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파 보고서 (4)

Chapter-2 그루이트

by 옥광



막 치료용 캡슐에서 나온 할은 습관적으로 코를 ‘승승’ 거렸다. 이미 온몸, 안팎으로 남아 있던 황화수소의 입자는 분자 단위로 분해돼 제거됐을 텐데도 코를 ‘승승’ 거리며 계속 그 냄새를 확인하게 된다. 냄새가 안 나면 그냥 다행으로 여기고 ‘승승’ 거리는 걸 멈춰도 될 텐데 그게 안 되고 끊임없이 냄새가 날 것만 같아 확인하려는 이 욕구.

재시는 끊임없이 ‘승승’ 소리를 내며 식사 중인 할을 쳐다봤다. 정확하게는 째려봤다. 입 안에 고깃 덩어리를 잔뜩 물고 있던 할이 그런 재시와 눈이 마주쳤다. 재시는 순간 아차 싶었다.


“재시, 재시? 재시, 바빠? 내 말 좀 들어보라니까! 내가 진짜 엄청난 걸 알아냈다고!”

“… 좀 바빠. 할, 뭔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이야기하면 좋겠는데.”

“뭐가 그렇게 바쁜데? 아, 민수한테 가는구나? 재시 나도 같이 가. 가면서 이야기하면 되겠다. 하… 재시, 정말 들으면 깜짝 놀랄 거야.”


할은 치료용 캡슐에서 나오자마자 재시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할 기회만 엿봤다. 미하르와 민수는 각자의 방에서 휴식 중이었고 현재 온전하게 대화가 가능한 사람은 재시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왠지 할을 피하는 듯 보였지만 그건 재시가 할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아서다.


“들어 봐, 재시, 난 정말 그 초록빛이 그 초록빛일 줄 몰랐다니까.”


할은 재시의 뒤를 바짝 쫓으며 민수가 방생했던 그루이트를 만난 이야기를 떠들기 시작했다. 그때, 젤 속에 빠진 할을 밀어 올린 초록빛이 바로 그 그루이트였다.


할은 유로파의 핑크빛 젤이 발목 복숭아뼈 높이로 잘박잘박하게 퍼져 있는 너른 장소에서 눈을 떴다. 폐와 위로 넘어간 젤 중 체내로 흡수되지 못한 젤들이 역류하여 먼저 구토를 했고 이와 함께 큰기침을 하면서 눈이 떠진 것이다. 어느 정도 구토가 진행된 후 할은 슈트의 입구와 호흡기 필터를 확인했다. 삼켰던 젤과 공기의 냄새가 콧구멍 내벽을 긁고 넘어와 목젖까지 자극했기 때문이다. 침에서도 지독한 냄새의 맛이 나는 것 같았다. 젤을 흡입하려 벌렸던 입구를 다시 닫고 필터의 강도를 최고 레벨로 올렸다. 체내의 냄새를 몰아내려면 할 스스로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어야 한다.


“스읍~ 하아~, 스읍~ 하아~”


사실 숨을 쉬는 것도 이제 막 정신이 돌아온 할에게는 벅찬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초록빛을 발광하는 그루이트가 할을 마구 만지는 걸 자각하는데도 시간이 수분 걸렸다. 초록빛 발광 그루이트는 뭔가를 찾는 듯 한쪽 손으로 누워 있는 할의 왼발을 높이 들어 올리고 다른 손으로는 할의 가랑이 사이를 마구 더듬고 있었다. 더듬을 때마다 꾹꾹 눌러대서 아직 팽팽하게 차오르지 못한 유닛의 공기가 이리저리 꿀렁거리며 움직였다.


‘정말 대단해. 도대체 누구 아이디어일까? 단순 정보수집용 인식칩이나 이식해 놓은 줄 알았는데 진짜 홀로그램 표시색과 같은 초록색 발광나노칩을 박아놓다니! 그것도 저 위치에…’


초록색 빛의 진원지는 저 그루이트의 반투명한 우윳빛 피부 아래, 다리와 다리 사이 성기 안 쪽으로 그곳에서 밝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초록빛 그루이트는 남성형 성기를 가진 그루이트와 달리 성기 주변에 카틀레야 같은 화려한 꽃잎은 없는 함몰형 여성 성기를 가진 그루이트였다.

