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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Nov 01. 2018

노가다로 산다는 것 - 내 옆자리의 노가다꾼

막노동 30년 일하기

“그러니까 그 오과장 XX놈이 글쎄 하라면 해야지 뭔 말이 많냐고 XX을 하더라니까, 어린놈의 XX가 확 죽여벌라.”

“아니 그걸 가만뒀어? 대가리를 확 후려쳐버리지.”

“그러게 말이여.”


왁자지껄 시끄럽게들 떠들며 식당으로 들어오는 4명의 무리들에게 주변의 시선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 때가 가득 낀 거친 손, 하루종일 흘린 땀에 쩔은 담배냄새, 그리고 무언가 흙냄새 같은 공사현장의 차디찬 공기와 함께, 옷가지 여기저기에 묻어있는 시멘트와 페인트가 그들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잘 설명해 준다.

늘상 시끄러운 기계소리 근처에서 말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듯, 큰 목소리 또한 그러하다.

옆 테이블의 사람들은 묵묵히 식사를 하고는 서둘러 일어나거나, 불편한 듯 눈치를 주지만 그들에게 아예 주변 사람에 대한 신경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듯 하다.


박씨는 건설현장에서 건물 외벽에 시멘트를 바르고 색을 입히는, 총원 4명의 외벽 시공팀을 이끄는 작업 반장이다.

젊어서 시작한 고임금의 아르바이트가, 박씨 나이 60세가 훨씬 넘도록 평생직업이 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그러다 결혼과 함께 아이가 생기고, 항상 조금 덜 고된, 다른 직업을 꿈꿔온 박씨는 노가다를 벗어나기가 점점 늦어지는 것이 절망스러웠지만, 사랑스러운 아내와 예쁘게 커가는 아이들을 보며, 새벽밥을 입에 우겨 넣었다.

그리고 찰나의 시간처럼, 그렇게 30여년이 흘러버렸다.

노가다에 처음 발을 들여놓을 때, 박씨는 알고 있었을까?! 앞으로 봄날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최근 2주간 쉬는 날이 없었지만 다음달부터는 예정된 공사가 없고, 설상가상 박씨의 큰아들도 다니던 중소기업에서 쫒겨나고 하는 일 없이 집에서 빈둥대며 게임에 매달리며, 부모의 속을 썩인다.

이런 걱정을 한가득 안고 있는 박씨는, 답답한 세상에 하고 싶은 욕지기를 건설회사의 하청업체 담당 오과장에게 퍼부으며 분노를 표출한다.

그리고는 반주를 한잔 마시며, 나지막히 혼잣말을 한다.


“하이고, XX 이제 어쩌나...”




대한민국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다고 그들 스스로 노가다꾼이라며 자학적인 자부심을 가진다.

밑바닥 인생임에도 집을 장만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맨 몸뚱아리 하나로 가정과 식구를 꾸렸다’고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이들은 우리가 싫어하고 불편해하는 건설현장의 노가다꾼이다.


남자가 거의 대부분인 건설현장에는, 누군가의 남편이 있고, 아버지가 있으며, 최근에는 할아버지들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편한 일을 주로 찾는 요즘의 젊은이들에게 건설현장의 일은 고려해 볼 만한 가치도 없는 일 중의 하나이다.

그래도 전에는, 육체가 힘들더라도 고임금을 이유로 청년들의 단기 아르바이트나 목돈마련을 위한 단기 취업이 꽤나 있었고, 나름의 꿈을 가지는 청년이 간혹 보였건만, 요즘의 세상은 차라리 저임금의 몸이 편한 아르바이트가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져, 이 건설현장 노가다꾼의 평균 나이는 당췌 줄어들 생각을 안한다. 오히려 빠른 속도로 늘어나서, 40대 중반에서 60대의 고령이 주를 이룬다.


그 중, 누군가의 어떤이는 평생을 노가다 일을 하며 자식을 교육시키고, 집을 사기도 하며, 가족의 병원비를 대기도 하는 한편, 매일 마시는 막걸리와 소주에 일당을 모두 쏟아내며 왕년의 경험담과, 소위 잘 나가던 시절의 자신을 열변으로 토해내는 이도 있다.

입밖으로 답답함을 한동안 토해내면, 땅이 꺼질 듯한 한숨과 함께 소주 한잔을 입 안에 털어 넣는다.


세상은 노가다꾼을 멀리하고, 무언가 더러운 일을 하는 사람 취급하는데 여념이 없는데, 이는 더러운 옷을 입은 사람은 돈을 적게 번다는 의식이 팽배한 무서운 사회다.

