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을 잃은 공진화
이일하 교수의 『생물학 산책』을 읽다가
'공진화'라는 단어가 나왔다.
치타가 빠르게 달리는 이유는,
피식자인 가젤이 놀라운 속도로 달리기 때문이다.
가젤이 살아남기 위해 빨라질수록,
포식자인 치타 역시 더 빨라져야만 생존할 수 있다.
진화적 경쟁에는 끝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모란 박사의 공진화 실험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공진화의 상대인 기생균이 진화하지 않을 때는,
유성생식이 선택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생균이 진화하자 개체는 유성생식을 선택했고,
그 결과 더 다양한 유전자를 가진 개체가 살아남았다.
진화는 늘 '상대의 변화’에 의해 촉발된다.
이 지점에서 나는 공진화가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
멈추는 순간 뒤처질 것 같다는 감각,
달리지 않으면 퇴보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우리는 쉬지 못한다.
공진화는 분명 생명을 성장시키는 힘이지만,
그 방향이 잘못되면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공진화 자체에 좋고 나쁨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방향'이다.
오늘 북클럽에서는 이런 말이 나왔다.
"어른이라면 문제의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회에 불만을 말하면서도,
그에 맞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또 다른 모순이 아닐까.
나 역시 내 분야에서 분명한 문제의식을 느낀다.
다이어트와 운동이 점점 본질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빠른 체중 감량을 원한다.
때로는 필요하지도 않은 감량을 욕망한다.
그 결과 다이어트 약을 찾고,
그 약으로 인해 심각한 부작용을 겪는다.
식욕을 조절하지 못하는 문제가
'나'에게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약의 힘으로 식욕을 억누른다.
하지만 약을 끊는 순간,
억눌렸던 식욕은 더 크게 밀려온다.
약을 다시 찾게 되고,
내성이 생기면 더 많은 약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이 악순환이 요즘 많이 보이고 있다.
다이어트의 본질이 식사를 조절하는 일이라면,
그 능력은 사실 우리 몸 안에 이미 존재한다.
문제는 그 능력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지금 내 수준에서, 한 발씩 나아가는 일.
이를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재의 식습관을 돌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실천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바꿔보는 것.
그전에 꼭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면,
못 먹는 음식은 없다는 점이다.
살찌는 음식과 살 빠지는 음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맛있게 먹되 나의 배부름 신호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음식을 먹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태도 역시 필요하다.
완벽한 식단을 만들었다가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
자신에게 실망하거나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어떤 상황에 있어도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배부르면 멈추는 법,
배고프지 않으면 굳이 먹지 않는 법.
제시간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해서
간식을 찾지 않게 되는 법은
그렇게 서서히 몸에 배어간다.
그 흐름 속에서 운동을 곁들이면,
몸은 자연스럽게 균형을 찾아간다.
물론 식욕 조절 신호 체계가 크게 무너졌다면,
일시적으로 인슐린 저항을 최소화하는 식사를
며칠간 유지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다만 이 역시 '참는 다이어트'가 아니라
몸을 리셋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하지만 다이어트 시장은
사람들이 스스로 조절하기보다는 '대체'하도록 만든다.
같은 가공식품을 양만 적게 하여
'살 안 찌는 음식'이라 포장해서 판매하며,
이것만 먹으면 빠진다고 하며 빠른 감량 효과를 강조한다.
그 방향은 우리 몸의 리듬과는 점점 멀어진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운동은 본래 몸을 만들기 위해 존재하지 않았다.
근력을 기른다는 것은
신체의 균형을 회복하고,
일상에서 안전하게 몸을 쓰기 위함이다.
예기치 않게 삐끗하는 순간은
사실 이미 존재하던 불균형이 드러난 결과일지도 모른다.
쓰지 않던 근육을 써야
몸은 비로소 고르게 발달하고,
균형 있게 움직이는 법을 배운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배우면 또한 균형을 갖추게 된다.
이는 생각보다 많은 근골격계 질환을 예방한다.
근력 운동은 유행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수적인, 아주 본질적인 움직임이다.
우리는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잘 모른 채
사회가 정한 미의 기준을 따라 살아간다.
그 기준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나 역시 그 틀 안에서 살려고 애썼던 때가 있었다.
트레이너라는 직업을 가지고서도 나부터
내 모양대로 살기로 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각자의 몸과 삶에 깃든 아름다움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으로,
운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본질에 충실한 방향을 이어가려고 한다.
이 브런치북의 내용은 북클럽에서 나눈 인사이트들에서 이어진 제 사유를 정리해 보는 장입니다.
https://guhnyulwon.wixsite.com/my-site-2/greatbookclub
30화 내가 쓴 편지가 책으로 제작, 자녀손에 건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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