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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Sep 22. 2019

1인 제작 시스템으로 만든 75분짜리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인디애니페스트 2019 개막작  ‘Away(2019)'

이 글은 시사회 초대받은 후 작성되었으며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약 75분 동안 대사 없는 애니메이션을 끝까지 집중하고 볼 수 있을까? 라트비아 출신의 감독의 영화에 공감할 수 있을까? 장편 애니메이션을 1인 제작 시스템으로 만들 수 있을까? 국내외 명작이라고 불리는 영화를 모두 섭렵하진 못했으나 그동안 다양한 국가에서 만들어지고 새로운 시도가 담긴 영화를 꽤 보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인디애니페스트 2019의 개막작인 ‘Away’는 신선한 경험이 되었다.


일단 제작 과정이 경이롭다. 무려 4년 동안 시나리오와 캐릭터 디자인, 모델링, 사운드까지 1인 제작 시스템으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영화의 모든 부분을 떠나서 긴츠 질바로디스 감독님의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도 의의를 제기할 수 없다.


‘Away’는 대사 없이 이미지와 배경음악, 효과음으로만 진행되며, 내용 자체도 판타지 요소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영화의 소재나 상황이 현실적이거나 직관적이기보다 상징적이다. 온전한 의미는 감독님만 아시겠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자신의 취향과 상황에 맞게 다양한 해석은 영화의 또 다른 재미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한 소년이 잎 하나 없이 황량한 나무 끝에 낙하산을 메고 걸려있고 어디선가 검은 형체의 괴물이 나타나 소년을 헤치려 한다. 소년은 괴물에게 쫓기며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이동하는 장소에 따라 크게 4개의 소제목을 가진 작은 이야기로 구성되지만, 시간 순으로 이어져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된다.


인디애니페스트 2019 개막작 소개의 고전적 영웅 서사를 변주했다는 설명처럼 소년과 그를 괴롭히고 위협하는 악당 역할의 괴물의 대립구도가 눈에 띈다. 또한 초반에 괴물에게서 도망치고 겁내며 안전한 지역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소년이 후반부로 갈수록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국가와 시대를 초월한 익숙한 설정에도 인간이기에 지닌 한계와 영화 자체가 가진 특징들 덕분에 영화를 끝까지 보고 싶은 당위성을 부여한다. 


‘Away’는 소년과 다양한 소재와의 만남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주인 모를 가방, 오토바이, 열쇠를 우연히 얻게 되며 길을 떠날 준비를 한다. 사슴, 거북이, 새 등 다양한 동물도 만난다. 동물들은 주인공과 비슷한 처지로 괴물에게 위협당하거나 여정을 떠나는 존재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초반부터 주인공과 함께한 날지 못하던 노란 새는 위기 상황에서 주인공과 서로를 돕는 조력자이자 친구로 등장한다. 


달라지는 장소의 특징도 주인공의 변화하는 상황이나 감정과 맞물린다. 주인공의 변화는 돌로 이루어진 산에서 처음으로 두드러진다. 괴물이 오는 타이밍에 맞춰 산 사이에 놓인 나무다리로 커다란 바위를 밀어내 괴물을 절벽 아래로 떨어뜨린다. 도망치는 존재에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한 순간이다.


그리고 두 번째 소제목(Mirrored lake)이기도 한 거울처럼 형태가 반사되는 호수가 등장한다. 주인공의 실제 모습과 호수에 비치는 모습은 주인공이 자신을 마주한 순간 같다. 다음 도착지인 샘물은 마실 물이 떨어지고 쉼 없이 달리느라 지친 주인공에게 휴식과 충전의 시간을 갖게 한다. 앞서 주인공은 꿈에서 낙하산과 관련된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린다면, 샘물에서 물을 얻고 동물들 사이에서 쉬며 자신과 함께 한 새가 하늘을 나는 꿈을 꾸고 다시 길을 떠난다.


장소의 특징은 특유의 그림체의 질감이나 느낌과 적절하게 어울린다. 또한 드론으로 촬영한 듯한 풀 샷이나 주인공과 함께 이동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장소의 느낌을 극대화하고 효과적으로 묘사한다. 긴박한 상황에서 나오는 클로즈업도 적재적소에 사용되어 영화를 입체적으로 만든다. 다채로운 화면의 구성은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든다.


‘Away’를 보는 내내 소재나 장소의 상징성에 집중했지만, 주인공에 이입해 괴물의 의미를 가장 많이 고민했다. 보는 사람마다 괴물을 보는 관점이 다를 것 같다. 누군가는 순수하게 괴물이라는 역할 자체에 집중했을 수도 있다. 인디애니페스트 2019측에서는 개막작을 유년기에서 청소년기로 넘어가는 영화제의 여정과 닮았다고 소개했었다. 그들에게 ‘Away’의 괴물은 또 다른 의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초반에 주인공이 도망치고 안전한 지역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괴물은 두려움이었고, 꿈에서 고통스럽게 떠올린 사람들의 잔상과 다시 나타난 괴물은 외로움 혹은 죄책감이라고 생각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결말의 의미가 죄책감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라고 생각했다. 영화 속 소년에게서 얼핏 흔들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스쳤다. 


영화의 끝에 궁금해졌다. 우리가 피하고 싶은, 없애고 싶은 괴물은 무엇일까 그리고 현재는 여정의 어디쯤 일지도.




앞서 말했든 ‘Away’는 인디애니페스트 2019의 개막작입니다. 인디애니페스트는 독립애니메이션 전문 영화제로 올해 15회를 맞이했으며 9월 19일부터 9월 22일까지 열립니다.(2019 공식 트레일러) 2019년 슬로건은 ‘보고 있다.’, ‘시선’등의 의미를 담은 ‘볾’이라고 합니다. 개막식에서 상영될 영화를 프리뷰로 짧게나마 볼 수 있었는데, 애니메이션에 담을 수 있는 상상력과 표현의 다양성이 끝이 없음을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독립애니메이션의 ‘볾’이 앞으로 계속되길 바랍니다.



인디애니페스트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http://www.ianifes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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