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de in x Dec 31. 2018

우리의 삶에도 순례길처럼 화살표가 있다면, 행복할까요?

[에세이]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길(4) : 인생이 순례길이라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길을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은 화살표를 따라가는 것이다. 리스본 대성당에서 시작된 화살표는 산티아고까지 이어진다. 갈림길에서는 옳은 방향을 알려주고 지도를 굳이 켜지 않아도 도착지까지 갈 수 있다. 화살표의 모양도 나라와 마을별로 제각기 개성이 넘친다. 순례길에서 가장 많이 찍은 사진이 화살표 일만큼 다양하고 특색 있는 화살표를 보는 재미도 있다. 리스본에서 시작하는 포르투갈길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색의 화살표를 볼 수 있다. 노란색 화살표는 다른 순례길과 마찬가지로 산티아고를 향하고, 파란색은 성모 마리아가 발현했다고 전해지는 포르투갈의 파티마로 이어진다. 순례길에서 화살표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를 넘어서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파란색이 파티마, 노란색이 산티아고

30일 동안 지겹도록 화살표를 따라 걸으니 질문이 하나 생겼다. 순례길처럼 화살표가 있다면, 과연 삶은 더 행복해질까?

화살표가 생기면, 어떤 점이 좋을까? 먼저 길을 찾는 노력 없이 목적지까지 쉽게 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린 사람들이 저마다의 재능이 있다고 믿지만, 정작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아는 경우는 기적에 가깝다. 일부는 재능이라 여기던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아 좌절에 빠지기도 한다. 시간과 눈물을 낭비하지 않고 화살표를 따라가 적성을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마치 질문 옆에 답이 적힌 문제를 푸는 느낌이다. 선택으로부터 오는 압박과 걱정, 고민을 덜어낼 수 있고 심적인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때론 가지 말아야 할 길도 알려준다. 순례길에서는 헷갈릴 가능성이 높은 방향에 된 X 표시를 보기도 한다.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게 미연에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화살표만큼 X 표시는 삶에 꼭 필요한 지표이다.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미리 알 수 있다면, 크고 작은 실수를 줄일 수 있고 그로 인한 물질적, 정신적 손실을 예방할 수 있다. 인생의 중대한 결정 후에 ‘그때 다른 길로 갔으면 더 행복했을 텐데…’라는 후회의 눈물따위 흘릴 필요도 물론 없다.

우리 삶에도 암묵적인 화살표는 존재한다. 대학에 입학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늦기 전에 연애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끝없는 화살표의 연속이다. 하나라도 하지 않으면 인생에 하자가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화살표가 있어서 좋은 점을 고민할 틈도 없이 이미 화살표를 따라 다 같이 걷고 있다.


하지만 화살표라는 맹목적인 믿음 뒤에 무엇이 있을까? 정말 해피엔딩일까? 순례길의 화살표는 길의 방향은 알려줬지만, 예측 불가능한 상황의 위험까지 막아주지는 못했다. 비가 내린 후 길에 큰 웅덩이가 생겨 길을 돌아가야 하거나 앞으로 걸음을 내딛기도 힘든 강한 바람이 불기도 했다. 가끔은 화살표 때문에 더 혼란스럽기도 했다. 방향이 앞인지 옆인지 알 수 없는 화살표 때문에 길을 헤매 마을 주변을 두 바퀴나 돌은 적도 있다. 화살표가 혼란을 야기한다면, 옳은 화살표가 맞을까? 마지막으로 화살표가 가리키지 않은 방향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면,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평생 잊지 못할 은인을 만나고 삶의 빛나는 순간을 경험한다고 해도 말이다.

23일 차, 여전히 마음속에서 삶의 화살표에 대한 찬반투표가 열렸다. 그 날의 길은 해안가를 따라 이어진 큰 도로였다. 앞으로 계속 이어진 도로와 작은 마을길로 빠지는 두 갈레 길에서 신기한 화살표가 있었다. 어떤 화살표는 마을길을 가리켰고 다른 화살표는 큰 도로를 향해 있었다. 화살표 옆에 X 표시가 되어있기도 해서 어디가 올바른 길인지 알 수 없게 표시들이 섞여 있었다. 잠시 멈춰 대체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했다. 마침 옆 주택에 주인이 나와있어서 손가락으로 어느 방향인지 물었다. 주인은 익숙한지 미소 짓더니 대답했다.


“everything is same. (어디를 가도 똑같아)”


이왕이면 바다를 가까이 보고 싶어 작은 마을길로 들어갔다. 화살표를 따라 걷는데 지금껏 왔던 길의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길을 잘못 온 게 아닐까 의심스러웠지만, 주인의 말을 믿고 계속 걸었다. 5분 정도 반대 방향으로 걸으니 급경사가 나오고 바로 바다 옆을 걸을 수 있었다. 그때 본 바다가 카미노 포르투게스에서 본 가장 예쁜 바다였다. 만족스러운 선택이었지만, 대신 다른 순례자들 보다 한참을 돌아갔다. 목표가 행복이라면, 어느 방향으로 가든지 똑같지 않을까?

산티아고를 도착한 날에도 두 가지 화살표를 만났다

순례길 초반에는 화살표에 민감했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 화살표를 찾고 열심히 따라갔다. 걷기가 익숙해지고 점점 풍경을 보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일이 즐거웠다. 화살표를 잘 확인해야 하는데 딴생각, 딴짓을 하니 순례길 후반에는 거의 매일 길을 잃었다. 생각 없이 걷다가 갑자기 길이 너무 어두워지고 이상한 낌새를 느껴 돌아간 적도 셀 수 없이 많다. 매일 되돌아 걸어도 결국 산티아고까지 도착했으니 상관없지 않을까?


마음은 항상 변덕스럽다.

가끔은 인생에 화살표가 생기길 바라지만, 매 순간 화살표를 따라가고 싶지 않다. 적당히 화살표를 따라가며 화살표에만 집착하지 않는 것, 찬반 투표의 결론은 양측을 모두 선택한 무효표다.





매거진의 이전글 카미노 포르투게스의 아시아인이 신기한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