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도 내 소유가 아니다.
관계 속에서도 나는
판단하는 주체로 남아있으려고 한다.
'오는 인연은 막지 않고
가는 인연은 막지 않는다’는 말은
이제 나에게 그런 뜻이 되었다.
나는 저자세를 잘 취한다.
이 모습은 종종
배려로, 성숙으로,
관계를 위한 양보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갈등을 피하려는 회피가
숨어 있었다는 걸 고백한다.
그렇다.
나는 갈등을 좋아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나는
갈등을 타인을 알 기회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 이상
갈등을 피하지 않기로 했던 지점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가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갈등이란
나를 알 기회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내가 낮아지면 문제는 생기지 않겠지.'
'상대가 오해했으니 내가 사과하고 말지 뭐.'
'상대가 불편하다고 하니 내가 조정하지 뭐.'
나를 알 기회를 놓친 채,
타인의 기준에 나를 맞추고 있었다.
그것은 성숙이 아니라
회피였다.
활자로 옮겨놓고 보니
나는 꽤 전형적인
고구마 인간이었다.
저자세가 반복되자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느끼는데?"
이 질문이 점점 내 안에서 사라지고 있었고
이것이 나를 지우는 방식이 되고 있었다.
나의 의도는 흐려지고,
관계는 모호해졌으며,
책임의 범위는
나도 모르게 넓어져 있었다.
관계를 존중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나에 대한 존중은
가장 먼저 놓치고 있었다.
관계는 함께 만들어지지만,
그 안에서 어떻게 서 있을지는 나의 선택이다.
관계는 내 소유가 아니며,
그 안에서 나를 판단하는 주체로 남겠다는 건
모순이 아니라
내가 나를 책임지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나의 본성대로 진실되게 행할 뿐이며,
그것의 결과는 내 것이 아님을 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