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파 보고서 (13)

Chapter-5 유로파 보고서

by 옥광



그루이트들은 평균 19시간마다 한 번씩 기지 앞으로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사운드를 최대한 줄이고 홀로그램 스크린으로 모니터링만 하고 있다.


재시가 기분이 좋아 보인다.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요리를 하고 있다. 중간중간 민수를 불러 요리의 맛을 보게 하는데 솔직히 할은 그런 재시가 이해가 안 갔다. 염분과 당분, 온도와 농도가 이미 모니터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쓸데없는 짓을 굳이 왜 하는지 그 이유는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이미 며칠 전에 물어봤었고 그 때, 할의 질문을 받은 재시는 잠시 후 할 몫의 고기를 태웠다. 재시는 크게 미소 지으며 실수라고 했지만 할은 알았다. 이것은 재시의 대화법이다. 만일 할이 재시가 하고 있는 쓸데없는 짓의 이유를 묻지 않았다면 재시가 고깃덩어리를 태우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할은 이제 안다. 입조심만 하면 재시가 만든 근사한 요리를 손쉽게 얻어먹을 수 있다. 그 요리들도 이제 얼마 안 남았지만.


“재료가 아깝다.”

“할, 왜?”

“민수 말이야, 방금 토하러 갔잖아. 먹자마자 다시 게워내는 게, 그럴 거면 아예 먹지 말아야 하는 거 아냐? 재료가 너무 아깝다고. 이제 재료도 거의 소진돼 가는 중이잖아.”


할은 아차 싶었다.


“맞아, 할! 그래서 이제부터 요리는 72시간마다 할까 하는데 어때? 합리적이지?”


아, 재시의 심기를 건드렸구나. 하지만 할은 크게 걱정이 되진 않았다. 불편해진 재시의 심기를 돌리는 방법도 알기 때문이다. 재시의 심기가 안 좋을 땐 재시의 아이들 이야기를 물어보면 된다. 게다가 할은 재시가 [블라디미르 3rd 스페이스 콜로니]에 지내고 있는 재시의 아이들 이야기를 들려주는 걸 즐겼다.


1형문명 이전의 휴먼은 77%의 인구수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1형문명에 도달했다. 살아남은 23% 중 20%는 지구를 버리고 구세대 콜로니로 향했고 지구에는 3%가 남겨졌다. 당시 지구는 3%를 유지하기에도 가혹한 환경이었다. 결국 3%의 휴먼이 얼마 안 남은 지구 자원으로 버티기 위해 택한 방법은 휴먼의 개체수를 제한하는 것이었고 철저한 인공수정을 통한 세포 발아로 환경에 맞추어 휴먼의 개체수를 조절했다.

구세대 콜로니로 떠난 휴먼은 콜로니에서 개체수를 늘려가며 오랜 세월 눈부신 발달을 이룩해 2형문명으로 도약했다. 3%의 휴먼에서 시작된 ‘지구 유니언’은 3%를 꾸준히 유지하며 밤하늘의 콜로니 별을 바라보는 어린 휴먼들을 공평과 평등이라는 이름의 교육으로 통제했다. 어린 시절의 할은 자신 주변에 있는 모든 아이들과 똑같은 말만 듣고 똑같은 말만 했다. 그래서 재시가 스스로 ‘엄마’라는 단어를 부여하고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너무나 생경했고 흥미로웠다. 세 아이의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각각 아이 개별적으로 세 가지 이야기가 존재했다. 세상에, 같은 자궁에서 나온 세 아이가 전혀 다른 생각과 다른 선택, 다른 의견을 낼 수 있다니!


재시와 민수는 유로파를 마지막으로 은퇴와 함께 블라디미르 연금으로 남은 시간을 보낼 거라고 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있는 [블라디미르 3rd 스페이스 콜로니]로 돌아갈 때 하게 될 동면이 그들의 마지막 동면이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그들은 오랜 은하계 탐사 생활로 아이들의 많은 시간을 놓친것에 미안해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은하계 탐사 생활로 아이들이 풍요로운 콜로니에서 늙어가고 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콜로니 속도로 에이징 된 그들의 아이들은 셋 다 재시와 민수보다 신체 나이가 많다. 그중 두 번째 아이는 조만간 할아버지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둘째 아이의 아이가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재시는 앞으로 태어날지도 모를 둘째 아이의 손주가 될 아이에게 자신이라는 존재가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호언장담하고 있다. 그래서 이왕 돌아갈 거면 그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콜로니로 돌아가면 민수도 어떻게든 나아질 거란 희망도 가지고 있다. 약에 취해 잠만 재우고 있는 미하르도 볼 일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재시도 할의 보고서에 기대하는 바가 컸다.


