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네스코 브로콜리 이야기

by 글쓰는 트레이너



북클럽에서 한 작가님이
로마네스코 브로콜리를 보며 떠올린 사유를 나누어주셨다.
자연의 섭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브로콜리의 생김새를 보면
'부분이 곧 전체'라는 말이 직관적으로 와닿는다.
조그만 조각 하나를 떼어내도
누가 보아도 그 브로콜리다.

부분과 전체의 모양이 다르지 않다는 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북클럽의 토론 흐름은 자연스럽게 삶으로 옮겨갔다.
만약 삶의 부분에서
답지 못한 태도와 선택이 반복된다면,
전체로 보았을 때의 삶 역시
어딘가 일그러져 있지 않을까.


그 질문은 곧

나를 향했다.

나는 과연
저 브로콜리처럼 나답게 살아왔을까.


돌이켜보면
그렇지 못한 순간이 더 많았다.
어떤 때는 나를 지우며 자책을 했고,
어떤 때는 자만에 휩싸여
내 위치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내 삶의 작은 조각들을
하나씩 떼어 놓고 본다면,
전체로서는 균형이 흐트러진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북클럽에서 내가 나눈
관계의 발작과 경련 속 문장이
이 생각에 또렷한 언어를 보태주었다.

지담 작가는 세네카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말한다.


자기를 꾸미려는 그 정도의 열의가
아무리 효과를 낸다 해도,
늘 가면을 쓰고 사는 삶은
즐겁지도, 마음이 편하지도 않다고.
끝없는 겉치레로 고통받느니
차라리 순박하게 살면서 멸시받는 편이 낫다(주 1)고


그 문장을 읽으며
나는 과거에 나로 살기보다
'그럴듯해 보이는 나'를 유지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힘들었던 것이다.


지담 작가는 또 말한다.
나로 살아가기 시작하면
"아! 너였구나!" 하고
이제야 세상은 나를 알아채고,
잃어버렸던 오감을 돌려준다(주2)


이 문장은

로마네스코 브로콜리에서 느낀 감각과 맞닿아있다.


가면을 쓰고 있을 때는
아무리 애써도 삶이 나에게 반응하지 않지만,
조금 어설프더라도
나로 설 때에야
비로소 세상은 나를 알아본다.


그래서 지담 작가는
진솔함에 대해 이렇게 묻는다.


예뻐 보이겠지만 아름답지 않다면

밝아 보이겠지만 가시가 있다면

정직해 보이지만 양심이 운다면
단순해 보이지만 꾀가 많다면

화통해 보이겠지만 의도가 있다면

커 보이겠지만 너머를 보지 못하면
있어 보이지만 남의 것으로 차 있다면

똑똑해 보아겠지만 눈빛이 악하다면

부지런해 보이겠지만 그저 바쁜 것이라면

예의 바르게 보이지만 경직되어 있다면
이 어찌 진솔하다 할 수 있을까?(주2)


이 질문 앞에서
'내면과 외면의 일치'라는 말은
더 이상 추상적이지 않게 된다.
겉과 속이 어긋난 상태로는
삶의 부분과 전체가
닮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로마네스코 브로콜리를
다시 떠올린다.
어느 조각을 떼어내도
자기를 숨기지 않는 구조.


나 역시
내 삶의 일부를 떼어내도
여전히 '나'일 수 있으려면,
끝없는 겉치레보다
순박함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멸시받을 수도 있겠다.
덜 그럴듯해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 안과 밖이 어긋나지 않는 삶,
부분과 전체가 닮아 있는 삶.


북클럽에서 건네받은 사유는
이제 나의 질문이 되었고,

나의 태도가 되려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에게 맞는 옷을 찾기 위해

첫 불편함을 감수하고

하나씩 확인해 보는 실험을 한다.

그래야 내 꼴이 나타나니까.


언젠가
내 삶의 어느 조각을 떼어내도
로마네스코 브로콜리처럼
같은 모양으로 드러낼 수 있고

전체로 보더라도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나야!"










(주1) 세네카의 인생철학에 관한 내용으로, 김주원 작가의 『관계의 발작과 경련』에 인용된 문장을 재인용함. 동서문학사.

(주2) 김주원, 『관계의 발작과 경련』, 건율원.



이 브런치북의 내용은 북클럽에서 나눈 인사이트들에서 이어진 제 사유를 정리해 보는 장입니다.

https://guhnyulwon.wixsite.com/my-site-2/greatbookclub


01화 2026년. 엄마의 정신, 그 소리를 들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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