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3 재시
곧 스캇이 포획유닛을 장착하고 여성형성기를 가진 그루이트를 잡아왔다. 지금까지 잡아온 그루이트와는 확연히 달랐다. 미끈한 젤이 발라진 보드라우면서 녹녹해 보이는 피부 때문일까, 재시도 몇 번 만져보고 싶을 정도였다. 한두 번 정도는 혀를 대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스캇이 포획룸에서 여성형성기 그루이트와 무엇을 하는지 눈치채고는 이런 욕구는 사라졌다. 민수에게 말해 그만두게 하려고 했는데 미하르까지 스캇이 하는 일에 합세해버리니 재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대신 민수는 포획룸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 것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그때부터 스캇이 가끔 속이 거북하다고 하기 시작했는데 워낙 건강체질이라 그런지 진통제와 몇 가지 소화제, 구토 억제제를 복용하면 금세 나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스캇에 이어 미하르까지 소화불량 증세를 보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한동안 여성형성기 그루이트만 잡아오던 스캇이 평소 하듯이 그루이트 탐사를 먼저 나가 그루이트 무리를 발견하고도 미하르를 부르지 않았다. 이번엔 달랐다. 스캇이 미하르를 부르지 않고 거의 죽기 직전의 남성형성기 그루이트를 포획해 그걸 키핑캡슐에 넣어 그대로 혼자 돌아왔다. 죽기 전 잡힌 남성형성기 그루이트는 키핑캡슐에 넣지 마자 그대로 죽었다. 형태가 제대로 유지된 첫 그루이트 표본이다. 모두들 스캇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스캇이 돌아오자마자 지독하게 아팠기 때문이다. 아니 이미 아프면서 돌아온 게 맞다고 해야겠다.
미하르는 스캇을 축하해주면서도 여성형성기 그루이트는 언제 잡으러 나갈 거냐며 증상이 쉽게 호전되지 못하는 스캇의 주변을 계속 맴돌았다. 그렇게 단단히 삐진 미하르의 배회는 나날이 늘어나는 짜증과 함께였다. 진짜 못 봐주게 부리던 미하르의 짜증은 참다못한 스캇이 온갖 진통제를 이용해 가까스로 여성형 그루이트 한 마리를 잡아오고 나서야 누그러졌다. 그날도 스캇은 미하르를 부르지 않고 혼자 골라서 잡아왔다. 미하르는 자신이 그루이트를 고르지는 못 했으니 발광색이라도 자신이 고르겠다고 나댔고 초록색을 골랐다. 스캇이 나노칩을 성기 깊숙이 넣어주자 그제야 미하르의 삐진 속이 완전히 풀렸다. 웃는 얼굴이 된 미하르는 이 그루이트를 돌보느라 그제야 스캇을 귀찮게 하는 걸 멈췄다. 허나 미하르도 속이 거북 해지는 빈도수가 높아져 재시와 민수에게 짜증이 느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얼마 안 가, 스캇의 증세가 몹시 심각해졌다. 재시는 원인 파악이 안 되니 대증치료밖에 할 수 없었다. 가능한 모든 진통제를 투여했고 자꾸 경기를 일으키는 걸 가라 앉히기 위해 강한 마취제도 함께 투여했다. 무슨 이유인지 마취제가 들어가니 진통제의 효과가 반감되어 스캇이 다시 고통에 몸부림쳤다. 스캇의 관절이 말도 안 되게 꺾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캇이 똥과 오줌을 쌌다. 민수가 돕겠다며 쫓아 들어왔다가 코를 막았다. 그 모습을 뒤에서 보던 미하르는 너무 더러운 나머지 구토까지 했다. 뒤늦게 스캇에게 투여된 마취제가 약효를 내기 시작하고 스캇의 배설이 잦아들었다. 진통제를 한번 더 투여한 후에야 스캇의 바이탈은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런 일을 두 번을 더 겪고 나서 스캇은 콜로니 복귀 신청을 했다.
