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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Dec 16. 2019

이번 겨울엔 더 이상 아픈 사람이 없으면 좋겠어요

[영화 리뷰] 영화 '프란치스코 교황 : 맨 오브 히스 워드(2018)’

이 글은 시사회 초대받은 후 작성되었으며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유난히 혹독한 겨울이었다. 행복하고 감사한 일상이었으나 주변에 아픈 사람이 너무 많았다. 작게는 감기부터 시작해서 입원에 입원할 정도로 앓기도 했다. 날씨가 추워지면 마음에도 면역력이 떨어지는지, 상실감에 빠져 힘들어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들의 좌절을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들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도, 당장 해결해줄 수 없으니 무력감에 시달리거나 괴로웠다. 스스로에게 생긴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법은 얼추 알아도 주변 사람들의 아픔에 대처하는 게 몹시 서툴렀다. 


더구나 인터넷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별들의 소식이 연이어 들려왔다. 실제로 만나본 적도 없는 이들의 아픔에 조금은 우울했고, 별의 사연을 보고 나쁜 생각을 할 생판 모르는 사람들을 걱정했다. 쓸데없는 오지랖임을 알면서도 걱정과 근심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가톨릭 신자가 아님에도 영화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를 본 이유는 교황님께서 내면의 문제에 해답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작은 희망 때문이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가난하거나 아픈 자들을 두루 만나고 세계 각지를 살피는 교황님이라면 방법을 알고 계실까?


영화 ‘프란치스코 교황 : 맨 오브 히스 워드’는 빈곤, 환경, 삶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해 현재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각을 들어보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문답이나 연설, 인터뷰로 구성되었고 감독의 내레이션이나 성 프란치스코를 설명하는 재연 드라마가 일부 등장한다. 말 외엔 무기가 없다는 영화의 내레이션처럼 영화는 교황님과 그분이 하신 말이 중심이 된다.


영화보다 한 권의 책을 읽는 느낌이 든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이어지고 단락별로 다양한 세부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때로는 따끔하게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지적하면서 한편으로는 화합과 공존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영화의 내용을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는 ‘가난’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자들의 아버지’라는 평을 들어온 점이나 평소 검소하게 생활하는 모습과 잘 어울린다. 초반에 직접적으로 경제적인 가난이 언급되고 젊은이들의 일자리 문제로 넘어간다. 이후 가장 가난한 자 중 가난한 자를 지구라고 표현하며 환경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식이다. 가난을 단순히 경제적 빈곤뿐 아니라 결핍의 의미로 해석한다면 뒤에 등장하는 문제 대부분이 가난이라는 단어와 맞아떨어진다.


다만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으로서 내용을 따라가기에 벅찬 부분도 있었다. 이해하기 어려워서 설명이 더 필요하거나 반복되는 내용이라 생략해도 괜찮겠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다르게 말하자면, 가톨릭 신자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영화이다. 교황님의 말을 훨씬 깊이 있게 이해하고 마음의 울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미리 만나보고 싶다면▼

https://kakaotv.daum.net/v/403239324


또한 영화는 독일을 대표하는 거장 빔 벤더스가 감독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작을 하나도 보지 못한 입장으로 비교해서 할 말은 없지만, 영화 후 진행된 GV에서 감독의 욕심을 버리고 교황님의 말에 완전히 따라갔다는 평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재연 드라마의 분량도 적절했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GV에서 나온 설명과 별개로 거장이라는 칭호답게 영화를 전개하는 흥미로운 포인트를 찾을 수 있었다.


먼저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라는 표현을 영화가 시작하는데 마무리도 시간에 대한 내레이션이다. 첫 부분에 시간에 대한 언급이 감독의 문제제기라면 뒷부분의 시간은 영화의 러닝타임 동안 전한 메시지에 대한 결론이다. 시간이라는 같은 소재이지만 앞과 뒤의 느낌이 사뭇 다르다.


다음으로 영화 전체적으로 흐름이 아주 느리다. 컷 당 시간도 매우 길다. 예를 들어 환경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에서 교황청을 배경으로 펼쳐진 미디어 파사드를 한참 동안 보여준다. 정적인 화면에 영화가 풍기는 엄숙한 분위기가 합쳐져 자칫 늘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심지어 요즘은 클립 단위로 영상을 소비하고 점프컷 수준으로 빠르게 편집하는 유튜브 영상에 익숙한 탓에 긴 템포의 영상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소주제가 전환되는 순간마다 작은 변칙을 주어 덜 지루하게 표현했다. 강한 BGM이나 배경음악을 선택하거나 교황님의 인터뷰로만 진행되던 영화에서 수녀님의 인터뷰가 등장하는 방식이었다. 아예 노래 부르는 장면을 중간에 삽입하기도 하고 성 프란치스코에 대한 재연 드라마를 흑백 무성 영화로 연출해 변화를 준다.


인터뷰 구도도 인상적이었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데 직접 교황님과 대화하는 느낌이 든다. 비판적인 말을 하실 때 풍기는 아우라에 잘못이 없어도 혼나는 듯 움츠려 들고 부드러운 미소와 어울리는 말엔 고개를 끄덕하게 된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인터뷰 장면의 강렬함이 굉장히 커서 앞의 모든 장면을 잊을 정도이다. 신자가 아닌 일반인이 보기에 러닝타임 96분 동안 마지막 장면만 연속해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되려 마음의 평화를 찾을 듯하다.



영화에 대한 평가와 상관없이 교황님께서는 한국에 사는 평범한 사람의 작은 고민에 답을 주셨을까? 사실 좋은 말씀을 아주 많이 해주신 덕에 모두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교황님은 상처 받은 이들에게 공감하고 가장 적절한 말을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그에 비해 인류애는 물론이고 주변의 슬픔을 담기에도 너무 작은 그릇을 갖고 있지만, 교황님의 말씀대로 행동해보려 한다.


말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줄 것.

혼자가 아님을 알려줄 것.

삶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것.

타인을 돕는 방법은 미소와 유머감각 두 가지이니

다른 사람을 향해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웃게 해 줄 것.


사랑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편안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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