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주짓수

리암 닐슨이 되고 싶었어요

워킹대드 주짓떼로 10편

by 자음의 기록

도장에 불규칙적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대체로 ‘아빠’들이다. 나와 같은 워킹대드 주짓떼로들이다.



왜 그러냐 하면, 육아란 불규칙한 이벤트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언제 아플지도 모르고, 언제 잠에서 깰 지도 모른다. 같은 시간에 자도 다른 시간에 일어나기도 하고, 똑 같은 음식을 먹었는데 소화를 못하고 토하기도 한다. 내가 의사도 아니고 솔직히 병원에 가 봐도 ‘의사라고 다 아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냥 애들은 원래 그러면 서 커, 라는 속언이 보다 정확한 표현처럼 느껴진다.



워킹대드 2년차(이지만 아이가 겨울 생이라 실제로는 1년도 채 안된) 나는 아직 모든 게 서툴다. 아이 케어하는 일도 그렇고 아내 기분 맞추는 일도 그렇다.



“요즘 와이프가 주짓수 나가는 걸 싫어하네요.” 라고 어느 형님이 말하길래 격하게 공감했다. 아내들은 워킹대드 주짓떼로들을 싫어한다. 물론 처음 시작할 때만해도 회사 다니기도 힘들 텐데 운동까지 하는 건실한 아빠의 모습에 응원을 받지만, 슬슬 한 두 군데씩 다쳐서 들어오기 시작하고, 몸에는 여기저기 멍이 들어 있으며, 그러면서도 꼬박꼬박 도장에 나가는 모습을 보다 보면, 저 인물이 저걸 가장 우선시하네? 하는 의혹이 들기 마련이다.



나는 아내 앞에서 그 의혹을 늘 부정한다. 나에겐 당신이 가장 먼저, 그리고 율이, 그리곤 없어, 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흡사 집 안에 몰래 숨어 들어온 절도범 마냥 도복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다가 걸리면 솔직히 양심이 쿡쿡 찔린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요?” 라는 질문을 참 많이 받는다. 그럴 때면 나는 “이건 ‘밖’에서 보는 거랑 ‘안’에서 하는 거랑 완전히 다른 운동이에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어느 운동인들 안 그럴까. 사실 모든 운동이 역도 같은 것만 빼면 직접 하는 편이 훨씬 재밌다(역도도 재밌을지도 모른다). 프리미어 리그를 티비로 보는 것 만큼이나 동네 조기 축구에서 뛰는 일도 신난다. 현장의 기쁨이 있다. 하지만 ‘격투기’라는 겉옷 때문에 다른 운동보다 훨씬 더 이해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저런 과격한 운동은 내면에 억누를 수 없는 폭력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해서나 필요한 것이지’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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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동기를 말하자면, 지금이야 그저 재밌어서 하는 거지만, 처음에는 ‘강해지고 싶었다’. 그 생각이 가장 크게 든 계기는 아내와 함께 간 유럽 여행에서 취객을 만났을 때였다. 우리는 프라하의 거리를 걸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순간 어디선가 외국인 두 명이 나타나 나와 아내의 양 옆으로 오더니 같은 프레임 안에서 사진을 찍었다. 놀라서 쳐다보니 20대 초중반쯤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었는데 위스키 병 같은 것을 한 손에 들고 있었고 눈동자가 풀려 있었다. 그들은 프라하에 온 관광객인 우리를 환영한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말을 걸었지만, 나는 대화 내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갑자기 돌변해서 위스키병으로 내 머리를 때리면 어떡하지? 선빵(표준어는 아니겠죠?)을 날려야 하나?



다행히 그들은 그저 술 취한 20대 프라하 청년들이었고 주접을 좀 떨다가 제 갈 길을 갔다. 아마 시내 어딘가에서 맥주 축제 같은 것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안도했지만,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그날 하루 종일 사주 경계를 하며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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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돌아온 나는 격투기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를 순식간에 제압할 자신이 없으니 선빵을 날려야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하게 된 것이다(선빵을 날렸으면 정말 큰 일이 났을 수도 있다). 나는 리암 닐슨의 영화의 리암 닐슨처럼 평소엔 조용하다가도 순식간에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그런 ‘온화하지만 건드려서는 안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체급에 크게 구애 받지 않으면서도 맨손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무술, 그게 주짓수였다.



그래서 자신감이 좀 생겼냐면, 솔직히 그렇다. 전과 같은 상황이 일어나도 별로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설사 뒤에서 목이 졸려도(백초크라고 한다) 빠져나올 자신이 있고, 마음만 먹는다면 상대를 제압할 수도 있다. 두 명이면 좀 버겁긴 하지만 아내를 도망치게 할 만큼의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다(내 머리의 안전은 둘째치고라도). 어딜 가든 어떤 상황에 노출이 되든(물론 상대가 칼이나 총을 가지고 있다면 아찔하겠지만) 아내와 딸 아이를 내가 목숨 걸고 보호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



영화 속 리암 닐슨처럼 워킹대드 주짓떼로는 평소에 사랑받기가 좀 힘들다 (리암 닐슨은 이혼 당한 아빠로 나오는 경우가 많더라). 별 쓸모가 없어 보이니까. 그렇다고 영화에서처럼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조금은 이해를 해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내가 좋아해서 하는 거 맞습니다. 근데, 휴대용 쎄콤 하나 장만한다 셈 치고 조금만 너그러이 봐주면 안될까요?



아직은 새끼 악어 수준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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