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4 보고서
같은 팀원끼리 명령이라니! 거기다 대장인 민수에게까지 부탁을 가장한 명령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제일 이해가 안 가는 건 미하르가 <2형문명 우주환경 보호법>을 우습게 여긴다는 사실이다.
흥분한 미하르는 포획유닛을 입힐 기세로 민수에게 달려들어 완력으로 그를 깔아뭉개고 올라탔다. 그리고 그의 둔부 쪽에 위치한 팀슈트의 후크를 쥐어뜯었다. 민수는 제대로 저항도 못 하고 미하르에게 깔린 체 꼼짝을 못 했다.
“미하르 그만해! 재시가 외쳤다. “아까 주사한 약을 더 줄게. 가서 투약하고 좀 쉬자. 안 그러면 또 구토를 하게 될 거야. 응, 미하르!”
“약?” 순간 미하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민수의 맨엉덩이가 뽀얗게 드러난 순간이었다.
재시가 미하르를 진정시키고 일으켜 세웠다.
“재시, 그냥 약을 한꺼번에 왕창 주면 안 될까? 내가 알아서 필요할 때마다 투약할게. 그게 서로 편하잖아. 민수! 민수, 언제 나갈 거야? 꼭 잡아와야 해. 나 급하다고! 화려한 조명 속 알지?”
자기 성기를 주물럭거리는 미하르를 재시가 달래서 데리고 나갔다. 할은 미하르를 데리고 나가는 재시도, 말없이 맨 엉덩이를 급하게 손으로 가리고 수습만 하는 민수도 이해가 안 갔다. 모든 게 이해가 안 갔다.
“민수, 왜 가만히 있는 거지? 명백히 미하르가 하극상을 저질렀잖아. 거기다 은하계 탐사 팀원으로서 <2형문명 우주환경 보호법>에 대해 저렇게 말하면 안 되지! 규칙 위반이야! 팀원 자격 박탈이라고!”
민수가 팀슈트를 고쳐 입느라 뜸을 들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음… 할. 네가 꼭 좀 숙지해줬으면 하는 게 있는데… 할은 ‘지구유니언’에선 없어진 콜로니에서는 계속 사용 중인 풀네임이라는 것에 관해 배웠지? 혹시 미하르의 풀네임이 뭔지 알아?”
“풀네임?”
“그래 풀네임. 이름 말고 그 사람의 출신과 가문을 나타내는 이름의 일부인 성 말이야. 윗세대로부터 물려받는 이름.”
“음… 민수, 내가 그걸 왜 알아야 하지?”
“알아야 해.”
“꼭?”
“응! 미하르의 풀네임이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울리치 미하르’니까.”
할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블라디미르그룹의 블라디미르?”
“응.”
할의 얼굴이 더 진지해졌다.
“그중에서 <2형문명 우주환경 보호법>을 만든 블라디미로비치의 블라디미르?”
“응!”
할은 미하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재정립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쉽게 되진 않았지만.
미하르를 데리고 나갔던 재시가 돌아왔다.
“그리고 할… 알아야 할 게 또 있어.”
“또??”
할은 큰 이슈이긴 하지만 이 유로파에서의 발견에 직접적이지 않은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말하는 민수와 재시가 의아했다. 그러나 감정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해져 갔다.
“할, 휴먼의 2형 문명 도달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 블라디미르그룹이 그동안 은하계 여러 생물을 발견해 오면서 그루이트같은, 저 정도 지능의 생명체를 진짜, 한 번도, 못 봤을까? 정말 그랬을까? 너는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
할은 재시의 말에 민수를 쳐다봤다. 민수는 침묵했다. 그 찰나의 침묵은 천 마디 말보다 더 많은 알아달라는 의미였다.
할은 복잡한 머릿속을 차근차근 정리해 들어갔다. 그러다 문득 그루이트들이 기지 앞까지 찾아와서까지 우리와 거래를 하려 드는 이유에 대한 답이 생각났다. 그루이트들은 분명히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 그에 상응하는 자신의 노예 몇 마리와 맞바꾸고 싶어 한다.