여성형성기를 가진 그루이트는 보고서로 전해 본 것보다 훨씬 근사하고 아름다운 가슴을 가지고 있었다. 할의 다리 사이를 향해 상체를 숙이고 있었는데, 이때 아래로 향한 두 가슴이 유리처럼 매끈한 커다란 물방울처럼 보였고 성기에서 올라오는 빛 때문에 둥글고 아름다운 물방울 두 가슴은 초록빛으로 반짝거렸다. ‘그나저나 왜 자꾸 내 가랑이 사이를 더듬는 거냐.’ 할이 다리를 오므리려고 발목에 힘을 주자 그제야 초록빛 그루이트가 고개를 들어 할의 얼굴을 보더니 할의 왼발을 놨다. 할을 놔준 초록빛 그루이트는 천천히 상체를 천천히 들어 바로 섰다.


“재시랑 키가 비슷했던가? 아니야, 조금 더 큰 거 같아. 어? 아니네. 재시 보다 조금 작구나. 그럼, 재시 보다 얼굴이 작고 다리가 길어서 커 보였던 건가? 암튼 와, 진짜 너무 예쁘더라고! 아니, 다른 여성형 그루이트들도 다 예뻤어, 진짜 전부 다 근사했어.”


할은 곤히 잠을 자는 미하르의 바이탈 체크를 하는 재시에게 자신이 본 그루이트들의 예쁨을 설명하느라 몹시 흥분했다.


“재시! 재시, 재시 내 말 듣고 있는 거지? 아! 재시는 이미 많이 봤었겠구나. 미안, 미안. 지겨웠겠네, 내가 걔네들 예쁘다고 하는 거 지겹지? 와 진짜 몸매가! 아니 진짜 어떻게 그렇지?”


재시는 그런 할에게 눈길 한 번 안 주고 묵묵히 할 일을 이어갔다.


“도대체 누구 생각이었던 거야? 여성형 그루이트들한테 심어놓은 나노칩을 전부 발광으로 심었더라. 그것도 성기 안쪽에 쑤욱.”


재시가 잠깐 할을 쳐다봤다. “그건 칩을 넣기 위한 방법이었겠지. 처음엔 미세절개도 위험할 수 있었거든. 알잖아? 피부를 잘못 건드리면 표면장력이 흐트러지듯 수분화 되면서 죽는 거. 단순 피부이식이 어려웠으니. 물론 연구가 더 진행되면 방법은 개선되겠지!”

“아, 아. 나도 그럴 거 같았어. 나는 누구 생각인지 매우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지. 그루이트들이 그 빛에 거부감도 없어 보이는 게 관찰하기엔 최고의 조건이었어. 이건 혹시 스캇의 아이디어?”


재시가 웬일로 길게 답을 해준다 싶더니 다시 입을 꾹 다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하르는 그 새 얼굴이 반쪽이 되었으나 지금은 안정을 되찾았는지 만족스러운 얼굴로 낮게 코까지 골았다. “미하르는 괜찮아? 내가 없는 사이 엄청 아팠다면서?” 할이 미하르의 안위를 물었지만 재시는 못 들은 척 발걸음을 옮겼고 할은 그래도 상관없다는 얼굴로 재시의 뒤를 쫓았다.


“그래서 말이야, 재시. 초록색이 다가 아니었어. 나 다른 색 발광도 봤잖아. 스캇이 생각보다 추적 표본을 여러 마리 만들었나 봐. 결국 그 덕은 내가 다 본거 같지만 말이야. 들어봐, 내가 뭘 봤냐면 말이야, 재시.”


재시는 할의 이야기를 무시하려고 더 빠르게 걸었지만 할은 신경 쓰지 않고 재시를 신나게 쫓아가며 목소리를 키웠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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