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de in x Jan 25. 2019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왜 택시를 탔냐고요?

[에세이]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길 (7) : 어리석은 순례자

‘왜 걷는지 모르겠어요.’

5일 차, 산티아고 순례길이 재미있느냐고 묻는 엄마의 문자에 답장을 보냈다.

첫날은 아무것도 모르고 직진만 했다. 리스본 숙소에서 20km 남짓 떨어진 목적지까지 앞만 보고 걸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푸는 동안 9개의 침대는 금방 순례자들로 채워졌다. 카미노 포르투게스(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길) 초반에는 숙소가 한정적이라 자리 경쟁이 치열했다. 비슷하게 2일이 더 지났다. 진로 탐색을 빙자한 취업 걱정이나 지나간 첫사랑과 기타 등등이 잘 사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4일째부터 더 이상 할 게 없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까 고민하다가 제한적인 데이터양을 생각해 참았다. 걷기를 좋아하는 마음도 작심삼일이라 흥미가 떨어졌다. 나흘 동안 지켜본 순례길의 풍경도 솔직히 별로였다. 한국과 다를 바 없는 작은 도시를 지나고 썩은 냄새가 나는 토마토 공장 옆을 걸었다. 3일 차에는 기찻길 옆 흙먼지 속을 두 시간 가까이 걸었다. 길이 위험하고 예쁘지 않기 때문에 순례자들이 교통수단을 이용해 다음 도시로 넘어가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갈등이 시작되었다. 가방이 무거우니 몸이 쉽게 지쳤고 숙소에 잘 공간이 없을까 초조했다. 순례길이란 녀석은 마음에 드는 구석이 단 하나도 없었다. 순례길에서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다면, 차라리 몸이라도 편한 게 낫지 않을까? 왜 여기서 걷고 있을까? 고생 끝에 낙이 올지 모르겠다면, 최선의 선택은 고생을 안 하는 방법이 아닐까? 내일부터 다른 순례자들처럼 버스나 기차를 탈까?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5일 차 아침을 시작했다. 같은 숙소에 있던 순례자들보다 늦게 출발한 탓에 그들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전 날 도착한 산타렘(Santarem)이 꽤 번화한 소도시이기도 했고 이른 아침이라 화살표가 보이지 않았다. 숙소 주변을 한참 헤맨 후 겨우 발견한 화살표를 따라 계속 걸었다. 나무가 없이 모래로만 이루어진 민둥산을 지났고 산에서 생활하시는 할아버지와 인사도 했다. 목적지까지 절반이 지난 것 같아 대략 남은 거리를 확인하기 위해 구글 지도를 켰다.

이상했다. 출발할 때 예상 시간이 8시간이라고 확인했는데, 여전히 8시간이었다. 외진 지형 탓에 신호가 연결이 끊겨 생긴 위치 오류라고 믿고 싶었다. 느낌이 싸했지만,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걸어서 일단 화살표를 따라가려 했다. 잠시 의자에 앉아 쉬는 중 어제 숙소에서 인사만 했던 할머니 순례자를 만났다. 구글 지도를 보여주고 지금 가는 길이 맞는지 물었다.


“네가 말하는 곳은 어딘지 모르겠는데? 이 길은 파티마로 가는 길이야.”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길 중간에 성모 마리아가 발현했다고 알려진 성지, 파티마(Fatima)가 있다. 화살표의 색은 다르지만 초반에는 같은 방향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산타렘에서 나누어져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무조건 화살표를 따라 걸어온 것이다. 중앙 루트가 아니기 때문에 가이드북에서도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당장 오늘 밤을 어디서 자야 하는지 막막했다.


‘망했다.’


머릿속에는 세 글자만 남았고 마음속에서 무언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충격에 빠져 어떤 것도 들리지 않았고 애꿎은 가이드북만 만지작거렸다. 울기 직전의 표정에서 심각함을 느낀 그녀는 긍정적으로 말하려 노력했다.


“네가 가려던 곳은 어딘지 모르겠어. 하지만 여기가 틀린 건 아니야. 파티마는 굉장히 유명하고 의미 있는 장소야. 오히려 잘 온 거야. 괜찮아.”


그리고 파티마에 가기 전 하룻밤 머물 수 있는 숙소를 알려줬다. 숙소는 구글 지도에도 입력되지 않은 곳이라 그녀의 핸드폰을 찍어 어림짐작해야 했다. 더 쉴 테니 먼저 출발하라는 그녀와 꼭 숙소에서 만나자는 인사를 건네고 심란한 마음으로 다시 길을 걸었다.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10월 초 포르투갈의 날씨는 살인적으로 더웠고, 그날은 유독 더 심했다. 햇빛이 강렬해 살이 타는 듯하고 물을 마셔도 갈증이 해결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시간은 해가 가장 뜨거운 2시를 지나고 챙겨 온 물 두 병이 모두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몇 발자국 걸어가다가 멈추길 반복했고 점점 몸에서 힘이 빠져 주저앉으려 했다. 지도를 아무리 살펴봐도 마을이나 가게를 찾아볼 수 없는 산 중턱이었다.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 작은 나무 그늘에 앉아 멍하니 앞만 바라봤다. 현실감이 전혀 없었다. 하고 싶은 일 하겠다고 포르투갈까지 와서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다니. 타는 듯한 갈증이 느껴졌고 어깨에서 내려놓은 무거운 가방을 봤다. 머리가 어지럽기 시작했다. 한 발자국도 더 걸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을 때, 멀리서 아까 만난 할머니 순례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걱정스럽게 쉬고 있던 날 바라보던 그녀는 가방에서 작은 피리를 꺼내 연주를 해주고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물도 나눠주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걸을 힘을 주기 위해 격려했다. 힘든 와중에도 그녀의 시간을 빼앗고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미안했다.


