는 거라고 했다. 그 일행이 궁금해서 자연스럽게 동민이 오빠에게 누군지 물어봤다.
“뭐야? 희동이 오빠 어디 있다가 온 건데? 또… 어디 가?”
명란젓 같은 입술 때문에 동민이 오빠는 이 질문을 세 번만에 알아들었다. 희동이 오빠의 본가는 분당이지만 산울림 소극장 쪽에서 동민이 오빠와 함께 작업실을 쓰고 있었다. 동민이 오빠 분위기를 보니 희동이 오빠는 작업실로 돌아가는 것 같지도 않았다.
“아 몰라! 다시 청담동 넘어간데. 거기 있다 온 거라서.”
“청담동?”
동민이 오빠는 청담동이 층당덩으로 들렸을 것이다. 청담동… 그냥 청담동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냥 비싼 가게, 비싼 카페, 비싼 식당 있는 그 청담동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잘 생각이 안 났다. 뭔가 다른 이유로 익숙했던 동네인데, 뭐더라…
“거기, 희동이 전여친 사는 데잖아. 청담동. 저 쓰레기가 저번에 그렇게 차이고도 다시 매달리더니 오늘 결국 다시 만나기로 했나 보데. 에이 저 쓰레기 같은 놈!”
나는 입술이 부어서 말을 못 하는 건지 그냥 말문이 막혀서 말을 못 하는 건지 판단이 안 됐다.
“전여친 아니, 다시 만난 여친이 술 안 마시잖아. 또 여기까지 운전했다 데려가네. 아 진짜 걔는 어떻게 저 쓰레기를 다시 받아준 거야. 진짜 이해가 안 가네.”
“그러게… 정말 이해가 안 가네…” 진심으로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치? 네가 봐도 그렇지. 저 자식 저거, 딴 여자 만나다가 딱 걸려서 차인 거잖아. 그런데 그걸 또 어떻게 비벼댔길래, 받아주냐 저 여친은… 진짜 대단하다, 대단해.”
더 이해가 가질 않았다. 동민이 오빠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에? 딴 여자?”
혹시나 그 딴 여자가 나인가 싶어서 생각을 해 봤는데, 나는 아니다. 내가 될 수가 없었다. 내가 희동이 오빠랑 처음 잔 날이 언제였더라 돌이켜보니, 분명히 희동이 오빠가 지금 저 전이었다가 다시 현이 된 여친이랑 헤어졌다며 ‘글렌피딕’을 쏜 날이었다. 또, 탄산수에 ‘봄베이 사파이어’를 엄청 섞어 마셨었다. 다음 날, 같이 모텔에서 나와 해장으로 순두부찌개를 사 먹었다. 아무튼 내가 그 딴 여자는 확실히 될 수 없었다.
“아이그… 미옥이 너는 모르지? 저 자식이 그 청담동 여친 만나면서 엄청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고 다녔거든. 그러다 숙대 여자애 하나한테 딱 걸린 거지. 그 숙대 여자애가 청담동 여친 연락처 알아내서 사진 보내고 아주 막장 쇼를 했거든. 청담동 여친도 사람인데 가만있을 수 있겠냐. 그때, 헤어지자고 한 거지.”
“에? 숙대… 여자애?”
지금 부은 입술이나 부러진 쇄골뼈를 최우선으로 걱정해야 하는데, 자꾸 둘 다 걱정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었다. 그렇다고 청담동과 숙대를 우선순위로 올리는 것도 옳은 것 같지 않고, 걱정 우선순위 1위, 2위는 공백이 되었다. 아니, 내 머릿속 자체가 공백이 돼가는 것 같았다.
“야! 더 웃긴 건 뭔 줄 아냐?”
“… 뭔데요? 뭔데?”
“저 희동이 자식! 숙대 여자애 정리한 거 아니다.”
“에?”
“숙대 여자애 계속 만나고 있으면서 청담동한테 정리했다고 구라 친 거라구.”
