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늙은이 탈피

발칙해지라는 말 앞에서

by 글쓰는 트레이너

나는 어렸을 때부터 성숙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발육이 좋은 편이어서였을까.
초등학교 6학년 때 영화관에 가면
티켓을 자연스럽게 어른 표로 내주곤 했다.


그렇게 20대가 되었고,
중반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은 나를 비로소 제 나이로 보기 시작했다.
심지어 학생으로 보는 경우도 꽤 있었다.


어렸을 때 노안이면, 나이 먹어서는 동안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을 믿고 은근히 기대했는데

드디어 그날이 온 것 같다.


제 얼굴 나이를 되찾았다고 느낀다.

괜히 기분이 좋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 정신의 나이는 몇 살쯤일까.

나는 조금 올드한 사람이다.

경험은 그렇다 쳐도

어른들과의 대화를 편안해했고,

그만큼 정신연령이 높다고 여겨왔다.

동시에, 꼰대 기질도 다분하다.

그래서인 걸까.

내 글은 통통 튀지 않고 반듯하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꼭 통통 튀어야 재미있는 글일까.

나에게 ‘재미있는 글’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글을 읽으며 재미를 느낄 때는

저자만의 경험을 대리 경험할 때,

저자의 통찰이 느껴질 때,
생각지 못한 표현이 툭 튀어나올 때,
무엇보다 그 사람이 글 속에 분명히 드러날 때다.


최근 한 작가님이
내 글을 읽고 이런 피드백을 주셨다.

"글이 너무 착해요. 발칙하게 생각해 보세요."

여기에서 착하다는 의미는 너무도 반듯한 느낌이라고 했다.


이 지점에서 내 글에 대한 태도를 돌아보며

삶의 태도를 먼저 떠올리게 됐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삶의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아무리 튀어도
딱히 파격적일 수는 없지 않을까.


바른 사람의 일탈이란,

사실 거기서 거기 아닐까 생각했다.

생각만 해도 무해하다.


나는 매일 기본적인 것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기본이란
삶을 공부하고,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


솔직히 말하면, 이런 삶은 진부하긴 하다.

하러 가기까지가 늘 가장 힘들다.


하지만 하고 나면 그 끝에 남는 기은 아주 상쾌하고 유쾌하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 진부하다고 여겨지는 이 작업이 재밌고 좋다.


내 삶을 충만하게 만들어주고 있음을 느낀다.

이 기본이 받쳐줄 때 다른 일들까지 자연스럽게 잘 흘러간다면

굳이 안 할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다른 일이 들이닥쳐 또 이 기본을 잊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 기본을 하지 못하고 있는 잠시,

제대로 소모되어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나는 운동, 독서, 글쓰기를 나의 충전제라고 보기로 했다.

이 맛을 알아버려서 안 할 수가 없다.

안 하면 찝찝하다.


진부한 삶을 받아들인 만큼

사람 자체는 그리 재미있는 편이 아니다.

스몰토크는 어려워하고

딥토크를 유난히 좋아한다.


요즘 내 안의 꼰대기질을 조금 내려놓고,

상황에 따라 쓸데없는 체면, 배려를 버리기 시작했다.


통통 튄다는 것,

발칙한 생각이라는 건

안 하던 패턴을 해보며 스스로를 깨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게 아닐까.


내 삶 진지하게 살더라도

필요 없는 반듯함을 하나씩 내려놓는 것


그 삶은 나를 평온하게 만들고,

나를 조금 더 해맑고,
조금 더 순수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이 진부한 작업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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