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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Nov 12. 2019

어떻게 화요일까지 사랑하겠어 육휘주를 사랑하는 거지

[예능] tvN ‘유퀴즈 온 더 블럭(2018~)’

예능 리뷰를 쓸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육휘주’를 만나기 전까지는. 정확한 명칭은 ‘유 퀴즈 온 더 블럭’으로 유재석과 조세호가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퀴즈를 푸는 tvN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퀴즈를 맞추면 100만원을 주며 맞추지 못해도 자기백이라는 가방에서 상품을 뽑는다. 유재석과 조세호라는 전문 예능인의 출연과 퀴즈 프로그램이라는 큰 구성은 자칫 평범하다. 하지만 근래 본 어떤 영화보다 영화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1회부터 유쾌한 웃음을 주던 프로그램은 어느새 40회를 넘겼고 계속 성장 중이다. 이 글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쓰는 육휘주 입덕안내서다.


일단 유재석과 조세호의 합이 기가 막힌다. 유재석이 잔소리를 하고 조세호는 구박을 들으며 억울한 반응을 보인다. 처음엔 단순히 에피소드로 지나갈 대화나 행동이 쌓여 두 사람의 캐릭터가 명확히 만들어졌다. 큰 자기로 불리는 유재석과 아기자기로 불리는 조세호, 시청자들을 지칭하는 ‘자기님’이라는 호칭에 사용되는 ‘자기’도 유재석이 조세호를 부를 때 쓰인 표현이다. 다그치는 내용은 주로 방송의 재미나 토크에 대해 분발하라는 식인데 선을 넘거나 크게 불편하지 않다. 아마 유재석이 가진 호감형 이미지도 있지만, 무한도전 시절부터 화려하게 뽐내던 언어유희나 말장난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웃긴 장면으로 연출한다.


그들의 케미는 점심식사에서도 드러난다.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애청자라면 코너 속의 코너처럼 식사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그들 자신도 설명할 정도로 ‘맛있다’, ‘정말 맛있다’만 반복하는 단조로운 맛표현을 한다. 하지만 정말 열심히 먹는다. 평소엔 그다지 끌리지 않을 메뉴도 그들이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다음날 점심메뉴를 정할 수 있다. 복스럽게 입 안 가득 음식을 넣는 유재석이나 입이 작아 슬픈 조세호의 먹는 모습만 봐도 재밌다. 보기와 다르게 잘 먹지 못하는 조세호의 모습도 반전으로 웃음을 준다. 유재석은 만두를 두 개 먹어 인성논란이 생기기도 했다. 쌈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맛있게 쌈을 싸 먹는 그의 모순적인 태도가 시청자들에게 색다르게 다가와 재미요소가 된다.


인성논란의 시작, 국수와 만두 먹방

https://tv.kakao.com/channel/3136280/cliplink/400208193


연출에서도 아기자기한 순간을 찾을 수 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그려지는 일러스트나 장소를 이동할 때 MC들이 작은 요정처럼 사물사이를 움직이는 영상 효과는 깨알 같은 웃음을 준다. 엄마랑 같이 보는 경우가 많은데 기존 예능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효과가 아니기 때문인지 화면이 전환될 때마다 신기하다며 웃으신다. 또한 매 회 하나의 포괄적인 주제를 가지고 방송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다큐멘터리와 비슷하다. 퀴즈를 푸는 핵심 인터뷰 대상 외에도 정해진 공통질문에 대한 짧은 인터뷰들이 들어가고 엔딩 영상에는 방문한 장소의 풍경과 주제를 분명하게 마무리하는 글귀가 들어간다. 때론 독특하고 때론 영상미 넘치는 연출이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또다른 매력이다. 정성을 담은 장면을 볼 때마다 제작진의 깊은 노고가 느껴진다.