“에에?”
“놀랍지? 지금 숙대 여자애는 거기대로 또 청담동 완전히 정리된 줄 알걸?”
“이에 에에에?”
“그러니까 저 새끼가 쓰레긴 거지. 왜 너? 어디 더 불편해?”
“에… 아니요…”
나는 어깨를 활짝 펴고 위풍당당하게 앉아서 놀란 얼굴을 숨기지도 못 하고 동민이 오빠가 해주는 이야기들을 다 들었다.
나는… 그러니까 나는... 희동이 오빠가 나를 만날 때 나만 만나는 줄 알았다. 물론 주변에 비밀로 했었지만 말이다. 희동이 오빠가 나를 포함, 몇 다리를 걸쳤는지 셈 해보고 싶지 않았다. 왠지 정답을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저 자식 저거! 나한테 걸린 것만 이만큼이고, 또 더 있을 거야! 내가 촉이 얼마나 좋은데. 요 근래에도 만나는 또 여자가 있었어. 내가 누군지 몰라서 그렇지”
“그게… 가능하구나…”
“너 우리 미옥이! 너는 저런 놈 상종도 하면 안 된다. 알겠지? 그냥 술만 얻어먹자! 알았지?”
“에…”
“그래. 아주 쓰레기니까 너무 가까이하질 말어!”
아까랑 다른 의사 선생님이 와서 내 입술을 진찰했다. 사고 당시엔 몰랐는데 잇몸이랑 부딪혀서 입 안쪽으로 상처가 쪼로록 난 거라고 했다. 다행히 치아도 멀쩡하고 잇몸도 멀쩡하니 시간이 지나면 붓기는 저절로 가라앉을 거라고 했고, 대신 세균 감염을 조심하라고 했다. 병원에서 해 줄 수 있는 조치는 얼추 모두 끝났다. 나는 이제 병원 밖으로 나가도 괜찮았다.
“저… 오빠? 나 좀 혹시? 데려다주세요. 나 좀… 데려다줘.”
“어? 그래! 안 그래도 내가 형주 불렀다.”
내가 형주네 집에서 자주 묵는 걸 아는 동민 오빠는 병원으로 형주를 불렀다. 병원에 오자마자 바로 부른 건 아니고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가 된 후, 부른 것이다. 형주는 택시를 타고 바로 왔다. 자다가 왔는지 유니콘 머리가 콕콕 박힌 보라색 수면바지 차림이었다. 형주가 신우 오빠 음주 운전을 어물쩡 넘긴 것에 대해서 따지고 들었고, 동민 오빠는 형주를 데리고 나가 잘 설득해야만 했다. 다시 돌아온 형주는 정말 이렇게 넘어가도 되겠냐고 나에게 다시 물어봤다.
“나? 응… 병원비도 뭐 내 부담은 없고…”
“야! 후유증은? 후유증 오면 어떻게 할 건데?”
“내 거 보험 들어놓은 걸로 하면 되지 않을까 싶고…”
“아니 왜? 아 놔! 드러누워야 되는데!”
“그러게, 지금 머리가 띵하긴 한데…”
머리가 띵한 것이 사고 때문인지, 아니면 희동이 오빠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일단 그 원인을 확실히 밝히기 어려우므로 사고 때문이라 몰아가기로 하고, 내 보험회사에 전화하기로 했다. 형주는 나중에 맘이 바뀌면 어떡할 거냐고 끝까지 걱정해줬다.
“아 나는 저 동민이 오빠도 여우 같아서 맘에 안 들어. 정말…”
동민이 오빠가 차를 태워다 줬던 선배를 찾으러 간 사이, 형주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야 너 근데 정말 가관이다. 이 냄새 하며! 코를 쑤시잖아 아주!”
