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일의 여정이 남긴 건 풍경이 아니라 나였다
응원하고 지지하는 관계 속에서 감사함을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사실 그 무엇보다도 가장 나를 응원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일 것이다.
나를 진정으로 응원하면서
나로 살아가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바로, 그 시작의 이야기를 글로 남겨본다.
대학교 시절, 내 돈으로 계획한 첫 해외여행은 남미였다. 거의 첫 여행지로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친구 덕분에 가능해졌다.
나를 포함해 세 명. 우리는 남미의 다섯 나라를 돌기로 하고, 각자 두 나라씩 맡아 계획을 나눠 가졌다. 여행 경험이 있던 친구의 조언을 따르며 하나씩 준비해 나갔다.
출발 직전까지 한국은 겨울. 당시 스키강사 일로 바빠서 여행 준비는 친구들에게 더 많이 의지해야 했다. 나는 체력으로 보탬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그저 따르기로 했다. 설렘 반, 긴장 반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첫 목적지는 고산지대 볼리비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맞닥뜨린 건 고산병이었다. 친구 하나가 쓰러질 정도로 산소가 부족했다. 불안한 시작이었지만, 다행히 우리는 곧 적응했다. 그 후 칠레로 이동해 투어도 하고, 매 끼니를 스스로 해결하며 짠내 나는 배낭여행을 이어갔다. 비 오는 날, 캠핑도구로 바비큐장을 빌려 꺼지는 불을 살려가며 밥을 짓고, 고기를 구워 먹었다. 단맛 하나 없는 콘푸로스트에 숙소 셀프바에서 설탕을 부어 먹던 기억도 남아 있다.
그런데, 여행이 길어질수록 각자의 차이가 드러났다. 나는 여행 예산을 넉넉히 잡았고, 먹는 것도 중요하게 여겼다. 현지 음식을 충분히 즐기고 싶었지만, 친구들은 투어 중심의 여행에 집중했고 식사는 최소한으로 하려 했다. 각자 맡은 구간의 예산도 달라져 갈등이 시작됐다.
나의 여행 스타일은 자유로운 것이었다. 만났다 헤어지고, 또 만나고.. 그 속에서 여행의 묘미를 느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여행은 달랐다. 위험한 지역이라고 알려졌기에, 우리는 항상 셋이 함께 움직여야 했고, 나는 친구들의 컨디션을 살피며 발걸음을 맞춰야 했다. 배낭여행을 가면 자유로움을 느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속박된 듯했다. 내 안의 개인주의 성향을 마주한 것이다.
친했던 친구들과의 여행이었지만, 점점 서로를 몰랐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쏘울메이트라 생각했던 친구와도 갈등이 생겼고, 나는 그 안에서 외로움을 느꼈다. 말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감정은 결국 마찰로 이어졌고, 한 번은 친구들을 걱정시키는 일도 저질러버렸다.
그때 나는 갈등을 피하는 방식밖에 몰랐다. 무조건 미안하다고 말하면 상황이 해결된다고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미숙한 태도였다.
그런 내게 작은 위로가 되어준 건 밤의 루프탑에서 마시던 맥주 한 잔이었다. 대화를 풀 수 없던 우리 셋의 마음은 맥주 캔을 따는 소리로 겨우 숨통이 트였다. 마음의 틈을 알코올이 메웠다. 그 밤, 친구가 건네는 담배도 처음 피웠다. 운동하는 사람으로서 절대 피우지 않겠다는 신념도 그때는 흐릿해졌다.
그렇게 함께 고생하고 즐기고 다투며 여행을 마쳤고, 한국에 돌아오니 우린 더 이상 친구가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독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
아름다운 풍경은 지금도 마음속에 남아 있다. 아쉽게도 사진 파일 대부분이 날아가 단 몇 장만 남았지만, 그보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감정의 풍경들이다.
나는 그 여행에서 외로움을 느꼈고, 내가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깨달았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다. 그때의 내가 부족하긴 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무엇이던 따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나는 제대로 못 따랐다. 나를 모르고 상대를 몰랐다. 그 사이 생긴 갈등과 혼란은 여행 중 이도저도 하지 못하게 했다.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고만 스스로 낙인을 찍고 마음은 삐뚤어졌으며 그것이 행동으로 표출되었다.
여행을 다녀온 후로 나를 찾아야 했다.
나는 조금씩 나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나를 다그치던 목소리 대신,
나를 이해하려는 목소리를 키워갔다.
그 순간부터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응원하게 되면서
비로소 내 안의 부족함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여정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나를 아는 것, 나로 살아가는 것.
바로 나를 향한 응원에서 비롯되었다.
그 첫걸음을 친구와 떠난 배낭여행에서 배웠다.
여러분은 언제, 나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