그래도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매력적인 가장 큰 이유는 다양한 사람들의 출연이라고 생각한다. 나이, 직업, 국적, 성별을 막론하고 누구든 인터뷰를 하고 퀴즈를 맞출 기회가 주어진다. 사람들의 사연엔 끝이 없고 한 사람의 인생이 한 권의 책과 같다는 말이 와 닿는다. 누군가는 고난과 아픔을 털어놓고 다른 누군가는 가족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미안함에 눈물을 흘린다. 예쁜 사랑을 하는 모습에 잇몸이 메마를 정도로 웃기도 한다. 가끔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변의 누군가가 떠올라 공감이 되고 마음이 괜스레 찡해진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방송은 한글날에 맞춰 방송한 38회였다.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들을 찾아가 웃음을 주더니 문해학교인 서울 양원주부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며 대성통곡하게 만들었다. 자신을 모질게 괴롭히던 과거의 악연에게 내뱉은 한마디에 허를 찔린 기분이 들었고 진정한 용서가 무엇인지 고민했다. 어떤 문제도 막을 수 없는 공부에 대한 뜨거운 열정에 응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하루하루를 써내려 가는 책이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란 책장에 채워진다. 방송이나마 그들을 만나며 스스로의 세계가 얼마나 작고 그동안 얕고 좁은 시선으로 세상을 판단했는지 깨닫게 된다.


38화 박모순 여사님의 입학소감

https://tv.kakao.com/channel/3136280/cliplink/402753574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중심엔 유재석이 있다. 프로그램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프로그램 특성 상 그가 가진 대중적인 인지도는 큰 장점이 된다. 오히려 먼저 말을 거는 사람들도 많다. 꾸준한 노력과 오랜 예능 경험은 누구와 대화를 해도 손색이 없다.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적절한 질문을 한다. 금융업계 종사자와 만났을 때는 금융용어를 막힘없이 꺼내어 직업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tvN의 나영석PD에게도 부드러우면서 날카롭게 시청자들이 궁금할 질문을 대신한다.


실검에 난리났던 나영석PD님 인터뷰

https://tv.kakao.com/channel/3136280/cliplink/403154097


유느님이라는 호칭 답게 노련한 인터뷰 기술에 따뜻한 심장까지 전부 가졌다. 말을 편하게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며,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가 눈에 띈다. 말 한마디에 크게 웃거나 박수를 치고 반응한다. 진심으로 각자의 사연에 먹먹한 표정을 짓고 대신 화를 내면서 기어코 울지 않고 끝내 화를 참으며 진행자로서 역할에 충실한다. 진실의 광대라고 불릴 만큼 흐뭇하게 웃으며 사랑이야기를 듣는 진행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시청자들도 그와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커플 이야기를 듣는 큰자기님의 진실의 광대

https://tv.kakao.com/channel/3136280/cliplink/402344690


그동안 화요일은 큰 의미가 없었다. 아직 일주일의 절반도 오지 않은 시점이자 월요일만큼 싫지도 금요일만큼 신나지도 않은 어정쩡하고 애매한 날이었다. 지금은 화요일 밤 11시,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보기 위해 TV 앞에 앉아있다. 스펀지송 노래에 맞춰 “화요일 좋아~ 유퀴즈 좋아~”를 외치는 두 자기님을 보며 내심 화요일이 기다려졌다. 매회 무슨 이야기를 전할지 누굴 만날지 기대되는 선물 같았다. 위로와 응원을 받았고 함께 웃고 울었다.


2019년 12월 3일을 마지막으로 유 퀴즈 온 더 블록은 겨울잠에 들어간다. 추워지는 날씨에 종일 야외촬영이 어렵기 때문이다. 떠난다는 소식에 다가올 화요일이 벌써부터 춥고 허전하다. 어떻게 화요일까지 사랑하겠는가.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사랑하는 거지.


♪자기님들의 화요일 좋아 SONG♬

https://tv.kakao.com/channel/3136280/cliplink/396883870



+ 글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기사가 있어서 같이 소개해요. 유 퀴즈 온 더 블록 30화는 광복절 특집이었는데, 당시 방송된 해남 옥매광산이 알려져 표지판이 생겼다고 합니다. 30회에 의미 있는 내용도 많으니까 보시는 거 추천해요!

https://tv.kakao.com/channel/3136280/cliplink/401180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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