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길 (11) : 대도시의 순례자
순례길이라는 이름 때문일까? 아님 TV에 나오는 다큐멘터리나 책의 표지 사진이 대부분 끝없는 평원이기 때문일까? 산티아고 순례길과 휘황찬란하고 번쩍번쩍한 대도시 사이에는 알 수 없는 이질감이 든다. 마치 대도시는 앨리스가 회중시계를 든 토끼를 따라 들어간 굴 속 이상한 나라 같다.
카미노 포르투게스(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길)의 시작은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Lisbon)이다. 호시우 광장에도, 상 조르제 성에도, 순례길의 첫 시작점인 리스본 대성당에서도, 리스본 어딜 가든 관광객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쉼 없이 몰려드는 전차와 버스가 리스본이 한 나라의 중심임을 상기시켜준다. 그렇기 때문에 리스본의 이름 모를 골목들과 큰 규모의 해양박물관을 지나 한참 더 걸어도 흔히 떠올리는 순례길의 모습을 볼 수 없다. 화살표가 없다면 순례길이 아니라고 느낄 정도이다. 리스본을 지난 이후로도 오랜 역사를 가진 포르투갈의 여러 대도시를 지난다.
리스본 대성당에서 구매한 가이드북은 대체적으로 숙소를 구하기 쉬운 도시 위주로 날마다 걸을 거리가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순례길에서 보낸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이드북 대신 스스로 정한 일정으로 걷는 게 더 익숙했다. 하루 동안 걸을 거리를 먼저 정하고 근처에서 숙소를 찾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다른 순례자들보다 도시를 많이 지나치고 작은 시골 마을에서 시간을 보냈다. 순례자들의 성향과 일정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대도시에서 멈추지 않거나 며칠 동안 머물러도 괜찮다.
그럼에도 많은 순례자들은 대도시에 멈춰 잠시 관광을 하거나 맛있는 음식점을 찾는다. 순례길에서 필요하지만 도시에서만 살 수 있는 물건을 사며 앞으로 걸을 길을 준비한다. 간혹 편한 숙소에서 고단한 몸에게 휴식을 주기도 한다.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은 분명 하나 몇 차례 머물렀던 대도시에서 느낀 기분은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이 복잡했다.
첫 도시는 순례길을 시작한 지 9일 만에 도착한 코임브라(Coimbra)였다. 사실 코임브라에 도착하기 전까지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보통의 날이었다. 코임브라 숙소는 중심지로 가기 위해 몬데구 강 위의 다리를 건너야 하는 약간 먼 위치의 수도원이었다. 도착해서 먼저 씻고 침대에 누워서 졸고 있었다. 몸은 피곤해도 이왕 유명한 도시에 왔으니 조금이라도 주변을 둘러보러 숙소를 나섰다.
밖으로 나서자 눈부신 햇살에 저절로 눈이 찡그려졌다. 중심지로 가기 위해 다리에 가까워지자 몬데구 강도 햇빛에 비쳐 반짝반짝 빛났다. 강 건너에는 코임브라의 오래된 건물들이 새파랗게 어린 순례자를 맞이했다. 분위기에 감탄하고 있을 때, 포르투갈의 교육의 도시라고 불리는 명성에 걸맞게 배낭을 멘 학생들이 분주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갑자기 순례자로 낯선 땅을 걸어 코임브라까지 왔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와 닿았다. 25시간의 비행, 3일의 리스본, 9일의 카미노 포르투게스 끝에 코임브라에 서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강가에 앉아 벅차오르는 감정을 만끽했다. 아마 그런 감정들은 코임브라가 젊음의 활기가 넘치고 관광객들이 일부러 찾아올 만큼 지나치게 멋진 장소이기 때문인 것 같다. 스스로 노력한 대가로 아름다운 코임브라 앞에 설 수 있어서 무척 행복했다. 아직 3분의 1밖에 오지 않았는데도 감격스러운데 과연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어떤 기분일까? 끝을 생각하면 벌써 아쉽지만 한편으로 남은 길과 날들이 더욱 기대됐다.
특별해진 기분만큼 특별한 무언가를 먹었다. 바로 얼음이다. 순례길을 걸으며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카페에서 흔하게 얼음이 든 메뉴를 주문할 수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 얼음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햇빛을 받아 배낭 속에서 뜨끈해진 물을 꺼내 마실 때나, 커피가 혀를 데일 정도로 뜨거울 때, 시원하게 부딪히며 짤랑 소리를 낼 정도로 가득 찬 얼음이 간절했다. 코임브라에 도착해서 아이스커피 대신 색소가 잔뜩 들어간 음료수를 마셨다. 상상하는 색소의 맛이 전부였다. 그래도 어떤 디저트보다 달콤했고 산해진미를 먹은 것처럼 만족스러웠다.
