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파 보고서 (6)

Chapter-2 그루이트

by 옥광



민수의 바이탈 체크를 하던 재시가 지금까지 중 가장 크게 할에게 짜증을 냈다. 거의 소리를 질러 할이 미하르와 마찬가지로 수면 약물을 주입받아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민수가 깰 까 눈치를 봤다. 다행히 민수는 미동도 없이 잠을 이어갔고 할은 안심하고 자신의 그루이트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재시? 재시, 들어 봐!”


할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성교를 마친 초록빛의 그루이트가 보랏빛 그루이트의 남성형성기 그루이트들 중 한 마리에 관심을 보였다. 처음엔 세 마리 그루이트의 성기를 번갈아가며 만지작 거리더니 이내 한 마리로 좁혀진 것이다. 그렇게 한 마리 그루이트의 성기를 잡고 고민하는 듯하더니 다시 다른 한 마리의 성기를 더 잡았다. 최종적으로 양손에 각각 한 마리씩, 두 마리의 그루이트 성기를 잡았고 이내 보랏빛 그루이트에게 무언가 돌고래 소리로 의사를 전달하는 듯했다. 보랏빛 돌고래도 길게 돌고래소리를 냈고 두 초록빛, 보랏빛 그루이트가 주거니 받거니 하며 돌고래 소리를 나누었다. 이야기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는 듯 중간중간 초록빛 그루이트가 손을 세게 쥐락펴락했고 그때마다 성기를 붙잡힌 남성형성기 그루이트들은 아픈 듯 끽끽 고통의 소리를 호소했다. 이때, 오렌지빛 그루이트가 아까 초록빛 그루이트가 잡았던 할의 왼발을 잡더니 번쩍 들어 올려 던졌다. 할은 빠르게 날아가 초록빛과 보랏빛 한가운데에 핑크색 젤을 튕기며 찰바닥대며 떨어졌다. 떨어진 할의 양 발목을 보랏빛 그루이트가 잡았다. 초록빛 그루이트는 여전히 양손에 남성형성기 그루이트의 성기를 하나씩 쥐고 있었고 보랏빛 그루이트는 할의 발목을 잡고 거꾸로 들어 올린 채 돌고리 소리를 뱉어냈다. 여기에 할을 던진 오렌지빛 그루이트까지 끼어들어 서로 머리와 가슴, 엉덩이, 어깨를 만져가며 돌고래 소리 주고받기에 합세했다.


할은 유닛 때문인지 바닥의 젤 때문인지 내동댕이쳐진 충격의 고통은 없었지만 이것들이 왜 이러는지는 빨리 파악해야만 했다. 이렇게까지 공격적으로 느껴지는 행동도 스캇의 보고서에서는 보지 못했다. 여성형성기 그루이트들의 힘이 이 정도까지 세구나. 아름다운 외모에만 정신이 팔려 이들의 완력에 대한 부분은 완전히 잊고 있었다. 할은 거꾸로 매달린 채 기지에 구조신호를 보냈다. 사실 매달린 게 무서워 몸부림을 치느라 이 때는 신호를 제대로 보냈나 싶다. 스캇이 사용하는 포획유닛을 장착할 걸 후회가 밀려왔다. 점점 아까 젤 속에 잠겨갈 때보다 더 무서워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매우 안 좋은 징조다. 무서움은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움직임도 멈추게 할 수 있다. 이 때다. 부드럽고 깊은 울림이 느껴지는 고래의 고함소리가 할의 무서움을 멈추게 했다.


[휘이! 기휘이이이이 휘이기이!!]


성기에서 노랑색 빛을 뿜어내던 임신한 그루이트가 크고 깊은 소리를 내고 자리에 앉았다. 뒤이어 그 노랑빛 그루이트를 따르는 남성형성기 그루이트들이 일제히 엄청난 고통에 몸부림치며 쓰러졌다. 그중 몇 마리는 이 자리에서 멀어지고 싶은 듯 노랑빛 그루이트로부터 도망치는 게 보였다. 보랏빛 그루이트가 할을 대충 던져 놓고 도망가는 그루이트들을 잡아왔다. 다리가 길어 큰 보폭으로 몇 발자국만 걸어 가 금방금방 낚아챘다. 떨어진 할은 똑똑히 보았다. 큰소리를 내고 여유 있게 웃어 보이는 노랑빛 그루이트의 얼굴을 보았고 성기 안, 노랑빛을 뿜어내는 다리 사이에서 작은 머리가 조금씩 삐져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의 출산이 시작되었다. 작은 머리가 만든 원 주변으로 노랑색빛이 번지는 것이 동면 전에 본 일식 같았다. 오렌지빛 그루이트가 기쁜 듯 다가가 노랑빛을 가리고 있는 동그란 머리를 조심스레 뽑아냈다. 남성형성기 그루이트들은 조금씩 뽑아내는 속도에 맞춰 더 더 고통스러워했다.


“그런데 말이야 재시, 내 구조신호를 받고도 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거야? 신호를 여러 번 받았을 거 아니야? 내가 여러 번 보냈는데.”