겉으로 보는 것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직업이 사람다움을 결정하는, 내면을 들여다 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간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학교에서 배웠던가, 어째 요즘 시대에는 그 말이 쑥 들어가버린지 오래인 것만 같다.

‘사실은 귀천이 있다’라고, 랩을 해야 돈을 벌고 연예인이 되어야 이렇게 비싼 집에 잘 산다고 앞 다투어 자극적으로 말하기도 심지어 이미 오래 전, 이제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우스갯소리를 뱉어내는 TV는 직업에 분명한 귀천이 있음을 말하는 듯 하다.




식당의 옆자리에 건설현장의 더러운 옷을 입은 사내들이 우르르 앉는다. 불편할 수 있다. 아니 불편하다. 시끄럽고 냄새나고, 더럽고 거칠다. 맞다. 불편한게 사실이다.


‘아니, 누군들 아니겠는가. 누군 냄새나고 싶고, 시끄러운 사람 취급 받고 싶겠는가. 이렇게 저렇게 살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거 아닌가.’


박씨는 생각해보니 점점 더 열이 받는다. 안그래도 답답한 마음에 팀원들이 무슨말을 하는지 싸우는지 치고 받는지 신경도 쓰지않고 소주를 연신 털어넣고 있는데, 건너편 자리의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가 자꾸 불편한 듯 쳐다본다.

박씨는 세상을 쏘아보듯, 아이의 엄마를 쳐다보며 술김에 한마디를 뱉어낸다.


“아니, 아줌마 뭐 할말 있어요?”

“가방 놓을 자리가 없는데 의자 하나 써도 될까요?”

자세히 보니 아이엄마는 아이와 가방이 올려진 무릎에 힘이 빠졌는지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하다.


순간 박씨는 미안한 마음에 활짝 웃으며 한쪽 다리를 걸치고 있던 의자를 손수 테이블 앞으로 가져다 주며, 아이를 향해 장난스럽게 웃어보이며 얼굴을 만져보려다, 때가 낀 손을 확인하고 급히 손을 내리면서 한마디를 한다.


“고놈 귀엽네”

“여자 아이예요.”

“아이쿠 죄송합니다...고ㄴ.. 아니 이쁘게 생겼구나 너”


때마침 박씨의 전화기에서 시끄러운 트로트 가락이 흘러나온다.

“무조건 무조건이야~ 짜짜라 짜라짜라 짠짠짠”

식당을 울리는 벨소리에 전화기를 들어보니 욕지거리를 쏟아부었던 건설회사 하청업체 담당 오과장이다.

오늘 죄송했다는 사과와 함께, 회사가 큰 단지 시공을 맡게 되었다며, 다음달부터 앞으로 2년간 지어질 대단지에 외벽 시공을 맡아 달라는 전화다.

전화를 끊고는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한대 입에 문다.


“씨X, 그래도 뒤지란 법은 없는가 보구먼, 임병.”


그리고는 속으로 평생 해왔던 습관처럼 걱정이 밀려든다.

‘그나저나 2년 지나면 그 다음에는 어쩐다. 에라 나도 모르겄다. 아들놈 뭐든 되겠지.’


이제 식당으로 들어가는 박씨에게는 담배냄새도 섞여 한층 역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박씨가 지나가자 인상을 쓰며 손을 휘휘 젓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친 박씨는, 살짝 웃으며 꾸벅 인사를 한다.

박씨는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이 얼마나 불편해하고 싫어하는지 말이다. 그렇지만 슬프게도 알고 있는 사실이 또 하나 있다. 앞으로 평생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주변사람에게 항상 미안하다. 이제는 왜 미안해 해야 하는지도 자세히 잘 모른다. 마냥 피해를 주는 것 같아 그냥 미안하다.




직업의 귀천은 분명히 있다.

다만 알면서 말하지 않는 것이고, 알지만 그럴 리 없다고 믿는 것이다.


건설현장의 노가다꾼은 시끄럽고 더럽고 냄새난다. 그래서 불편하고 싫다.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을 것 같은 그들이, 누구보다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이다.

그리고 박씨처럼, 잘 모르다가도 누군가 불편한 티를 내면 움츠러든다. 그리고 또 뭔가 모르게 미안해진다.

그런대도 여지껏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듯, 또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할 박씨는 아무렇지 않다.


‘내 가족이 먼저 살고, 그리고 내가 살고, 내 팀원들이 사는데 그깟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가 대수랴... 사람들이 불편해하는데, 그깟거 얼마든지 할 수 있지.’ 라고 생각하며, 그나마 나아진 기분에 다시 한번 술잔을 기울인다.


“자, 이 씨X 드럽지만 다음달부터 잘들 해보드라고!”


같이 드는 술잔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저녁식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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