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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Jan 04. 2019

영어 못해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도 되나요?

[에세이]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길 (5) : 실수해도 괜찮아

영어가 몹시 싫었다. 10년 넘게 영어를 공부하며 즐거웠던 순간이 얼마나 될까? 교과서를 달달 외워서 높은 점수를 받았을 때 정도? 그 조차도 영어가 아니라 부모님과 선생님께 받을 칭찬에 들뜬 것뿐이었다. 커갈수록 영어에 발목을 잡혔다.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을 탓하며 모든 과목 중 영어를 가장 싫어했다. 그나마 듣고 싶은 과목을 신청할 수 있는 대학교에 입학한 후 영어 기피증은 더 심해졌다. 대학교 4학년을 앞두고도 그 흔한 토익 시험 한 번 보지 않았다. 어차피 엉망진창일 게 뻔히 보였다. 영어가 필수라는 시대에 영어를 못해서 쪽팔렸고, 영어를 잘하는 외국인은 무서웠고, 영어가 끔찍이도 싫었다.



순례길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있지만, 다양한 국적의 순례자가 모였기에 주로 영어로 대화한다. 영어를 싫어했기에 소극적인 태도로 순례자들과 대화했다. 조금만 못 알아들으면 입버릇처럼 “I can’t speak English well.”이라고 말했고, 반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Sorry?”라고 계속 되묻는 것도 실례인 것 같아 답답했다. 영어를 듣고 말하는 일에만 집중하니 무슨 대화를 나누고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영어로 편하게 대화하는 순례자들 사이에서 가끔은 겉도는 기분이 들었다. 솔직하게 일정 시간 이상 영어를 들으면 정신이 멍해지고 내용이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눈웃음을 지으며 아는 척 웃었다. “하하하.”


듣기 어렵고 말문이 막히니 그때서야 깨달았다. 들어주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감사하게도 순례자들은 내 말을 무시하지 않고 끝까지 귀 기울였다.


“너 영어 못 하지 않아. 잘해! 네가 내 말을 다 이해하고 우리 대화하고 있잖아.”

“원래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일은 어려운 거야. 대단한데?”


아무도 영어를 못한다고 비웃거나 바보같이 생각하지 않았다. 틀린 문장을 채점하고 점수를 매기지도 않았다. 공감 어린 칭찬을 해주고 혹시나 단어나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 머뭇거려도 기다려줬다. 들어주는 사람은 이렇게나 다정한데 뭐가 문제가 될까?



그동안 영어를 엄청 대단하고 거창한 존재로 여긴 것 같다. 영어를 못하면 대학교에 못 가고, 영어를 못하면 졸업도 못 한다. 무얼 하더라도 영어는 꼭 할 줄 알아야 한다길래, 아주 잘해야 한다길래, 영어 못하는 게 인생에서 커다란 흠 같아서 수치스러웠다. 그래서 영어가 싫었다. 


순례길에서 영어는 의사소통 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숙소에는 정말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모인다. 성별도, 나이도, 국적도 모두 다른 순례자들이 낮에는 길 위에서 인사를 나누고 밤에는 숙소에 모여 서로의 사연을 이야기한다. '밥 맛있게 먹어.' , ' 잘 자', '좋은 아침이야.' 같은 흔한 인사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순례길이 너무 고되지 않은지 걱정하고 앞으로 열심히 걷자고 격려하며 소중한 친구를 만난다. 영어실력은 중요치 않다.

 


좋은 청자들을 만난 덕분에 영어에 대한 거품을 날릴 수 있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틀려도 고치면 된다고 다독일 수 있었다. 자책하고 부끄러워하는 일은 이제 그만두기로 했다. 나름대로 영어로 사람들과 대화하는 노하우도 생겼다. 사람들이 처음 만났을 때 어떤 질문을 했는지 기억했고 새로 만난 사람과의 대화에 사용했다. 비슷한 방법으로 헤어지는 상황, 관심사를 묻는 상황, 식사를 하는 상황 등 다양한 순간에 사용할 수 있는 문장과 표현들을 익혔다. 사소한 노력으로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질문도 먼저 하고 더 많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지금은 영어를 싫어하지 않는다. 산티아고에서 마지막 날 만난 독일인 할머니 수잔이 외국에서 공부 중인 학생이냐고 물을 정도로 영어로 대화를 시작하는 일에 익숙해졌다. 프랑스길 중 팜 플루냐 지방에서 시작한 그녀는 많은 한국인을 봤지만, 대부분은 영어 말하기를 지나치게 수줍어하거나 대화를 피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너는 다른 것 같아. 어떻게 열린 태도를 갖게 된 거야?”


영어로 원하는 음식을 주문하는 일조차 부담스러웠던 과거를 떠올리면 믿기지 않는 질문이다.


영어를 더 잘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을 말하는 순간 10명 중 5명은 북한을 언급했다. 북한의 지도자에 대해 묻는 질문은   더 구체적으로 북한의 생활상을 포함해 한국전쟁이 언제, 어떻게, 왜 일어났는지 묻는 순례자도 있었다. 그러고 나서 순례자들끼리 북한에 대해 열띤 토론을 시작하는데 단어도 어렵고 말도 빨라서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직접적으로 연관된 당사자를 빼놓고 이루어진 대화가 내심 속상하고 서러웠다. 만약 그들이 내 생각을 물어도, 한국어로도 길고 신중하게 말해야 하는 문제들을 영어로 대답할 리 만무했다. 외에도 자신의 나라와 비교해 한국 청년들의 주거 현실이나 한국의 뷰티 산업 등 우리나라 사회 전반에 대한 질문을 받아 난감했다. 서툴더라도 우리나라에 대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여전히 형편없는 영어 실력에 한숨이 나오지만, 

쉼 호흡 한 번하고 눈 꼭 감고 주먹 꽉 쥐고 생각한다. 


‘뭐 어때, 실수해도 괜찮아.’



순례길에서 만난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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