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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Dec 25. 2019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부성애는 영화의 시작일 뿐

[영화 리뷰] 영화 '차일드 인 타임(2017)'

이 글은 시사회 초대받은 후 작성되었으며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모르는 영화를 볼 때면, 어쩔 수 없이 배우나 감독을 먼저 보게 된다. 아예 백지상태보다 얼핏 아는 이름이라도 보여야 관람할 마음이 늘어나는 게 사실이다. 심지어 좋아하는 배우거나 유명인일 경우 선택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얻기에 충분하다. 국내에서 엄청난 인기를 가진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출연한다. 이름이 생소해도 얼굴을 보는 순간 바로 알 수 있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그 마법사. 셜록의 그 배우. 심지어 제작에도 참여했다니 흥미진진하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출연하는 ‘차일드 인 타임’은 유명 동화 작가 ‘스티브’가 딸 ‘케이트’를 잃어버린 후 달라져버린 삶에 대한 영화이다. 줄거리에서도 알 수 있듯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부성애가 영화의 핵심 부분을 차지한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딸을 잃은 아버지의 처절한 슬픔일 거라 예측했고, 영화 초반엔 딸을 잃은 후 3년이 지난 상황이라서 덤덤한 겉모습 뒤에 숨겨진 부성애를 다룰 거라 생각했다. 러닝타임이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도 여전히 영화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차일드 인 타임’은 단순한 부성애 영화가 아닐 수도 있다. 생각할 거리도 많고 꽤나 복잡하다.


영화를 미리 만날 시간▼


영화의 첫 장면은 정적과 함께 슬로 모션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자동차 소리와 함께 멈춘 시간이 움직이듯 화면도 원래 속도로 움직인다. 이후에도 화면이 교차되거나 음소거로 진행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아이와 손을 잡는 상상을 하는 장면에서 과거의 기억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욕조에서 숨을 참는 장면에서 현실로 돌아오기도 한다. 과거와 현재, 심지어 미래라고 할 수 있는 부분까지 영화 속 시간은 뒤죽박죽이다.


영화 속 시계가 멋대로 움직인다면 주인공 ‘스티브’는 고장 난 시계 같다. 그의 시계는 딸을 잃어버린 그때에 멈춰서 과거를 그리워하고 때론 아이와 닮은 형체를 맹목적으로 따라간다.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한 번은 시간이 맞는 것처럼 그는 그저 살아간다. 교육 관련 위원회에 참여하고 아내의 권유로 피아노도 배운다. 울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괜찮은 척을 한다.


그의 모습이 감정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대다수의 어른과 닮았다. ‘스티브’를 포함한 영화 속 인물들은 처음부터 속 시원히 감정을 털어놓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이 슬픈 눈을 하고 입꼬리만 올려 미소 짓는 표정이 유독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스티브’가 비슷한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착각한 사실을 깨닫고 오열하는 장면은 더 극적이고 처절하게 느껴진다.


‘스티브’의 친구 ‘찰리’라는 인물의 비중이 후반부로 갈수록 커지는데, 그의 시계는 점점 아이였던 과거로 돌아간다. 정치인이었으나 급하게 은퇴하고 숲에서 생활한다. 입안 가득 음식을 쑤셔 넣고 하루 종일 숲을 뛰어다닌다. 크게 웃고 숲을 뛰노는 게 하고 싶은 일이라는 그의 말이 오히려 불안을 숨기려는 아이 같다. 아이를 잃은 시간에서 멈춰버린 ‘스티브’와 내면의 아이를 찾는 ‘찰리’는 후회 가득한 어제의 기억으로 내일을 보지 못하는 우리와 다를 바 없다.


영화 속 장면을 따라 그렸습니다

어떤 슬픔은 너무 커서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도움이 되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이 해결해주지 못한다. 놓아야 하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끝내 붙잡고,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하고 자책한다. 그럼에도 괜찮은 척, 덤덤한 척 가면을 쓴다. 다른 사람이 쓴 가면을 알면서 모르는 척하느라 또 다른 가면을 쓴다. 아주 가까운 사람이 숨긴 가슴속 아픔을 모르고 살아간다. 어쩌면 ‘차일드 인 타임’은 부성애로 이야기를 시작해서 어른이란 모든 존재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우리의 시간은 멈춰 있을까? 어디서 흐르고 있을까? ‘스티브’ 아버지의 말처럼 눈치 보지 말고 보고 싶은 사람을 보며 현재를 살아야 후회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다시 실수와 좌절을 반복하며 과거를 후회할 게 뻔하다. 과거를 살아도 버티기만 한다면 충분하다. 하루에 한 번만 시간이 맞는 고장 난 시계로 살아도 괜찮다. 언젠가 고장 난 시계를 서랍 속에 넣어두었을 때 비로소 새로운 시계가 선물로 올 테니까.


♡제이드와 함께 메리 크리스마스♡


+) 이번 시사회는 특별하게 씨네마포라는 영화 전문 카페에서 진행되었는데요. 소규모로 영화를 보고 평론가님과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이라서 더 특별했습니다. 멋진 장소에서 영화를 사랑하시는 분들과 대화할 수 있어서 연말에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어요. 부족한 점도 느끼며 내년에는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부지런히 움직여서 좋은 이야기를 여러분께 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영화 '차일드 인 타임'은 2020년 1월 9일에 한국에서 개봉한다고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영화관에서 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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