“할, 답신이 왔어?”


콜로니 아이들 이야기로 기분이 한결 나아진 재시가 할에게 보고서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아직…”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

“그러게 말이야… 그러고 보니 민수는 좀 괜찮아? 한 동안 괜찮았잖아? 혹시…?

“혹시 뭐?”

“아니, 그러니까. 혹시…”

“민수는 괜찮아. 그냥 가벼운 구토에 소화불량이라고.”

“… 미하르는?”

“미하르가 왜?”

“계속 저대로 둘 거야?”


재시가 잠시 입을 다물고 눈을 깔았다. 그리고 할을 똑바로 쳐다봤다. 자신의 말에 토 달지 말란 뜻이다.


“저대로가, 어때서? 할, 너는 다른 방법이 있니?”

“… 없어.”


미하르는 어느 시점부터 재시가 증상 완화를 목적으로 주는 약에 취해 감금되어 있다.


감금 전, 미하르는 여성형성기 그루이트를 잡아오라며 민수를 괴롭혔다. 그럴 때마다 재시가 치료를 해주고 약을 주면서 진정시켰다. 한 번은 구토에 설사에 엉망진창인 몰골로 미하르가 졸라대니 민수는 그가 너무 불쌍했었나 보다. 재시에게 그냥 한 마리만 잡아오는 게 어떨까 물어봤다. 재시는 바로 입을 닫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왜인지 민수도 똑같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둘 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재시는 민수가 필요로 하는 약도 안 주고 미하르의 약도 끊어 버렸다. 민수는 가벼운 소화불량만 호소했지만 재시의 약효가 완전히 떨어진 미하르는 얼마 안 가 폭주했다. 여성형성기 그루이트를 찾아내라며 포획유닛만 입고 난동을 부렸다. 그는 자신의 성기를 내놓은 채 기지 내 집기를 부술 듯이 돌아다녔다. 민수가 빠르게 포획유닛을 입고 나와 재시가 건네준 주사기로 미하르를 겨우 진정시킨 후 바로 재시에게 사과했다. 이 날부터 미하르는 쭉 감금상태다. 나중에 할은 이 날의 미하르가 단순히 여성형성기 그루이트와 성적인 접촉을 하지 못 한 것 때문에 난동을 부린 건지 아니면 재시가 조금씩 투약해온 약물에 의한 부작용으로 난동을 부린 것인지 재시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재시는 할을 보며 알 수 없는 미소만 날렸다. 현재 미하르는 298시간째 감금 중이다.


할은 똑똑한 아이였다. 지구 유니언은 효과적인 통제를 위해 발아된 세포 단계에서 DNA 분석을 한다. 이를 통해 필요 범주 이하의 재능 미달이 나오면 폐기처분하고 또, 필요 범주 이상의 재능 가능성이 보여도 폐기처분한다. 이것은 계속 이어졌다. 태어난 아이가 필요 범주 이하의 학습능력을 보이면 제거했고 필요 범주 이상의 뛰어난 학습능력을 보여도 제거했다. 할은 항상 아슬아슬하게 똑똑했다. 어린 할은 정확한 이유를 가늠해내진 못했지만 옆의 친구와 똑같이 말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야 옆의 친구와 똑같은 말을 들을 수 있고 제거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공평과 평등의 통제 속에서 살아남으려던 할은 어느 날, 자살을 시도했다. 뭐가 먼저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똑같이 말하기 싫어서였던가? 똑같은 말을 듣기 싫어서였던가? 이 날, 지구 유니언이 그토록 염원하던 블라디미르 그룹과의 우주개발 협약이 체결되었고 자살시도 때문에 그대로 제거될 예정이었던 할은 ‘블라디미르 우주 협약 교육’ 참여자 명단에 이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할은 지구유니언의 공평과 평등이라는 교육 때문에 목숨을 끊으려 했으나 통제에서 벗어난 ‘블라디미르 우주 협약 교육’에는 목숨을 걸고 임했다. 동면 실습에서 몇몇이 정신을 잃을까 두려워 끝까지 못 버틸 때도 할은 끝까지 해내고 정신을 잃었다. <2형문명 우주환경 보호법>을 배울 때는 전혀 다른 것을 물어보고 옆 사람과 완전히 의견을 제시했다. 할은 이 모든 것을 제거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과 함께 했다. 당연히 제거될 일은 없었다. 그리하여 할은 점점 제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안정감을 찾아갔다. 이 안정감을 주는 <2형문명 우주환경 보호법>이 할에게는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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