<2형문명 우주환경 보호법>에 따라 블라디미르 우주탐사 정규 팀원의 복귀 신청은 이유 불문 무조건 받아들이여진다. 스캇의 신청은 받아들여졌고 바로 지구유니언에서 파견된 대체 인력이 곧 출발한다는 통신이 들어왔다. 이 무렵 스캇은 여성형성기 그루이트 포획보다 자신이 일전에 잡아온 죽은 남성형성기 그루이트 연구에 더 큰 공을 드렸다. 이미 진행한 박테리아 및 바이러스 검사를 여러 번 반복해 진행했고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니 이와 함께 스캇 자신의 혈액과 골수액, 정액 검사도 진행했다. 그러나 별다른 소득은 없어 보였다. 여성형성기 그루이트에서 보내오는 나노정보도 열심히 분석했는데 주로 임신, 출산에 관한 정보를 비교 분석하는 것 같았다.
미하르의 메슥거림과 헛구역질, 소화불량 증상도 점점 심해져갔다. 미하르는 기지에서 먹는 영양 큐브가 지겹다며 민수에게 지구의 요리를 먹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민수, 나 지구 요리를 먹어야겠어! 요새 내 컨디션이 안 좋은 건 다 저 맛없는 큐브 때문이라고!”
민수는 본사에 요리 재료를 대체인력과 함께 보낼 것을 요구했고 재시에게는 재료가 도착하면 미하르를 위해 좋은 요리를 만들어낼 것을 요구했다. 재시는 저 짜증 나는 블라디미르 미하르를 위해 다른 은하계 우주에서까지 요리를 해야 한다는 게 어이없었지만 별수가 없었다.
미하르는 콜로니로 귀환할 스캇에게 재시가 만들 지구의 요리를 먹으면 금방 나아질 텐데 뭣하러 가는 거냐며 설득해보았지만 통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스캇이 없으면 미하르 혼자서는 이것저것 할 일이 더 많아질 테니 신경 쓰이긴 할 것이다. 스캇은 예전에 비하면 눈에 띄게 미하르를 피하고 귀환 전까지 각종 진통제의 도움으로 조사와 연구만 진행했다.
재시는 의아했다. 블라디미르 미하르를 향한 스캇의 교언영색한 말수가 줄었을 뿐만 아니라 스캇이 연구하고 분석한 데이터량에 비해 보고서에 작성되는 양도 현저히 적었다. 그러나 민수를 조용히 떠 보니 이미 눈치채고 있는 것 같아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재시는 스캇이 떠난 후 미하르로부터 민수를 떼놓을 방법을 생각하느라 이미 골치가 아팠다.
말수가 줄어든 건 미하르도 마찬가지였다. 아프다며 떠나겠다는 스캇을 아쉬워하던 미하르도 막상 아파하는 스캇을 직접 보고 나니 스캇이 어서 콜로니로 돌아가 다른 사람들과 지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미하르 눈에 스캇은 너무 더럽게 아팠다.
━━━━ “재시… 미하르… 어때?”
드디어 스캇이 지구로 떠나는 시간, 스페이스십에 탑승해 스탠바이를 하던 스캇이 재시에게 말을 걸어왔다. 몇 시간 전까지 심하게 앓았던 터라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응? 스캇, 뭐가? 다시 말해 봐, 잘 못 들었어.”
━━━━ “미하르… 말이야, 이번에 잡아온 그루이트랑 어떻냐고… 아니, 그 그루이트는 어떤지 좀 알아?”
“아, 뭐가? 뭐가 어떻게, 어때야 하는데? 그 그루이트가 왜?”
그 그루이트는 저 변태 놈이 초록색 발광 나노칩을 박아 놓은 그루이트를 말하는 거다. 새로운 대체 인력이 도착할 때 즈음엔 그 그루이트는 방생해야 줘야만 한다. 재시는 생각 했다. 스캇이 방생 일을 걱정하는 건가? 설마… 미하르도 그 정도는 알아서 잘하겠지. 아니면 이제 와서 <2형문명 우주환경 보호법>의 윤리강령을 걱정하는 건가? 다 발각될까 봐?
