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구조를 드러낸다
관계란 참 신기하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상황은 늘 많은 것을 말해준다.
나는 한 집에서 세 번, 서로 다른 사람들과 살았다.
같은 공간이었지만, 관계의 형태는 매번 달랐다.
처음 셰어집에 들어왔을 때는 나를 포함해
세 명이 살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친하지 않았고,
각자의 생활에 집중하며 지냈다.
딱히 정해진 룰도 없었지만 불편함도 없었다.
접점이 거의 없었고,
각자 가지는 기대도 크지 않았던 것 같다.
가깝지 않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안정적인 느낌이었다.
나를 제외한 두 명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이후에 서로를 알고 지내던 두 사람이 새로 들어왔다.
처음에 관계를 만들어가려던 시도가 있었으나
나와 그들은 서로 그리 잘 맞는 관계는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나와의 불편함을 이유로 집을 떠났다.
처음부터 '배려하면 된다'는 말만 있었을 뿐,
구체적인 룰은 만들지 않았다.
마지막에 나눈 일방적인 대화에서 그들이 말한 배려와
내가 생각한 배려의 기준이 전혀 달랐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 차이를 조율하려는 대화시도는 없었고,
그들은 말없이 그냥 떠남을 택했다.
다시 새로운 두 사람이 들어왔다.
이전의 경험 때문에 이번에는 처음부터 룰을 만들기로 했다.
서로의 생활 민감도를 확인하기 위한 대화를 주로 했다.
만들어진 규칙은 아주 기본적인 것에 불과했다.
공용 공간, 쓰레기 버리기, 청소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만 정했다.
신기하게도 그 이후 우리는 꽤 잘 지냈다.
말도 놓을 만큼 편해졌고,
생활에 대해서도 서로 조금씩 융퉁성을 보이는 여유도 생겼다.
편한 대화와 요청은 오히려 불필요한 오해를 줄여주었다.
이번에는 내가 그 집을 떠났고,
그 자리에 또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
이미 친해진 두 명과, 새로 들어온 한 명.
얼마 후 다시 만난 옛 룸메이트들은
그 새로운 사람과의 불편함을 이야기하며 내가 그립다고 한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와서 보니
내가 있었을 때가 편했다고 했다.
전에 같이 살던 언니는 지금 새로운 사람과 코드가 맞지 않고
공기가 불편해서 나갈 생각도 하는 것 같아 보였다.
세 번의 경험을 거치며 한 가지를 분명히 알게 됐다.
사람들에겐 두 부류가 있다는 것.
나와 맞지 않으면 함께 살 수 없는 사람과,
맞지 않아도 규칙과 거리만 잘 지키면 살아갈 수 있는 사람.
나는 후자였다.
정서적으로 가깝지 않아도,
선을 넘지 않고 터치하지 않으면 충분히 괜찮은 사람.
집이 조금 조용하고, 관계가 다소 건조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불편하거나 힘들지는 않다.
다만, 그런 거리 있는 관계가 불편한 사람들은
더 잘 맞는 사람을 찾으러 떠나는 것 같다.
이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관계는 감정보다 구조에 더 크게 좌우된다는 것을.
같은 집이어도,
어떤 사람과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관계의 공기와 집의 분위기는 전혀 달라진다.
그리고 그 공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태도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관계의 체감도 달라진다.
맞는 사람이든,
맞지 않는 사람이든
기본적인 규칙을 만들고
대화를 시도하는 일이
함께 사는 데 가장 중요해 보였다.
그렇게 생활의 기준을 세우다 보니,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관계로서 다시 본다면,
편해도 선을 넘으면 불편해지고,
편한 관계가 아니더라도
선을 지키면 오히려 편해진다.
참 아이러니한 관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