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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방학 Aug 22. 2019

당신은 당신의 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워킹대드 주짓떼로 - 프롤로그

아침 6. 늦었다. 서둘러 어젯밤 챙겨 놓은 가방을 둘러메고 집을 나선다. 아내와 아이가 깨지 않게 소리를 죽이고 현관문을 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출입구로 내려가면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서울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왼편으로 어스름에 숨은 인왕산이 보인다. 하지만 경치를 감상하며 걷기에는 늦잠을   같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 요금이 할인되었습니다.

(*실제로는 요금할인 안내 음성이 없다)



조조할인이다. 극장 말고 시내버스에도 조조할인이 있단  아침에 운동을 하면서 처음 알았다. 적용되는 시간이 얼추 6 반까지였나.  백원 차이지만 괜시리 기분이 좋아진다. 커다란 스포츠 백을 가슴에 끌어안고 몸을 좌석 시트에 묻은 , 잠이   눈으로 아직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한 서울의 새벽 거리를 훑는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그리고 생각보다 한산한 공간이 거기 있다. 조금 느슨하고 여유로운 공기 같은 것이 거리를 아우르고 있다.  정거장쯤 지나 다시 정류장에 내리면 나도  풍경  하나가 된다. 머리에는 까치집을 졌지만 머리는 맑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건널목 앞에 선다. 도시의 아침을 여는 사람들. 이렇게  놓고 나니 쑥스러운 기분이 들지만, 정말 그런 기분이다.

 

도장에 도착. 아슬아슬 세잎. 준비운동 시작 전이다. 윗층으로 올라가 가방에서 도복을 꺼내 입고 마우스 피스를 챙겨 도장으로 내려간다. 사람들과 아침 인사를 한다. , 시작이다.

 

***

 

주짓수를 합니다, 라고 취미가 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솔직히 대답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 신기한 운동을 하네요.’ ’그게 뭔데요?’사이에서 오간다. 티비에도 나오고 해서 어느 정도 알려진  맞지만, 아직도 중국 음식 메뉴의 마라탕 정도의 인지도 수준인  같다.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상호 피곤한 관계로 생략하고 나면, 화제는 커피나 오디오 같은 좀더 노말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쉬운 주제로 넘어가기 마련이다. 나도  편이 마음이 편하다. 주짓수란 말입니다. 하고 유창하게 설명할 자신이 나에게도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지상 최강의 무술, 여자가 남자를 이길  있는 유일한 운동 등으로 조금  자세한 정보가 쥐어져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설명이 뭔가 구체적인 설명을 담고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예를 들어 수영이 뭐냐고 묻는다면,  속에서 가라앉지 않고 앞으로 혹은 뒤로 전진하는 기술 정도로 요약할  있다. 맞다 틀리다를 떠나 그런 설명이 수영이 뭐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상당히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릴  있게 도움을 준다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주짓수에 관한 설명은 ‘평가 가깝기에 설명만으로는 구체적으로 주짓수가 무얼 하는 건지는  수가 없다.

 

 

그럼 주짓수는 무얼 하는 운동인가? 이제 겨우 일년  다닌 경험으로 누구나 공감할  있는 객관적 정의를 내리기는 어려울  같다. 물론, 통용되는 정의는 있다. “타격을 제외한 그래플링 격투기같은 식으로. 하지만 주짓수를 시작하기 전에 누군가 나에게 그런 설명을 해줬다면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을  같다. 주짓수를 조금 배운 지금으로서도 딱히  닿지 않는다. 누군가는 주짓수를 “몸으로 하는 체스라고 한다. 고르자면, 이편이 좀더 실제 경험에 근사하다. 몸으로 푸는 퍼즐 같은 느낌이다.  몸을 도구로 삼아 상대방이 제시한 퍼즐을 풀어간다. 마찬가지로 상대방도 다른 퍼즐을 제시하고 그런 식으로 끝없이 이어진다. 그러면 마치 서핑을  때처럼 파도의 흐름이 있고 나는 그저  위에 몸을 맡길 뿐이라는 기분이 든다.



모든 사람이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 주짓수는 ‘격투기라기 보다는 서핑이나 함께 추는 춤에 가깝다. 그래서 스파링에 임할 때면, 싸우거나 이긴다기 보다는 파트너와 함께 좋은 파도의 흐름을 만들어 내고  흐름을 즐긴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건 마치  밖에서 즐기는 서핑처럼 근사한 경험이다.



이런 기분이랄까



***


주짓수는 운동시간=수업시간이 정해져 있다.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준비 운동 30, 기술 연습 수업 30, 스파링 30, 도합 1시간 30분으로, 대체로 전세계의 모든 도장이 비슷한 룰을 가지고 있다. 누가 정한 건지는 모르겠다. 준비운동 시간이  이렇게 길어요 라고 물어도 글쎄요 라고 머리를 긁적일 밖에. 하지만 몸을 많이 쓰고 특히나 관절이 유연하지 않으면 부상을 당하기 쉬워서 충분히 몸을 풀어줘야 한다. , 어깨, 팔꿈치, 무릎과 같이 관절 부위와 , 엉덩이, 햄스트링 같은 평소  사용하지 않는 부위의 근육도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긴장을 풀어준다. 주짓수는 한자로 유술(柔術)이라고 쓰는데, 부드러운 기술이라고 직역할  있다. 실제로 몸이 부드럽지 않으면 주짓수의 기술을 제대로 발휘할  없다. 그래서 마치 요가를 하듯이 몸의 구석구석 막힌 부위를 풀어주는 것이다.

 

시합 영상이나 티비에서 단편적으로 다루어지는 주짓수만을 접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설명이 낯설지도 모르겠다. 시합은 상대에게 항복() 받아내는  목적이라 거칠고 딱딱한 움직임이 많다. 티비에서도 주로 주짓수의 ‘강함 강조하다보니 상대를 압박하고 제압하는 기술과 움직임 위주로 보여준다. 하지만 도장에서 하는 스파링은 누구를 이기기 위해서도 내가 강하다고 자랑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자기 자신의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를 알게 되는 깨달음의 과정에 가깝다. 우리는 매일 몸을 움직이지만, 주짓수를 해보면, 내가 나의 몸을 충분히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아예 방치되어 있던 부위도 많고, 굳어서 정체되어 있던 구역도 많다. 그런 부분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사용되기 시작하고 풀어지고 새로운 움직임으로 나아간다. 마치 뇌의 새로운 부위가 일깨워지듯 짜릿한 즐거움이 생겨난다.

 

어이쿠, 아침에 그렇게 운동을 하고 어떻게 출근을 ? 라며 대단하게 보아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히려 반대다. 하루 종일 사무실 모니터 앞에 앉아 손가락만 움직이는 나에게 전신을 활발하게 움직여야만 하는 주짓수는  자체로 휴식이 된다. 운동을 하고 나면 땀이 나고 몸은 힘들지만 이상하게 상쾌하다. 잠이   채로 사무실에 들어가는 기분과는 전혀 다르다. 몸의 신경이 완벽히 깨어난 채로 출근을   있는 것이다.

 

마치 주짓수를 권장하는 글처럼 되어버렸는데, 사실 그렇다. 나는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격투기라는 선입견을 내려 놓고 주짓수에 진입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승패의 개념을 치워두고 마치 처음 걸음마를 배우듯 주짓수의 움직임을 배워간다면, 당신이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짐을 알게  것이다. 그리고 그건  즐거운 변화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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