형주는 뒤늦게 코를 틀어막으며 내 머리카락의 똥물 냄새를 지적했다. 차를 태워다 준 선배는 집으로 돌아갔나 보다 했더니 그게 아니고, 주차장에서 환기를 시키고 있었다. 그런 차에 다시 얻어 타자니 미안했는데, 형주가 동민이 오빠가 섭외한 거니까 알아서 할 거라면서 나를 밀어 넣었다. 어깨를 한 껏 피고 있는 상태로 고정되어 있는 나는 차 안에서 허리를 숙일 수 없었고 차가 방지턱을 넘어갈 때는 차 천장에 정수리를 콩콩 박았다. 더러운 머리카락 때문에 후드를 뒤집어쓰고 싶었지만 형주가 목도리랑 같이 큰 비닐봉지에 담아 버려서 머리에 뭘 씌우지 못하고 그대로 형주네 집으로 갔다.
“야! 머리 감자!”
형주는 안에 입은 옷을 벗는 것도 거들어주었다. 그리고 내가 왼손으로 씻을 수 있는 데까지 씻은 후 들어와 머리를 감겨 주었다.
“으이그! 정말! 아주! 으이그!!”
“아! 좀 살살 해라.”
얼추 샴푸가 끝나갈 때 형주가 또 물었다.
“야! 너 린스 먼저 해? 트리트먼트 먼저 해?”
“나? 트리트먼트.”
“그래? 정말? 물어보는 사람마다 정말 다 트리트먼트 먼저 한다고 하네. 진짜 트리트먼트가 먼전가봐~”
“트리트먼트 원래 먼저야. 아니 그리고 야 잠깐! 물기를 닦고 트리트먼트를 해줘야지.”
“아 뭐래? 웰케 까다로워?”
“아 그렇게 해야 되는 거야. 원래!”
입술이 퉁퉁 부어 발음이 분명하지 않은데도 형주는 내 말을 다 알아 들었다.
"남미리는?"
“아~ 남미리~, 우진이 연락받고 나갔다. 다 늦어서 우진이 보러. 내가 보기엔 희동이 오빠는 썩은 놈이야. 미리 정신 차리고 그냥 우진이 만나는 게 천배는 낫지.”
머리를 감고 나오니 똥물 냄새는 희미해졌다. 오른손은 마비 상태고 어깨는 고정이 되어 있으니 위풍당당한 대신 눕고, 앉고, 일어서는 모든 것에는 다 형주의 도움이 필요했다.
다음 날, 크리스마스 아침을 건너뛰고 점심에 늦게 일어 난 우리는 마주 앉아 라면과 케이크를 먹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같은 오글거리는 말은 주고받지 않았다. 나는 종교도 없는 주제에 갑자기 독실한 불교 신자가 되어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 오늘 하루만 불교 신자다.
"아미타불~."
비가 그친 후, 빗물이 고여 생긴 웅덩이만큼만 라면 국물이 남은 냄비 바닥을 향해 합장을 했다.
"또 왜 그래?"
형주가 라면 국물 묻은 숟가락으로 어제 우진이가 사줬다는 케이크를 퍼먹으며 나를 타박했다.
"그런 게 있어... 기댈 데가 필요해서 그래..."
케이크는 맛있었다. 어제 미리 말로는 어디 호텔거라더니...
"근데 형주야? 너는 왜 희동이 오빠 별로라고 해?"
"야, 너는 똥인지 된장인지 딱 보면 모르냐? 결이 다르구만. 냄새까지 맡을 필요도 없어."
"... 그래?"
"하긴 네 눈치로 뭘 알겠냐? 너는 똥인지 된장인지 입에 떠먹여 넣어줘도 모르겠다고 할 거다."
“하아~ 미리 부럽다…” 나는 미리가 부러워졌다.
“왜 뭐가 부러워?”
“그냥 희동이 오빠가 미리한테 관심 없었잖아… 그리고 케이크가 똥보다 낫잖아...”
“뭐야? 너 또 그렇게 미리 맥이는 거야? 크크.”
“아니야. 이건 맥이는 게 아니라고. 하아 너는 내 마음을 알 수가 없을 것이다.”