“먼저 가고 싶으면, 가도 돼. 난 아마 오래 앉아있어야 할 것 같아.”

“급한 거 없어. 서두르지 않아도 돼. 내 기쁨이야.

우리는 순례자야. 할 수 있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가 손에 들고 있던 짐까지 대신 들어줬다. 화살표가 있는 길을 이탈해 찾은 인근 마을 레스토랑에서 물을 2병 넘게 마시고 산 하나를 더 넘어서야 작은 시골 마을 몬산토(Monsanto)의 숙소에 도착했다. 작은 표시조차 없는 숙소를 오붓하게 둘이 사용했다.

멀리서 본 Monsanto의 모습

그녀의 이름은 타일러(Tyler). 미국에서 사는 타일러는 68세로 순례길을 4번이나 걸은 전문가였다. 걷기를 사랑하고 도전을 두려워하거나 나이에 연연하지 않았다. 서로에 대해 묻고 답하며 나이와 국적을 뛰어넘어 친구가 되었다. 함께 카페에 앉아 맥주를 마시던 그날의 공기가 잊히지 않는다. 햇빛에 붉게 그을린 볼은 알코올 때문에 더 붉어졌고 대화에서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실내에서 야외 테이블로 옮겨 앉은 우리 앞으로 마을의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장난을 쳤다. 무사히 이곳에서 그녀와 맥주를 마실 수 있음에 감사했다.

순례길에서 처음 마신 맥주

파티마까지 하루 더 타일러와 함께 걸었다. 무작정 앞만 보고 걷지 않고 카페에 앉아 차도 마시며 제대로 쉬었다. 분홍색을 좋아하는 손녀를 위해 분홍색 집을 사진 찍는 타일러를 기다리고 그녀가 나에게 길가에 있는 나무의 이름을 알려주기도 했다. 순례길을 걸으며 즐길 수 있는 순간은 생각보다 더 많았다.


잘못 왔다고 생각한 길에서 만난 타일러는 순례자의 자세와 제대로 걷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녀와 함께 걸으며 어리석은 태도를 반성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단어가 주는 환상을 동경했고 생애 처음 유럽을 걷는다는 허세도 약간 있었다. 정작 순례길에 와서 어떤 환상도 채우지 못했고 SNS에서 올릴 만한 마땅한 풍경 사진도 없으니 실망했다. 혼자서 끝까지 걸을 수 있을지 매 순간 의심하니 어떤 일에도 재미가 없었다. 순례길이 아무리 특별해도 결국 하나의 장소에 불과하다. 삐뚤어진 마음 가짐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파티마로 향하는 길은 가파른 자갈 산을 넘어야 했다. 등산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길을 계속 오르기만 했고 사진 찍을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징그러운 여우와 들쥐의 시체도 봤다. 타일러와 서로의 상태를 확인하며 묵묵히 걸었다. 가쁜 숨을 내쉬며 도착한 정상에는 잘 관리된 간이 화장실까지 있는 넓은 쉼터가 있었다. 그리고 쉼터 아래로 본 풍경은 유럽에 도착해서 본 어떤 풍경보다 아름다웠다. 짙은 녹색의 산 사이로 하얀 벽과 빨간 지붕을 가진 집들이 빼곡하게 펼쳐졌다. 길을 걷는 노력과 순례길에서 흘린 땀은 사람이든 풍경이든 다시 돌아왔다. 모르고 지나친 건 내가 아닐까?

파티마의 모습은 예상과 달랐다. 작은 도시에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대부분은 교통수단을 이용한 관광객이라 성지임에도 배낭을 메고 걸어온 순례자는 타일러와 나, 둘 뿐이었다. 소란스러운 분위기와 갑작스러운 인파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원래 파티마에 도착해서 계획에 따라 산타렘에서 미리 숙소를 예약해둔 토마르(Tomar)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려 했다. 지금 숙소를 취소하면 돈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핑계를 댔지만, 사실 파티마를 벗어나고 싶었다. 북적거리는 파티마도 불편했고 가장 큰 이유는 한심한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

순례길이 어리석은 순례자에게 내린 벌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까? 타일러와 작별인사를 하고 5분이나 일찍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으나 어떤 버스인지 찾지 못해서 마지막 버스를 놓쳤다. 파티마에서 하룻밤을 보내려고 생각하니 밤새 우울한 기분을 떨칠 수 없을 것 같았다. 도망이 절실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택시를 탔다. 41.50유로, 어리석음과 도망의 대가는 쓰고 가혹했다.

Mosanto라는 작은 마을에서 생긴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