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되, 대신 걸을 수는 없다

by 글쓰는 트레이너

영어 강의를 아무리 잘 듣고,
아무리 열심히 수강해도
본인이 연습하지 않으면 영어는 늘지 않는다.


그 어떤 명강사가 가르친다 해도
연습하지 않는다면
기대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


반대로 명강사가 아니더라도
그 안에서 배워
눈에 띄게 성장하는 제자는 있다.


기본만 알려줘도
연습으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
결국 실력은 그런 사람의 것이 된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혼자 연습하지 않으면
내 감각으로 가져오는 속도는 더디고,
스스로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을 통과하지 않으면
성장도 그만큼 더디다.


결국, 행하는 사람의 몫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나는 그동안
내가 충분히 이끌지 못한 탓만을 해왔다.


분명 내 책임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결과가
내 책임만은 아니었다.


이제는 안다.

PT 수업은 안내자의 역할이라는 것을.

나는 회원의 삶을 통제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저 그 사람의 성장을 믿으면 되는 일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약 100분.
PT는 운동을 해주는 시간이 아니라
운동을 배우는 시간이다.

정교한 자세를 입력하고,
감각을 찾고,
그제서야 혼자서는 내기 어려운
퍼포먼스를 경험하는 시간.


PT를 받는다고 해서
자동으로 근육이 생기지는 않는다.
PT를 받는다고 해서
무조건 살이 빠지는 것도 아니다.


본질은 단순하다.

운동의 양이 쌓여야 근육이 생기고,
적절하게 먹어야
불필요한 군살이 빠진다.


이 영역은
트레이너가 대신 해줄 수 없는,
회원이 삶에서 실천해야 하는 영역이다.


한 회원님이
지인에게 근육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때 들은 말이 이랬다고 한다.

"PT 받는데, 너 몸은 왜 그래?"


덧붙이자면,

그 회원님은 수업 시간만큼은

늘 집중해서 잘 따라와 주던 사람이었다.

태도나 성실함을

의심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그 말은

본의 아니게

트레이너인 나의 자리까지

흔들어 놓는 말처럼 들렸다.

솔직히,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한 번쯤은
이렇게 생각해봐야 한다.


트레이너의 능력을 말하기 이전에,

내 운동량은 충분했는지.

내 식사 습관은 어땠는지.


PT를 '케어의 시간'이 아니라

'배움의 시간'으로 대했는지,
그 배움을 개인 운동에
충분한 시간과 고통으로 옮겼는지.


몸은 정직하다.

근육은 근력운동을 제대로 할수록 드러나고,
음식을 어떻게 먹고 회복하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케어를 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불가능한 것을 내려놓기로 했다.


운동이 삶으로 스며들면 몸으로 드러난다

이를 위한 실천을 통제하는 대신,
믿기로 했다.
믿지 못해서 그동안 조급했기도 하다.


이제는 나를 믿듯 회원도 믿는다.

건강한 습관들을 가로막는 것이 무엇인지,
고객의 웰빙을 더 길게 바라보고,

어떻게 가는 것이 옳은 방향인지 고민하며,

그 길을 각자의 속도에 맞춰
함께 걸어가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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