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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방학 Aug 23. 2019

싸우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워킹대드 주짓떼로 2-3편

나는 결혼 생각이 없었다. 따라서 자식 생각도 없었다. 그러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 일사천리로(라기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혼에 골인, 이제 기어다니기 시작한 9개월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그리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우선 나는 걱정이  많아졌다. 세상은 ‘여자 아이 살기에 험난한 장애물이 많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도 그런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때의 걱정이 ‘피상적이었다면 지금은 매우 ‘현실적이다.  딸의 일이 되었으므로. 하지만 내가 바꿀  있는 일들은 많지 않다. 제도를 바꾸는 일도, 사회 인식을 변화시키는 일도 쉽지 않다.  안에서 작은 역할을 해볼 수는 있겠지만, 나는 그보다는 아이가 자신의 몸을 지킬  있는 능력이 있었으면 했다.

 

격투기를 배운다고 해서 인간 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무력으로 해결하길 바란다는  아니다. 사실 현실적으로 갈등이 몸싸움으로 번지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도장에서도  듣는 말은 ‘시비가 붙으면 피해라이다. ‘ 주짓수 했거든 니들  가만  ’,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몸싸움으로 번질 경우, 일어날 일들에 대해 이미 숙지하고 있기에 그런 상황은 되도록 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 대한 대비가 있을 때의 마음가짐과 그런 준비가 전혀 없을 때는 다르다.

 

대비가 되어 있다면 침착할  있다. 상대가 화를 돋우거나 시비를 걸어와도 제압할  있기에 긴장하거나 감정을 폭발 시키지 않아도 된다. 조용하고 침착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있다. 하지만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갈등이 고조될수록 불안해진다. 저러다가 상대방이 먼저 나를 공격하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누군가 손을 뻗고 몸싸움이 되고 심각한 부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주짓수를 수련하는 이유는 “싸우지 않기 위해서이다.

 

이런 방식으로 싸우지 않으려는 건 아니었는데..




 

많은 경우, 특히 티비에서 앞다투어 다루는 것은 주짓수의 화려한 “공격기술이다. 플라잉 암바의 경우  그대로 날아서 상대의 팔에 암바를 거는 기술로 매우 화려해 보인다. 하지만 그만큼 공격하는 측이나 당하는 측이나 위험하다. 시범을 보였던 연예인이 상당히 오랫동안 주짓수를 수련했기에 가능한 동작이었다. 그러나, 짧은 경험에 불과하지만, 주짓수의 정수는 공격이 아니라 “방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블랙벨트인 관장님도 늘상 하는 말씀이니 그리 어긋난 생각은 아닐  같다.

 

방어는 언뜻 시시해 보인다. 상대방에게 깔려서 가만히 누워있는 것으로도 보이고,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공격을 당하고도 침착한 정신을 유지한다는 것은 단순히 마음먹기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상대가 어떻게 공격해올지를 알고, 그에 대처할  있으며 또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을 알고 있다는 “자신 있어야 한다.

 

 

그레이시 가문(지금의 주짓수를 만들어낸 집안) 지금의 주짓수의 대세인 점수제 방식의 주짓수 시합을 거부하고, 15 동안 (항복의 의미로 상대의 몸이나 바닥을 빠르게 치는 행위) 치느냐  치느냐로 결정되는 형태의 새로운 시합을 만들었다. 이때 히론 그레이시가  유명한 안드레 갈벙 선수와 보여준 시합은 인상적이었다. 그는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운동선수와 같은 근육질의 몸처럼 보이지도 않고(오히려 호리호리해서 맥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상대를 죽일 듯한 기세로 노려 보지도 않는다. 마치 동네 마실이나 나온 사람처럼 공격을 당해도 느긋하게 방어 자세를 취한  깔려 있다.

 

현재의 점수제 시합에서는 깔려 있으면 점수가 깎이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빠른 시간 안에 탈출을 해야 한다. 그러나  시합에서는  여부에 따라 시합이 결정되기에 줄곧 아래에서 방어만 해도 상관이 없다. 그렇게 그는 15 동안 거의 내내 갈벙 선수에게 공격권을 내준  계속되는 서브미션 공격을 너끈히 막아냈다.

 

 경기를 보며 나는 엘리오 그레이시(주짓수를 지금의 형태로 발전시킨 인물) 아흔이 다된 몸으로, 월드챔피언 제자에게 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네가 나보다 힘이 세고 강할 지는 모르지만, 나는 너에게 지지 않는다.”

 

처음엔 무슨 말인가 의아했다. 20대의 전성기를 누리는 제자에게 지지 않는다니. 하지만 조금 곱씹어 생각해보니, 그는 ‘이길  있다 말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지지 않는다  것이다.

 

주짓수는 상대를 이기는 운동이 아니라, 90 노구를 이끌고도 상대에게 지지 않을  있는,  부드러워지고 약해질수록 깊어지는 운동이라는 말을 남긴 것이다.

 

**

 

 아이가 주짓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 도복을 입어야 하고 손톱도 기를  없고  머리는 방해되기 십상인데다 땀은 어찌나 나는지. 당연히 강제로 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이가 ‘지지 않는 자신감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것은 험난한 세상에서 딸의 인생을 지켜주는 무엇보다 든든한 뿌리가 되어줄 것이다. 거기에 이르는 최상의 길이 주짓수라고 아빠가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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