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은 똑똑한 첫째와 애교 많은 막내 사이에서 서러운 둘째 같다. 1월은 새해가 시작되었기에 일 년 동안 이루고 싶은 목표를 정하고 의지를 불태운다. 3월은 학생들에겐 개학과 개강을 하는 달이고, 따뜻한 봄의 기운이 찾아와 푸룻 푸룻 하게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 든다. 2월은 다르다. 새해의 열정도 점차 식어가고 세웠던 목표를 하나씩 포기하기에 딱 알맞은 시기다. 실제로 날짜도 적어서 자칫 흐지부지 보내다가 얼렁뚱땅 넘어가게 된다.
하지만 2월의 어느 날이 누군가에겐 오랫동안 기다려온 절실한 기회일지도 모른다. 영화 ‘스탠바이, 웬디’에서 주인공 ‘스타트렉’ 덕후인 웬디가 준비한 ‘스타트렉’ 시나리오 공모전의 마감일이 2월 16일이다. 완벽하게 제출하고 싶은 마음에 마지막까지 확인하던 중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우편을 보낼 수 없게 된다. 결국 시나리오를 직접 제출하기 위해 웬디는 LA 파라마운트 회사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떠난 웬디의 2월이 특별한 이유는 원래 그녀의 일상이 ‘안 돼.’와 ‘해야 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잠에서 깨어나면 이불 정리를 하고 요일마다 정해진 색깔의 옷을 입고 아르바이트를 위해 항상 같은 길을 선택한다. 그녀가 좋아하는 ‘스타트렉’을 보고 글을 쓰는 시간은 제한적인 반면에 하기 싫어도 인물의 표정을 따라 하고 퀴즈를 공부해야 한다. 영화 제목처럼 ‘스탠바이’하는 일상이다.
‘스탠바이, 웬디’는 그녀가 쓰는 시나리오에서 시작한다. 시나리오 속 주인공 ‘스팍’과 ‘커크’는 우주 비행선의 사고로 어느 행성에서 구조를 요청한다. 심지어 함장인 ‘커크’는 부상을 당해 이동이 어려운 상태이다. 위기 상황에서 글을 쓰고 있는 웬디의 모습으로 화면은 넘어온다. 웬디의 얼굴은 무표정이지만 그녀의 상황은 ‘스팍’처럼 한정적이고 간절하다. 언니와 예전에 살던 집에서 지내고 귀여운 조카 ‘루비’를 만나고 싶지만 허락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거리이자 과소평가당하는 말들을 듣는 그녀가 긴 ‘스탠바이’ 끝에 세상으로 나선다. LA로 출발하는 장면에서 ‘STOP’이라고 적힌 언덕을 거슬러 올라가는 장면이나 ‘어떤 상황에서도 마켓가는 건너지 않는다.’라는 규칙을 깨는 당당한 걸음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영화 속 장면을 보고 그렸습니다.
여행을 떠난 웬디는 어딘가 부족하고 사람에게 상처 받고 맘대로 되는 않는 문제들로 좌절한다. 그럼에도 우직하게 시나리오 제출이라는 목표를 향해 계속 나아간다. 모르는 건 질문해서 알아가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서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낸다. 안전하지만 모든 게 정해진 세상에서 벗어나 더 위태롭지만 넓은 세상을 보고 성장한다. 그 과정이 뻔하고 유치해도 꿈을 꾸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서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찾아낸 방법들이 사랑스러워서 흐뭇한 아빠미소를 장착하느라 잇몸이 메마를 지경이다.
무기력하기 쉬운 2월이다. 1분 1초가 소중한 이번 달에 93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의 ‘스탠바이, 웬디’를 보는 건 어떨까? 무기력의 원인이 무엇이든 웬디의 여행을 따라가면 기분이 한결 나아질 거라 믿는다. ‘스타트렉’ 덕후 웬디는 시나리오를 통해 스스로와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