14일 차엔 포르투(Porto)에 도착했다. 포르투는 출발 전부터 기대하던 도시였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름답게 촬영된 포르투의 풍경에 설렜다. 순례길에서 만난 친구들도 하나같이 입을 모아 포르투에 대한 기대감을 털어놓곤 했다. 포르투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은 해당사항이 없었다. 낭만의 도시, 포르투의 아름다움에 어떻게 감탄하지 않을 수 있을까?
포르투에 가기 하루 전 날 묵었던 숙소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숙소 근처에는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집도 별로 없었다. 슈퍼는 카페를 겸하는 작은 구멍가게가 전부이고 현지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 역할도 했다. 아침에 출발해 2시간쯤 작은 마을들을 지나고 일부 개발 중인 숲을 걸었다. 숲길은 어느새 도로가 되었다. 큰 고속도로 위를 눈 깜빡할 속도로 지나치는 자동차가 보이기 시작했다. 더 걸으니 지하철역이 등장했고 노란 화살표는 복잡한 도시의 각종 표시들 사이로 간신히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도 달랐다. 세련된 도시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동안 작은 마을을 걸을 때는 서로 눈을 마주치면 포르투갈어로 인사를 했다. 습관처럼 당연한 행동이었는데 포르투로 가까워질수록 아무도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차가운 반응에 머쓱해서 분주히 포르투 중심지를 향해 걸었다. 사람들은 챙이 있는 등산 모자를 쓰고 자신의 몸 만한 배낭을 멘 채 땀을 흘리는 순례자의 모습이 신기한 듯 힐끗 보고 지나칠 뿐이었다.
코임브라처럼 포르투의 중심지에 가기 위해서는 강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야 했다. 다리 앞에 모인 사람들에 호기심이 생겨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짙은 남색의 넓은 강에 전차가 다닐 정도로 큰 철제 다리가 자리하고 앞엔 아기자기한 포르투의 건물과 작은 골목들이 펼쳐졌다. 혼자 걷는 순례자의 마음도 몽글몽글하게 만들 정도이니 강과 도시를 바라보는 커플들은 심장이 요동칠만하다. 싸우던 커플도 잠시 멈춰 함께 사진을 찍고 사랑을 속삭일 것 같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제일 먼저 코인 세탁소에서 빨래를 했다. 해가 저물 무렵 중심지로 나가 거리를 돌아다녔다. 해리포터의 배경이 되었다고 알려진 렐루서점를 보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을 지나치고 아줄레주(포르투갈의 푸른 타일 장식)가 유명한 상 벤투역을 대강 훑어보았다. 어느 길을 걸어도 포르투갈의 웅장하고 오래된 건물을 볼 수 있었다. 다양한 악세서리와 기념품 등을 파는 작은 벼룩시장이 열려 생기가 느껴졌고 강가에서 버스킹 하는 음악가 덕분에 도시는 한층 감성적으로 변했다. 비가 올 듯 흐린 날씨마저 신비로움을 더할 뿐이었다.
포르투 대성당에 서서 돌아다닌 시내를 내려다보니 기분이 오묘했다. 도시에서도 내 역할은 순례자였다. 원래 하나에 빠지면 다른 것에 무관심해지는 성격이라 도시의 유명 관광지보다 노란 화살표가 먼저 보이고 반가웠다. 입은 옷, 신은 신발, 매일 길을 걷는 순례자라는 역할, 모든 게 그대로인데 주변의 풍경과 사람들은 달랐다.
조금 외롭고 고독했다. 애초에 없는 연인에 대한 그리움이나 부러움은 아니었다. 이렇게 큰 도시 속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중에 예쁜 풍경을 보고 함께 감탄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누구도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 순례길을 혼자 걸을 때는 몰랐는데 도시에서 혼자가 되자 쓸쓸했다. 심지어 옆에서 또래처럼 보이는 한국인 2명이 예쁜 원피스를 입고 같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친구들과 가족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강한 척, 행복한 척 메시지를 보내도 그 순간만큼은 그들이 보고 싶은 작고 어린 꼬마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포르투갈의 낯선 도시에 당당히 홀로 선 스스로가 더 대견했다. 리스본에서 출발해 포르투로 걸어서 도착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버스로 3시간 거리를 14일 동안 걸어서 도착했다. 힘든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은 자신에게 고마웠다. 목표하던 중간 지점에 도착한 성취감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충분히 걸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타인과의 침묵은 자신과의 끝없는 대화였다.
갑작스레 휘황찬란한 대도시로 떨어진 순례자는 자신을 한없이 작아지게 만드는 케이크를 먹기도 했지만, 결국 스스로를 토닥거리고 안아주는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