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길 (12) : 한국어를 말하는 행복
혼자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신기하다. 아무리 깨끗하게 씻어도 꼬질꼬질해 보이는 자신의 얼굴에 까르르 웃을 수 있다. 의외의 부분에서 겁쟁이가 되고 쓸데없는 용감함을 발견하기도 한다. 혼자 걸으니 순간마다 느낀 감정을 커다랗게 부풀린다. 실컷 물어도 시끄럽다 말하는 사람 없는 자신과의 대화가 꼬리의 꼬리를 문다. 좋아하는 음식만 먹고 좋아하는 부분만 보며 머릿속 ‘좋아하는 것’ 목록이 늘어난다. 어떤 선택이든 할 수 있지만, 모든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새로 만난 순례자와 부담 없이 함께 걸을 수 있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길에서 겪는 경험에 따라 산티아고 순례길은 전혀 새로운 곳으로 변한다. 주관적으로 카미노 포르투게스(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길)는 다른 3개의 길을 합친 것 같았다. 먼저, 사람이 적고 포르투갈의 중앙을 따라 걸은 리스본(Lisbon)에서 포르투(Porto)까지 이어지는 길. 다음은 포르투에서 비고(Vigo)로 연결된 해안가 길, 마지막으로 도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가는 길이다. 변화를 겪을 때마다 조금 낯설어 적응이 필요했다.
순례길 14일 차, 포르투(Porto)를 지나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순례자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는 점이다. 걷기 전 아름다운 포르투를 관광할 수 있고 산티아고까지 대략 2주면 도착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선호하는 코스이다. 휴가나 방학을 맞이해 연인, 가족, 친구들과 함께 걷기 시작한다. 혼자 온 순례자는 점점 찾기 어려워진다. 포르투에서 출발하고 4명의 핀란드 친구 그룹을 만났고 부부동반 모임으로 걷는 순례자들도 꽤 많았다. 그들은 혼자 걷는 날 신기해하고 난 순례길을 출발부터 함께한 그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 신기한 점은 독일 사람들이 특히 카미노 포르투게스를 많이 걷는다. 포르투부터 어느 숙소를 가도 절반 이상은 독일인이었다. 영어로 말하면 단어라도 얼추 알 수 있는데, 독일어로 나누는 그들 만의 대화는 속수무책으로 멀뚱히 눈을 깜박일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군중 속의 고독이었다. 순례자들은 많아졌는데 먼저 말을 걸고 친해져도 한계가 있었다. 순례길을 함께 걷는 그들의 견고한 사이에 괜스레 끼어든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못 알아들어도 정말 괜찮아! 남들은 다 일행이 있고 나만 혼자라도 정말 정말 안 외로워!’라며 자존심을 한껏 세우고 싶지만,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나도 누군가와 한국어로 마음 편히 말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 모든 게 포르투에서 비바도콘데(viva do conde)까지 걷던 하루 사이에 체감할 수 있었다. 부러움을 뒤로하고 비바도콘데를 산책한 후 슈퍼에서 간단한 저녁거리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주방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는데 친절한 호스피탈레로(숙소의 자원봉사자)가 방금 도착한 순례자에게 숙소 규칙을 설명 중이었다. 얼굴을 돌린 순례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자동으로 눈이 2배로 커졌다. 아직 말 한마디 안 했지만, 딱 봐도 한국사람이었다.
포르투에서 갓 시작한 그는 동갑내기 친구였다. 한국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었으며 잠시 직장을 옮기는 중 생긴 여유에 여행을 왔다. 그가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숙소에서 한국인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남편분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5번이나 걸었고 한국에서 도보길을 제작하는 전문가였다. 숨길 수 없는 반가움에 늦은 밤까지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눴다. 혼자서는 뭘 하든 다큐멘터리 같았는데 넷이 모이니 장르가 시트콤이 되어 버렸다.
마음이 잘 맞아 다음날 함께 걷기 시작했다. 아침에 내린 비로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고 걷는 동안 멈춰서 서로의 사진을 계속 찍어주었다. 미리 검색했던 숙소에 가기 직전 큰 마트에서 장도 보니 시간은 저녁 6시 무렵이었다. 숙소는 이미 순례자들이 가득 차 남은 침대가 하나도 없었다. 갑작스레 많아진 순례자들에 비해 숙소가 부족한 몇몇 지역에서 종종 생기는 일이다. 다음 숙소는 9Km 거리에 떨어져 있어서 약 두세 시간을 더 걸어야 했다.
길에서 자야 하는 비상상태였다. 자리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던 호스피탈레로는 절박한 목소리에 주소 하나를 알려주었다. 이미 먼저 온 다른 순례자들도 갔기 때문에 남은 자리가 없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간절하게 일반 가정집처럼 생긴 집의 벨을 눌렀다.
주인이 나와 몇 명인지 묻고 잠시 고민하더니 따라오라고 말했다. 그녀를 따라 3층으로 올라가니 꽤 넓은 공간에 일반 가정집처럼 거실, 방 2개, 화장실, 부엌으로 꾸며져 있었다. 가격은 총 40유로. 한 사람에 10유로로 우리만의 공간을 갖게 되었다. 아늑한 잠자리가 생긴 안도감에 심각한 분위기는 온데 간데없이 사라지고 다 같이 웃으며 그 순간을 회상했다. 들뜬 기분으로 저녁식사 겸 파티도 했다. 알리오 올리오와 제육볶음 비슷하게 만든 음식에 포르투갈 와인을 마셨다.
그 날을 시작으로 함께 장을 보고 숙소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가장 기억 남는 음식은 카레다. 비를 맞아 으슬으슬 춥던 날에 먹은 따끈한 카레가 온몸을 사르르 녹였다. 식사에 술도 빠지지 않았다. 그동안 순례길에서 술은 거의 먹지 않고 음료수를 마셨는데, 그들을 만나고 매일 술을 마셨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유명한 포르투 와인도 못 먹고 한국으로 돌아갈 뻔했다.
함께 먹는 밥 한 끼는 생각보다 큰 영향을 주었다. 단순히 끼니를 때우는 의미를 넘어 자신의 꽁꽁 숨겨둔 이야기를 꺼낼 기회였다. 서로의 상처에 공감하고 위로하며 신뢰가 쌓였다. 역시 맛있는 음식 앞에 장사 없다.
무리가 되어 순례길을 걷는 일은 신기하다. 한국이라면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달라서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과 우리가 되어 가족처럼 다정하게 밥을 먹는다. 종종 자기 전에 그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떤 모습일지 생각했다. 분명히 혼자서도 밥 잘 챙겨 먹고 산티아고 순례길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씩씩하게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때때로 군중 속의 고독에 뒤덮여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뎠을지도 모른다. 수십 가지 상황을 가정해도 그들과의 만남보다 최고의 결말은 없었다.
물론 걷는 속도가 달라 같이 걷다가 앞서 걸은 적이 많았지만, 일주일 동안 숙소에서 다시 만나 하루를 마무리하고 아침을 함께 시작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까지 100Km 남짓 남았을 때 하루에 걷길 원하는 거리가 달라 헤어졌다. 언젠가 만나길 바라는 기약 없는 마지막 인사 대신 4일 뒤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더 이상 혼자 걸어도 외롭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 뒤로 넘어져도 몸을 감싸주는 것처럼 푹신한 매트리스가 있는 것처럼 든든했다. 4명으로 함께 걸으며 순례길의 즐거운 순간을 공유하고 각자의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순례길을 배울 수 있었다.
고작 4일 이어도 이별은 이별이라 점점 멀어져 아주 작게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산티아고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