“스캇, 네가 뭘 걱정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
“왜?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뭘 본 것도, 들은 것도 없어. 나는 아무것도 몰라. 나는 지금이 딱 좋아, 만족해.”
만족스럽다는 재시의 표정에서 스캇은 일종의 불쾌감만 읽었다. 그러나 미하르, 미하르 블라디미르를 믿기로 했다. 스캇은 미하르 블라디미르를 믿고 [블라디미르 3rd 스페이스 콜로니]에서 지내고 있다는 세 자녀에 대해 자랑할 때 본 오만함으로 가득했던 재시의 얼굴을 믿기로 했다. 스캇은 지금 포획룸에 있는, 성기에서 초록빛을 뿜어내는 여성형성기 그루이트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기로 했다. 괜히 확실하지 않은 사실로 <2형문명 우주환경 보호법>에 위배되어 지금까지 쌓아 올린 커리어를 망칠 필요는 없다.
미하르 블라디미르는 포획유닛만 입고서 초록색 빛 속에서 움직이는 자신의 성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게 너무 좋아서 스캇이 떠나는데도 포획룸에서 나와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성기 근처에 부유하고 있는 꼬물대는 작은 이물질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스캇이 떠난 수 시간 후, 지구 유니언에서 아웃소싱한 대체 요원 할이 도착했다. 할과 함께 지구의 요리 재료도 도착했다. 요리의 원자재를 구하는데 발생한 자원보다 운반하는데 들어간 자원이 몇 백배는 더 들었을 거다. 파견 요원 할이 해동이 될 동안 요리 원자재도 해동을 시켜야 했는데 재시가 유로파에서 보낸 시간 중 가장 바쁜 시간이었다. 각 원자재의 특성에 맞게 해동 시간과 타이밍에 따른 온도를 전부 따로 컨트롤해야만 했다. 스캇이 떠난 후 미하르가 민수를 하도 불러서 재시가 민수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민수는 포획룸 근처에서 화상으로만 미하르와 대화했다. 재시는 식자재 해동을 컨트롤하면서 기지 내 민수의 위치를 끊임없이 파악했다.
“싫어! 안 가! 나 지금 속이 안 좋다고. 막 메슥거리고, 자꾸 트림도 올라오고 심하게 체한 것 같다고. 민수가 해 줘, 이것 데리고 나가서 방생하는 건 민수가 하라고.”
갑자기 민수는 곤란해졌다.
━━━━ “원래 스캇이 하던 거였잖아, 이제 민수가 해 줘. 민수가 우리 팀장이잖아, 아니 대장인가? 아무튼 민수가 책임자니까 민수가 해. 해 줘, 민수가.”
다이닝룸에서 보낸 재시의 목소리가 들렸다.
━━━━ “미하르, 하지만 곧 스캇의 대체 요원이 캡슐 밖으로 나올 시간이야. 그때 민수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 내가 소화제며 진통제 다 처방해줬잖아. 그리고 저 그루이트는 미하르 네가 계속 돌본…”
━━━━ “싫어! 재시! 싫다고! 저 밖에 나 혼자 가는 건 싫어! 걸을 때마다 출렁거리는 게 멀미도 나고, 싫어! 민수를 보내! 그게 싫으면 재시 네가 가던가!”
미하르 블라디미르가 재시의 말을 끊었다. 공식적으로 최종 결정권은 대장인 민수에게 있으니 결정은 민수 스스로 해야만 한다. 재시는 어쩔 수 없이 민수가 미하르의 부탁을 들어주는 걸 반대하지 않기로 했다. 다이닝룸에서의 일에 집중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남은 시간이 촉박하니 크게 별일은 없을 것이다. 재시에겐 저 짜증 나는 미하르 블라디미르를 위해 근사한 요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게 제일 급선무였다.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