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에, 왜를 묻기 시작했다

점점 바보가 되어간다는 감각

by 글쓰는 트레이너

나는 여태 외부 시선에 민감하면서도,

정작 그 시선을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었다.


'교과서로 공부한다'는 말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던 사람이다.

정리되지 않은 채 흩어져 있는 말들은 잘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머리로 공부하기보다,

떠먹여 주는 강의를 보고

정리본을 통해서만 공부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요즘, 어려운 책이 읽히기 시작했다.
나열된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머릿속에 장면이 그려지고,
일상의 경험과 연결된다.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도 읽힌다.

그게 이상하게 기쁘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진실하고 공정한 방관자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생활의 혼란들 중 그 절반은 인류의 치명적 약점인 자기기만(self-deceit)에서 생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보는 그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또는 그들이 우리의 모든 것을 알 때 우리를 보게 될 그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통상의 경우 생각과 행동의 개변(reformation)은 불가피할 것이다.


나는 늘 타인의 눈치를 보며 살아왔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땐
'결국 또 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라는 말을 하네.' 싶었다.


하지만 내가 해오던 '눈치 보기'와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외부의 시선'은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히 다른 것이었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외부 시선에 민감했지만,
그 시선으로 본 나 자신을 끝내 부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보긴 보되, 인정하지 않았다.

그 시선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지 못했고,

껍데기만 남긴 채 속은 비워두었다.

속살 없는 게처럼.


애덤 스미스가 말한 용기는
남의 눈치를 보는 태도가 아니라,
자기기만이라는 가면을 벗고
그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용기였다.


자기 자신의 신체에 수술을 할 때 손이 떨리지 않는 의사를 용감하다고 한다.
자기기만이라는 신비한 가면을 벗어버리는 데 주저하지 않는 사람 역시 그만큼 용감한 사람이다.


요즘 나는 내가 뭘 아는지,
뭘 모르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점점 더 바보가 된 기분이다.

깊이 알지 못한 채,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지나온 것들이 너무 많다.


더 많이 아는 사람보다, 더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필요해. 정답을 맞히는 사람보다 끝까지 묻고 함께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세상을 앞으로 움직이게 하지. 이제는 네 차례야. '지식의 휠'에서 한 바퀴만 더 돌다 보면, 아마 어지러워서라도 내려오고 싶을걸?

그러니까, 이제 내려와도 괜찮아!
그건 반항이 아니라 진화야!


나도 지식의 휠에서 내려오고 싶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알고 있다고 믿어왔던 것들에도
'왜(Why)'를 붙여 물어본다.


이 질문은 나 자신을 속이지 않기 위한 시작이 아닐까.






01화 2026년. 엄마의 정신, 그 소리를 들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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