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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Dec 14. 2018

'여자 혼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도 괜찮을까요?

[에세이]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길(2) : 23살 여자 혼자 순례길

키 156cm, 23살의 여자, 혼자 카미노 포르투게스를 걸었다. 

지금 당신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일까?


여자가 혼자 여행을 다녀오고 쓴 여행기는 1996년에 한비야 씨의 책으로 이미 시작된 것 같다. 2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 리스본, 포르투 등 큰 관광지에서 여자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여자 혼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도 괜찮냐는 질문의 답은 너무 쉽고 뻔하다. 하도 많이 들어서 진부하기까지 하다. 혼자 걷고 싶다면 혼자 갈 수밖에. 허나 진부하다는 표현까지 사용한 질문에 대해 답하는 이유는 출발하기 전 같은 질문과 걱정을 했기 때문이다.


혼자서 여행한 여자에게 일어난 사건사고는 미디어를 통해 빈번하게 보도된다. 누군가는 총을 맞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사라져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는 슬픈 이야기들. 인터넷에는 여행에서 겪은 아찔했던 경험담이 넘친다. 이런 환경에서 혼자서 여행을 떠나겠다는 결정은 쉽지 않다. 당연히 두렵고 무섭다. 그러니 ‘혼자 가고 싶으면 가라’식의 1차원적이고 무책임한 대답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불안한 마음을 누르고 확신을 얻기 위해 계속 질문한다. ‘정말 여자 혼자 가도 괜찮을까?’

치열한 고민 끝에 결심을 하고 혼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도 마음 한 구석의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스스로 던진 질문은 원 없이 돌아온다.

‘너 여기 혼자 왔어? 무섭지 않아?’

과장을 더해 순례길에서 ‘너 이름이 뭐야?’ 만큼 자주 들었다. 국적에 상관없이 비슷한 걱정을 한다. ‘정말 여자 혼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도 안전할까?’


경험상 산티아고 순례길은 비교적 안전했다. 본래 순례길은 종교적인 이유로 시작되었다. 따라서 대부분이 가톨릭을 믿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람들은 순례자들을 환영하고 존중하는 분위기였다. 길을 잃었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순례자들도 성별을 떠나서 서로를 ‘사람’ 자체로 대했다. 포르투갈길을 걷는 동안 성적인 농담이나 시선을 경험한 적도, 타인에게 위협을 받은 적도 없었다.


그래도 무서웠던 기억들은 있다. 일단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시작하는 순례길 자체에 사람이 별로 없다. 어떤 날은 단 한 명의 순례자도 만나지 못한 채 걷는다. 다시 말해 공포의 순간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다. 별거 아닌 일처럼 보이지만, 의지할 대상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작은 상상력이 큰 공포로 변한다. 

순례길이라고 아름다운 풍경만 보는 건 아니다

순례길을 걸은 지 18일째 되는 날, 갑자기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쉽게 그칠 비가 아니었다. 숙소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다가 길을 잃었다. 주변에는 순례자로 보이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구글 지도에 검색하니 큰 고속도로를 따라 계속 직진해야 했다. 앞뒤를 살피며 비 내리는 고속도로를 홀로 걸었다. 옆에서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차들에 온 신경이 곤두섰다. 운전자가 보지 못해서 사고가 나면 어떡하지? 길은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얼마나 더 고속도로를 걸어야 할까? 30분 정도 걸으니 숙소 바로 직전 마을로 향하는 이정표를 발견했고 잃어버렸던 순례길도 다시 찾았다.

가끔 고속도로 옆을 걷는다

숙소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을 길을 걸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였다. 검은 승용차 한 대가 속도를 줄이더니 멈췄다. 말끔하게 생긴 운전자 아저씨가 포르투갈어로 말을 걸었다.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포르투갈어를 못한다고 대답했다. 이번엔 영어를 할 수 있는지 물었다. 이어서 비가 많이 내리니 자신의 차로 데려다주겠다며 손짓했다. 고맙지만 괜찮다며 수차례 거절한 끝에 아저씨를 보낼 수 있었다. 그 뒤로도 혹시나 검은 차가 따라오지 않는지 뒤를 돌아보며 멈추지 않고 걸었다. 어느 때보다 심장이 더 크게 쿵쿵거리며 뛰었다. 아저씨는 좋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비를 맞으며 혼자 걷는 작은 동양인 여자아이가 걱정스러워 물어봤을 것이다. 분명한 건 그의 친절에 감사한 마음보다 먼저 의심을 했고 겁을 먹었다.


처음 비올 때 즐거웠는데...

산길을 걸을 때는 큰 몸집의 들개를 만났고, 바닷가를 따라 걸을 때는 팬티 차림에 핑크색 프린세스 가방을 멘 아저씨가 시간을 물어봤다. 언제나 무서운 상황이 닥치면, 해코지당하지 않길 바라며 분주히 발걸음을 옮기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해가 뜨지 않는 새벽이나 늦은 밤에는 혼자 밖에 나가지 않았다. 덕분에 항상 남들보다 늦게 출발해야 했다. 약간의 긴장과 조심. 포르투갈길을 혼자 걸은 간 큰 내가 정한 예방법이다.

아침에 걸으면서 보는 예쁜 하늘

그러니 ‘산티아고 순례길을 혼자 걸어도 괜찮다.’고 자신할 수 없다. 안전하게 돌아온 여행기가 다른 사람에게 용기가 된다면 진심으로 기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이 위험하지 않은 장소라고 단정하기에 지나치게 개인적인 경험이다. 카미노 포르투게스(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길)를 포함해 지구 상에 존재하는 어떤 여행지도 완벽하게 안전하지 않다. 다음에 다른 장소로 여행을 떠난다면, 다시 질문할 것이다. ‘여자 혼자 xx에 여행을 가도 괜찮을까요?’

순례길에서 본 폐허

홀로 여행을 떠날지 말지는 스스로 정할 문제이다. 판단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취향, 뜻대로 되지 않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등의 사적인 기준으로 해야 한다. 안전의 이유로 가기 전부터 망설여야 하는 현실에는 문제가 있다. 그러니까 혼자 떠나도 되냐는 질문은 본인이나 서로에게 해야 할 질문이 아니다.


진부해질 정도로 가늠할 수 없는 시간 동안 질문하도록 만든 세상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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