“혹시…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울리치 미하르가 <2형문명 우주환경 보호법>에 명백히 위배되는 비윤리적 폭력 및 학대… 아니 그러니까 그루이트들에게 직접적인 성적 접촉을 행했어? 한동안 기지 내로 포획한 그루이트는 여성형성기 그루이트밖에 없었어. 만약 내가 생각한 게 맞다면, 이건 <2형문명 우주환경 보호법> 근거한 지구 유니언과 블라디미르 협약 때문에라도 종신형 감인데…”
할이 이야기를 천천히 이어가는 것에 아무도 뭐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할이 입을 다물면 그만큼의 시간은 침묵의 시간이 됐다.
“… 미하르가… 미하르가 비윤리적 성접촉을 한 거야?”
재시는 여전히 침묵했다.
재시는 침묵을 유지하며 생각했다. 만일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울리치 미하르가 <2형문명 우주환경 보호법>을 위반한 게 밝혀지면 그는 작은 아버지에게 불려 가 몇 마디 잔소리를 들을 것이고 그러고 나서 자신의 개인 소유 [블라디미르 1st 콜로니]로 돌아가 이전처럼 생활할 것이다. 내키는 대로 휴먼 몇몇을 죽이거나 몇몇에게는 지구가 1형문명에 도달하기 전부터 존재해온 성교를 이용해 그 휴먼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짓을 반복할 것이다. 그러다 다른 휴먼들의 반발이 거세지면 또 다른 은하계 어디로 보내지겠지… ‘지구 유니언’에선 이런 것까지 알리가 없다. 세포 배양기에서 발아된 근본도 모르는 것 들이니.
“이제 알겠어… 그래서 스캇이… 죽은 스캇이, 그래서 보고서에 자신의 기록을 누락시킨 거구나.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울리치 미하르니까. 저 미하르를 보호하기 위해서.”
할은 스캇의 기록 누락이 미하르의 범법 행위를 눈감아주기 위해 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스캇은 그냥 천재이기만 한 게 아니었구나.
한편 재시도 생각했다. 아, 역시 할은 똑똑하기만 하고 눈치는 없구나.
재시는 스캇이 미하르의 환심을 사기 위해 <2형문명 우주환경 보호법을> 위반한 건지, 아니면 안전하게 <2형문명 우주환경 보호법>을 위반하고 위해 미하르를 끌어들인 것인지는 뭐가 먼저이고 나중인지는 모른다. 관심도 없다. 설사 알고 싶다 하더라도 그걸 말해줄 스캇은 이미 죽었다.
“할, 네 말이 맞아.”
“스캇이 미하르를 보호하려 했다고 한 거?”
“아니, 그게 아니라 스캇이 죽었다고.”
“응. 스캇은 죽었어. 죽었다면서? 재시가 알려준 거잖아. 그래서 죽은 스캇이 왜?”
“그래, 할! 스캇이 죽었다고. 스캇은 없어. 이게 뭘 뜻하는지 모르겠어?”
이번엔 할이 침묵했다. 이번에 할은 그냥 아무것도 몰라서 침묵했다.
“할, 스캇이 죽음으로써 블라디미르 그룹에는 생명 연구 팀원 한 명이 공석이 된 거야. 일원의 자리 한 개가 비어 있다고. 매우 이례적인 일이지만 ‘지구유니언’ 사람인 네가 블라디미르 그룹의 일원이 될 수도 있는 절호의 기회야!”
“기회? 내가? 내가 블라디미르 그룹의 일원이 될 수 있다고?”
“그래! 될 수 있어!” 재시가 어색하게 웃으며 희망차게 외쳤다.
“그래! 할, 될 수 있어, 충분히.” 그런 재시를 보며 민수도 따라 외쳤다.
“진짜? 내가 블라디미르 그룹의 일원이 돼?”
“맞아, 할! 네가 보고서만 훌륭하게 작성해 준다면!”
재시와 민수가 서로 쳐다봤다. 할은 재시와 민수, 두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모이는 광경을 드디어 보았다.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