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충분히 얻었는데도 남아 있었던 이유

by 글쓰는 트레이너

호주에서 트레이너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보다
나는 결국 호주로 왔다.

이곳의 시스템에 맞게 자격증 공부를 하고

대형 센터와 계약해 현장의 구조를 익혔다.

회원들을 직접 티칭 하며

어느덧 9개월이 지났다.


왜 호주에 왔을까 다시 떠올려보면,

사실 답은 단순했다.

사람들이 운동을 대하는 태도,
운동이 삶 속에 자리 잡은 방식,
이곳의 시스템을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웨이트 트레이닝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쉽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센터에 들어서면

울그락 불그락한 몸들이 먼저 떠오르고,
근력운동을 하면 괜히 몸이 커질 것 같고,
머신을 잘못 쓰면 다칠까 봐
결국엔 유산소 기구만 타다 나오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웨이트 문화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발전해 왔다.
그 과정에서 멋진 근육을 만들어내는
보디빌딩 중심의 문화가 자리 잡았고,
근력운동은 '몸을 만드는 수단'으로 인식되기 쉬웠다.

여전히 대중 인식의 중심에는 '몸을 만드는 운동'이 있다


시니어층에게 근력운동은 여전히 낯설다.
TV 프로그램 속에서 근력운동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분들의 다부진 몸은 오히려
일반인들에게 "나는 저 정도는 못 해"라는
거리감을 만들기도 한다.


현장에서 트레이너로 일하다 보면
이미 몸이 아파서,
"이제는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센터를 찾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운동은 치료가 아니라 예방이다.
아프기 전에 찾아와야 하는 곳이다.


물론 통증의 상당수는
움직이지 않아서, 약해진 곳 때문에 생긴다.
그래서 꾸준히 운동을 하면
대부분은 충분히 좋아진다.
다만 많은 분들이
운동을 배우러 오기보다
'케어를 받으러'오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들에게 PT 시간은

유일한 운동 시간이다.

그것도 틀린 선택은 아니다.

그만큼 운동을 배워본 경험

자체가 적은 구조이기도 하다.


하지만 웨이트 트레이닝은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운동이다.
몇 년씩 계속 받아야만 하는 것이라면
그 비용이 아깝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나 역시 교육을 받고,
혼자 연습하며 쌓은 시간이 더 길었으니까.


내가 바라본 한국 피트니스의 흐름은
대체로 이랬다.

체중 감량 비포 애프터 중심의 홍보,
바디프로필과 대회 문화,

혹은 재활과 체형 교정으로의 분화.


그 사이에서
일반인들은 여전히
'운동을 배우는 일'에는
쉽게 돈을 쓰지 않는다.
운동을 시작하면
괜히 살부터 빼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낀다.

PT로 인해 수치로서의 변화를 기대하게 된다.


그러던 중

그룹 트레이닝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형 센터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구성원들 역시

여전히 젊은 층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더 궁금해졌다.
호주에서는 누가, 어떻게 운동을 할까.

도착하자마자 들어간 센터에서
백발의 여성이 웨이트를 하고 있었고,
많은 중년의 사람들이
덤벨과 바벨을 자연스럽게 들고 있었다.


체형이 어떻든 상관없이
"나는 웨이트를 즐긴다"라고 말하는
중년 여성들의 태도는 인상적이었다.


피트니스 학교에서의 교육 방식,
대형 헬스장의 시스템,
현장의 분위기까지.
모든 것을 다 겪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내 인식을 깨기에는
충분한 경험이었다.


호주에 온 진짜 이유는
한국에서 굳어 있을 뻔한 나의 인식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깨고, 시야를 넓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교육을 받고,
직접 센터에서 일하면서
점점 더 분명해진 것이 있었다.
내가 정말로 내세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호주에서 얻고자 했던 것은

이미 충분히 얻었다고 느낀 지

꽤 시간이 지났다.


그럼에도 이곳에 머문 이유는

이곳에서 만난 회원님들이

혼자서도 자신감 있게

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일까지가

내 몫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얻을 것은 다 얻었다고 해도

쉽게 돌아갈 날짜를 정하지 못했다.

괜히 책임을 다하지 못한 채

떠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떠날 날짜를 정했다.

이 정도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는 시점.


사실 일찍 돌아가도 괜찮았다.
그럼에도 계속 망설였던 이유.
그 실체는 이것이었다.


회원님들은
나 말고도
얼마든지 다른 트레이너와
운동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는 것.

그냥,
나와 맺은 인연.


그게 마음에 남았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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