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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방학 Aug 23. 2019

리암 닐슨이 되고 싶었어요

워킹대드 주짓떼로 10편

도장에 불규칙적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대체로 ‘아빠’들이다. 나와 같은 워킹대드 주짓떼로들이다.

 

 그러냐 하면, 육아란 불규칙한 이벤트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언제 아플지도 모르고, 언제 잠에서  지도 모른다. 같은 시간에 자도 다른 시간에 일어나기도 하고,  같은 음식을 먹었는데 소화를 못하고 토하기도 한다. 내가 의사도 아니고 솔직히 병원에  봐도 ‘의사라고  아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냥 애들은 원래 그러면  , 라는 속언이 보다 정확한 표현처럼 느껴진다.

 

워킹대드 2년차(이지만 아이가 겨울 생이라 실제로는 1년도  안된) 나는 아직 모든  서툴다. 아이 케어하는 일도 그렇고 아내 기분 맞추는 일도 그렇다.

 

“요즘 와이프가 주짓수 나가는  싫어하네요. 라고 어느 형님이 말하길래 격하게 공감했다. 아내들은 워킹대드 주짓떼로들을 싫어한다. 물론 처음 시작할 때만해도 회사 다니기도 힘들 텐데 운동까지 하는 건실한 아빠의 모습에 응원을 받지만, 슬슬   군데씩 다쳐서 들어오기 시작하고, 몸에는 여기저기 멍이 들어 있으며, 그러면서도 꼬박꼬박 도장에 나가는 모습을 보다 보면,  인물이 저걸 가장 우선시하네? 하는 의혹이 들기 마련이다.

 

나는 아내 앞에서  의혹을  부정한다. 나에겐 당신이 가장 먼저, 그리고 율이, 그리곤 없어, 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흡사  안에 몰래 숨어 들어온 절도범 마냥 도복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다가 걸리면 솔직히 양심이 쿡쿡 찔린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요? 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럴 때면 나는 “이건 ‘밖’에서 보는 거랑 ‘안’에서 하는 거랑 완전히 다른 운동이에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어느 운동인들  그럴까. 사실 모든 운동이 역도 같은 것만 빼면 직접 하는 편이 훨씬 재밌다(역도도 재밌을지도 모른다). 프리미어 리그를 티비로 보는  만큼이나 동네 조기 축구에서 뛰는 일도 신난다. 현장의 기쁨이 있다. 하지만 ‘격투기’라는 겉옷 때문에 다른 운동보다 훨씬  이해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저런 과격한 운동은 내면에 억누를  없는 폭력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해서나 필요한 것이지’ 라는 생각이  수도 있다.

 

**

 

개인적인 동기를 말하자면, 지금이야 그저 재밌어서 하는 거지만, 처음에는 ‘강해지고 싶었다’.  생각이 가장 크게  계기는 아내와 함께  유럽 여행에서 취객을 만났을 때였다. 우리는 프라하의 거리를 걸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순간 어디선가 외국인  명이 나타나 나와 아내의  옆으로 오더니 같은 프레임 안에서 사진을 찍었다. 놀라서 쳐다보니 20 초중반쯤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었는데 위스키  같은 것을  손에 들고 있었고 눈동자가 풀려 있었다. 그들은 프라하에  관광객인 우리를 환영한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말을 걸었지만, 나는 대화 내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갑자기 돌변해서 위스키병으로  머리를 때리면 어떡하지? 선빵(표준어는 아니겠죠?) 날려야 하나?

 

다행히 그들은 그저  취한 20 프라하 청년들이었고 주접을  떨다가   길을 갔다. 아마 시내 어딘가에서 맥주 축제 같은 것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안도했지만,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그날 하루 종일 사주 경계를 하며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

 

한국에 돌아온 나는 격투기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를 순식간에 제압할 자신이 없으니 선빵을 날려야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하게  것이다(선빵을 날렸으면 정말  일이 났을 수도 있다). 나는 리암 닐슨의 영화의 리암 닐슨처럼 평소엔 조용하다가도 순식간에 상대를 제압할  있는 그런 ‘온화하지만 건드려서는 안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체급에 크게 구애 받지 않으면서도 맨손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무술, 그게 주짓수였다.

 

그래서 자신감이  생겼냐면, 솔직히 그렇다. 전과 같은 상황이 일어나도 별로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설사 뒤에서 목이 졸려도(백초크라고 한다) 빠져나올 자신이 있고, 마음만 먹는다면 상대를 제압할 수도 있다.  명이면  버겁긴 하지만 아내를 도망치게  만큼의 시간은 충분히   있다( 머리의 안전은 둘째치고라도). 어딜 가든 어떤 상황에 노출이 되든(물론 상대가 칼이나 총을 가지고 있다면 아찔하겠지만) 아내와  아이를 내가 목숨 걸고 보호할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

 

영화  리암 닐슨처럼 워킹대드 주짓떼로는 평소에 사랑받기가  힘들다 (리암 닐슨은 이혼 당한 아빠로 나오는 경우가 많더라).  쓸모가 없어 보이니까. 그렇다고 영화에서처럼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기를 바라는  아니지만, 조금은 이해를 해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내가 좋아해서 하는  맞습니다. 근데, 휴대용 쎄콤 하나 장만한다  치고 조금만 너그러이 봐주면 안될까요?



 

아직은 새끼 악어 수준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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