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간의 호주 생활을 돌아본다.
이곳에 오며 여러 헬스장을 다녀보고,
이력서를 내고,
피트니스 학교에 다니며
이 나라는 어떻게 가르치고 있고
어떻게 시스템을 운영하는지를 보게 되었다.
대형 피트니스 센터와 계약을 하며
호주의 피트니스 산업 구조도 직접 경험했다.
내가 겪은 것은 일부에 불과하기에
이것만으로 이 나라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의 궁금증을 해소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전문성은 영역별로 분명하게 나뉘어 있고,
그에 따른 책임도 명확한 점이 놀라웠다.
각 전문가는 자신의 역할에 맞는 보험에 가입한다.
외형과 상관없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즐기는 사람들,
시니어들이 자연스럽게 근력운동을 하는 풍경은
책이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내 눈으로 확인했다.
마사지를 전문적으로 배우며,
철학을 담은 비즈니스가 뭔지,
마사지전문가코스를 운영하는 분의 마인드를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센터의 이름이 아닌
그냥 '나'의 이력으로도
사람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지까지 확인하게 되었다.
호주에 막 도착했을 때,
물가에 적응하지 못한 나는
나의 트레이닝 비용을
이곳의 기본가보다 낮게 책정했다.
센터에 취직한 뒤에야
이 나라의 가격 체계를 이해했고,
그 기본에서 더 이상 낮출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가격과는 별개로
관계를 이어가겠다는 선택을 해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실은 지금도 고맙게 남아 있다.
한창 작가님들과 '똥고집'이라는 주제로
토론을 나누던 시기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부리고 있는 고집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됐다.
호주에 와 있는 동안
나는 크게 나돌아 다니지 않았다.
주변 도시를 여행하지도 않았고,
워킹홀리데이의 '홀리데이'를 따로 혼자 즐길 생각을 안 했다.
가족이 방문했을 때 잠시 움직였고,
누군가 먼저 가자고 하지 않는 이상
내가 먼저 나서는 일은 거의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조금 특이해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나의 고집이었던 것 같다.
이곳에 온 목적이 분명했기에
나는 수업–집–헬스장,
이 단순한 동선만을 반복했다.
내가 호주에 온 이유는 단순했다.
이 피트니스 산업의 시스템과 문화를
몸으로 부딪혀 보고 싶었고 그것이 다였다.
준비되지 않은 언어 실력으로 부딪히는 과정은
생각보다 많이 아프긴 했다.
트레이닝의 디테일을 영어로 설명하기엔 결코 쉽지 않았다.
이를 이겨내 영어 실력을 키워나가는 선택도 있었겠지만,
한국인 회원님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 필요성은 점점 줄어들었다.
대신 먼 나라에 와서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읽고, 나누고, 쓰기 시작했다.
벽돌 같은 책들은
한국에서 이곳으로 해외배송을 시켰다.
밖에서는 새로운 환경과 부딪히고,
안에서는 나라는 사람을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좋은 기회로 라이프 코치과정을 통해
진정한 소통이 뭔지를 배우게 되었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외부 세계와 내면세계를
동시에 여행하는 시간이었다.
그 과정에서 입체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내가 원하는 트레이닝의 방향,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앞으로 어떤 삶으로 나아가고 싶은지.
굳이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나는 일과 삶을 포함한 생존, 그리 사유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곳에 온 이유는
그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미 남편이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일 년은 철저하게 이기적인 시간이었다.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
동시에 한국에 돌아가
아이를 낳기 위한 준비이기도 했다.
내가 온전한 정신으로 서 있어야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울 수 있지 않을까.
내 기준이 분명해야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게
한 사람을 책임질 수 있지 않을까.
이 모든 과정이 처음부터 아이를 위해 시작된 것은 아니다.
그저 아이를 낳기 전에 하고 싶은 건 다 해보자는 마음으로
떠난 시간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철저하게 나를 위해 살아보니
아이를 맞이할 준비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이 일 년은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었고,
나와 조금 친해지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면
이 나를 잃을까 봐 조금 두렵지만
기대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