할은 자신의 구조 신호를 여러 번이나 무시한 재시에게 이유를 물었다. 원래는 깨어나자마자 따지고 들고 싶었지만… 배가 고파 뭘 먹어야만 했었다.


“할… 그것들은 온순해. 이전에 스캇도 구조신호를 몇 번이나 보낸 적이 있었지만 모두… 전부 다 장난이었거든. 진짜 구조가 필요할 만큼 위험했던 상황은 단 한 번도 없었어.”

“응, 그랬구나. 하지만 재시, 스캇은 스캇이고… 나는 나잖아. 그러니까…”

“흠… 그래서 무슨 문제가 있었니, 할? 너는 지금 아무 문제없이 돌아왔잖아, 안 그래? 오히려 좋은 것들을 많이 봤다면서? 그렇잖아, 모든 일이 다 잘 풀렸는데… 왜?! 왜 이제 와서?! 뭐를 문제로 만들고 싶어서 따지고 드는 거야? 왜 그런 거야?”

“아니… 그건 그렇지만 재시, 그래 네 말이 다 맞아. 단지… 내가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아직 못 해서 그래! 응? 들어봐, 재시. 내가 말하려는 요점은 말이야.”


재시는 할이 떠드는 동안 안정적인 수치를 보여주는 민수의 바이탈 체크 화면을 한참 노려봤다. 그리고 할의 말을 끊고 잠든 민수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큰 소리로 화를 냈다.


“보면 모르겠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거! 너는 이것도 이해 못 하겠니? 민수와 미하르가 상태가 안 좋았잖아. 너도 알고 있는 거잖아! 그래서 너 혼자 나갔던 거고.” 할은 잠시 숨을 고르 화를 이어갔다. “할, 나는 의사야! 거기다가 미하르는 그때, 갑자기 너무 위험해서 죽을 뻔했다고! 다 말해준 거잖아! 도대체 무슨 말이 얼마나 더 필요하니?”


할은 재시의 화에 놀라 잠시 아무 말도 못 했다. 말을 하던 중 끊긴 터라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벌린 채 있었다. 놀란 눈만 끔뻑거렸다. 어서 재시의 흥분을 가라 앉혀야 한다. 왜냐하면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아니, 아니 재시… 제발 흥분을 잘 가라앉히고 내 이야기를 들어봐 줘. 재시, 나는 네 말 다 이해한다고. 그냥, 내가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못 해서 그래. 응? 한 번만 들어 봐 줘, 재시. 응?”

“할! 너 진짜 안 되겠구나! 가! 네 방으로 가라고!”


재시가 이게 마지막이라며 소리를 지르고 먼저 룸 밖으로 나서려 는데 갑자기 알람이 울렸다. 민수의 바이탈 이상 알람이었다. 경고음이 몹시 요란했다. 그만큼 민수가 심각하다는 말이다.


“재시, 민수… 갑자기 왜 이런 거야?”


거의 동시에 미하르의 경고음도 울리기 시작했다. 재시는 민수의 바이탈을 체크하면서 동시에 화면을 띄워 미하르의 바이탈도 체크하기 시작했다. 잘 자고 있던 민수가 목과 허리를 비틀더니 경기를 일으켰다. 다만 잠에서 깨지는 못 하는지 눈이 감긴 잠든 얼굴만 평화로워 보였다. 화면 속의 미하르도 마찬가지였다. 곤히 자는 얼굴로 입에 거품을 물더니 위액 같은 토사물도 올렸다. 경기를 일으키고 고통을 호소하며 꺾어 대는 몸은 너무 기괴했다. 할은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며 물러나 손으로 코를 움켜쥐었다. 민수가 항문 배설을 했는지 지독한 냄새가 올라왔기 때문이다. 꼭 노랑빛 그루이트가 새끼를 낳을 때 옆에서 괴로워하던 남성형성기 그루이트들 같았다.


“재시, 왜 그런 거냐고? 민수랑… 또 미하르까지 도대체 다들 왜 이러는 거야?”


재시는 분주하게 움직이며 약물을 더 주입했다. 할은 계속 투덜거렸다.


“나는… 오늘 누가 아픈 걸 왜 이렇게 자주 보는 거야. 아까 그루이트들도 그렇고, 지금 민수도, 미하르도 그렇고.” 재시는 투덜거리는 할을 닥치게 하고 싶었지만 민수의 룸에서 미하르 상태까지 원격으로 컨트롤하느라 바빴다. “아, 미하르까지 세트로 전부 더럽네.” 할의 투덜거림은 끝날 줄 몰랐다.


재시가 민수와 달리 미하르에게는 약물의 종류를 바꿔서 더 주입했다. 할은 자세히는 모르지만 분명 강력한 진통제, 혹은 마취제, 아니면 둘 다 일거라 짐작했다. 그루이트들이 저럴 때는 매우 흥미로워서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았는데 할과 같은 휴먼 남성이 저러고 있으니 기괴하고 옆에 있기도 힘들었다. 너무 더러워 보였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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