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de in x Dec 21. 2018

카미노 포르투게스의 아시아인이 신기한가요?

[에세이]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길 (3) : 다름에 대해서

처음부터 알았어야 했다. 프랑스길은 오래된 길이고 우리나라에서 TV나 책을 통해 많이 소개되어서 한국 사람들이 많이 걷는다. 반면 포르투갈길을 걸으려 결심했던 순간에 안일하게 ‘아무리 덜 유명해도 한국에서 순례길이 유명하니까 많이 걷겠지.’라며 넘기지 말았어야 했다.


암스테르담에서 리스본으로 향하는 작은 비행기에서 알았어야 했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좌석을 찾으러 들어가며 전혀 다른 생김새의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들의 입장에서 전혀 다른 생김새인 나에게 은근하게 보내는 시선들을 흘려 넘기지 말았어야 했다.

처음 걷기 시작한 날 알았다. 순례길이 잘 정돈된 해양공원의 산책로를 지났고 주말을 맞아 산책이나 조깅을 하러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적어도 100명이 넘는 사람이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동안 순례자도, 아시아인도 전혀 보지 못했다. 그 후로 11일 동안 단 한 명의 한국인도 만나지 못했다.

대신 유럽,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등 다양한 대륙과 국가에서 온 순례자들을 만났다. 그들에게 먼 한국 땅에서 온 순례자는 신기한 존재였다. 대놓고 드러내는 차별이나 혐오가 아닌 ‘동양’에 대한 편견과 무지에서 비롯된 말은 대처하기에 더 까다로웠다. 악의는 없으나 듣는 입장에서 어딘가 찝찝했다.


코임브라의 숙소 주방에서 저녁을 먹다가 덴마크 아저씨를 만나 인사를 나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러 차례 걸으며 많은 한국인을 만났다는 그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Asian looks innocent(아시아인들은 순수하게 생긴 것 같아)”


장난스럽게 말한 ‘innocent’라는 단어가 맘에 들지 않았다. 머릿속에 대학 전공 시간에 배운 ‘오리엔탈리즘’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서양 사람들이 부정확한 정보와 편견을 바탕으로 동양에 대해 떠올리는 환상들. 대표적으로 할리우드 영화는 흔히 아시아인을 브릿지머리를 하거나 신비로운 인물로 표현한다. 이와 비슷하게 아시아 여성은 낭만적인 성적 대상물로 인식되곤 했다. 이들은 본래 순종적이고 욕망이 없는 '순수'한 상태로, 백인 남성을 만남으로써 비로소 새로운 세상(성적인 부분을 포함하여)에 눈을 뜬다고 묘사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덴마크 아저씨가 무심코 말한 ‘순수’는 긍정적인 의미가 될 수 없다. 일단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Thaaaaaaaaank you(고오-맙습니다)”

멀리서 본 코임브라의 풍경

“Where are you from?”  처음 만난 순례자에게 묻는 당연한 질문도 당연하지 않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Are you Chinese?”, “Japanese?”라는 질문을 들어야 했다. 처음에는 한국을 먼저 물어보지 않아서 속상했다. 매일 들으니 이상했다. 순례자들 사이에서 생김새를 보고 나라를 질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왜 아시아인의 생김새를 한 나에게만 하나의 나라를 추측할까? 며칠 동안 혼자 고민하다가 정말 궁금해서 외국인 친구에게 물었다. 자신이 생각하기엔 흔히 보기 힘든 아시아인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데 정보가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중국인은 세계 어디에나 많으니까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외에도 한국 사람인데 어떻게 영어를 할 수 있는지, 가까운 나라인 중국어나 일본어를 당연히 말할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우리나라의 국교가 힌두교인지 물은 적도 있었다. 아시아에서 오지 않은 순례자에겐 절대 하지 않는 질문들이었다. 들을 때마다 씁쓸해도 사람까지 미워할 수는 없었다. 아시아인에 대해 정말 몰라서 진심으로 궁금했고, 한국에서 온 나와 더 친해지고 싶은 마음으로 한 질문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최선을 다해 대답하려 노력했다. 다음에 만나는 한국인 혹은 아시아인에게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도록.

다양한 순례자들이 남긴 물건들

순례자의 수가 적은 포르투갈길 초반에는 특히 눈에 띄었다. 어디를 가도 현지 주민들이 힐끗힐끗 보고 지나갔다. 5일 차 숙소는 Mosanto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 있었다. 험난한 산길을 넘어야 나오는 마을이라서 큰 도시와 가깝게 왕래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무언가 마실 생각으로 카페에 들어갔는데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동그랗게 뜬 눈을 하고 있었다. 카페 안으로 내딛는 걸음을 따라 그들의 눈동자가 따라왔다. 마치 한국사람을 실제로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인생에서 그 정도로 많은 시선을 받아 본 적이 없으니 당황스럽고 부담을 느꼈다.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것 같았다. 간혹 경계하는 듯 굳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괜히 위축되었다.

Monsanto의 모습
Monsanto에서 본 타일
Monsanto 공중전화

‘왜 나만 다르지?’ 시선과 질문을 받을 때마다 속으로 질문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느낀 종류의 ‘다름’이었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고, 잘못이 아니라고 수없이 되뇌었다. 한국에서 태어난 건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다. 전 세계 어디에 사는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순례길에서 이방인이라는 사실은 인정해야 했다. 먼 곳에서 왔고 생김새도 문화도 익숙하지 않았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다른 문화에 대해 점점 알아갈 수 있었다. 현지 주민들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다름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신기하게 바라보던 시선과 약간의 어색한 시간이 흐른 뒤, 무슨 일이 있었을까? 마당에서 자신의 집 앞을 지나가는 순례자를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던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순례자라는 이유만으로, 먼 곳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친절을 베푸는 주민들이 많았다. 길이 헷갈려 두리번거릴 때 트럭 운전사 아저씨는 지켜보다가 순례길의 방향을 알려줬다. 9일 차 alvalazere의 숙소에서는 혼자만 유일하게 와펜을 선물로 받았다. 아주머니들에게 예쁘다는 칭찬도 많이 들었다. 아침마다 포르투갈 사람들의 환하게 웃는 얼굴은 잊지 못할 기억이 되었다.


선물받은 와펜

문화와 생김새가 다른 사람과 친해지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서로를 바라보며 짓는 미소면 충분하다. 미소는 미소로 돌아온다. 그 순간을 시작으로 인사를 나누고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아주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웃으며 친구가 되는 날을 꿈 꿔본다.



포르투갈길을 걷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면 아래의 글을 읽어주세요▼

Mosanto에 가게 된 이유▼


매거진의 이전글 '여자 혼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도 괜찮을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