맛있는 호텔표 홀케이크 하나를 금세 먹어버렸다.
희동 오빠의 스쿠터는 사고 다음 날, 신우 오빠가 바로 챙겼고, 그대로 헐값에 희동이 오빠가 신우 오빠에게 넘겼다고 했다. 며칠 후, 만난 신우 오빠는 여기저기 멍투성이었다. 병원엘 가지 않았다고 했다. 몰골이 마치 무적 챔피언이랑 경기를 해서 잔뜩 두들겨 맞은 엑스트라 권투선수 같았다.
나는 동민이 오빠로부터 희동이 오빠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먼저 연락을 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차피 아는 사람도 없으니 내가 입만 다물면, 나와 희동이 오빠 관계는 그냥 처음부터 없던 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려면 희동이 오빠도 쭉 입을 다물어야 할 텐데...
사고 때문에 아르바이트도 못 가고 집에 처박혀 있었다. 그리고 해가 바뀐 1월 중순쯤, 희동이 오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미옥아, 희동이 오빠야. 몸은 좀 어때?”
“에?”
---“몸은 좀 어떠냐구... 괜찮지?”
“왜 전화를 해? 오빠가? 어떻게요?”
---“미옥아 왜 그래? 뭐 이렇게 까칠하냐~ 네가 요새 술을 못 마셔서 그렇구나?”
“뭐래? 왜요? 오빠가 나한테 할 말이라는 게 있어?”
---“아니 왜 그러지? 섭섭하게. 너 좀 있음 붕대 풀지? 그때 오빠가 술 사줄게.”
“… 왜요? 왜 오빠가 술을 사? 나한테?”
---“…”
“뭐? 왜 대답이 없어? 지금 떠 보는 거잖아? 나 다 알아요. 숙대! 청담동! 아 나 진짜 이제 끊어요! 끊을래!!”
---“아 정말… 어쩌지… 너 많이 삐졌구나?”
“많! 이! 삐! 져!? 어이없어서 정말.”
---“왜? 미옥아, 어떻게 하면 기분 풀건대 응?”
“…”
정말 희동이 오빠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하면 안 되는 말이었다. 그런데 미련하게도 저 오빠의 말 몇 마디에 튀어나와버렸다.
“그러면 오빠? 오빠 그냥 나만 만나면 안 돼요? 내가… 그렇게 별론가? 응? 나만 만나. 그럼 안 돼?”
---“아… 그게… 미옥아, 무슨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긴 다른 여자들 다 정리하고 나만 만나라고. 뭘 못 알아듣는 척을 해?”
---“아 그게... 미옥이 네 생각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또 걔네는 좀... 내가 없으면 너무 힘들어해서 말이야…”
“…”
---“그냥 우리 친하게 지내도 괜찮았잖아. 가끔 응? 친하게 말이야. 응? 안 그렇니?”
“…”
---“미옥아? 왜 말이 없어? 응?”
나는 희동이 오빠에게 나도 힘들다고 말했더니, 오빠는 아니라고, 너는 자기랑 상관없이 잘 사는 애라며 약한 척하지 말라고 했다. 웃으면서 친절하게. 이후로 어떻게 통화를 끝낸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좀 울고 또 소리 좀 지르고 그랬던 것 같다. 어깨의 압박붕대 때문에 아주 바른 자세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위풍당당 울부짖었다.
술도 마실 수 없어서 오롯이 맨 정신으로 이 후유증을 버텨내야만 했다.
오른손이 봉쇄된 나는 다리로 할 수 있는 놀잇거리를 찾아야 했다. 꼿꼿이 세운 상체로 매일 오락실에서 <펌프>를 했다. 한 달쯤 매진하니 크레이지 레벨 <베토벤 바이러스>를 거의 외우다시피 하며 클리어했다. 이건 형주도 어려워하는 거다.
크리스마스에 차인 일(下). by 옥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