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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Aug 10. 2018

해파랑길을 걸었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에세이]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 전: 포르투갈길을 선택한 이유

산티아고 순례길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바다 사진을 봤다. 특별하거나 훌륭하지는 않았는데  

계속 생각났다. 바다. 바다. 바다. 바다. 바다.


손으로 그린 지도이니 재미로만 봐주세요

바다가 보이는 순례길을 걷고 싶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약 100여 개의 루트가 있고 현재도 계속 생기는 중이다. 가장 유명한 길은 프랑스 생장에서 출발하는 카미노 프란세스(Camino Francés)이다. 순례자들을 위한 시설이 잘 정비되어 있고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어서 초보자들이 많이 걷는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카미노 포르투게스(camino portugues)는 약 630km의 길로,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서 출발해 포르투갈 북쪽 도시들을 지나간다. 중간에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가 다시 만나는데 그중 ‘해안길’이 있다. 카미노 프란세스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순례자 수가 적기 때문에 관련 시설과 정보가 부족하다. 예측하기 힘든 여행이지만, 바다에 이미 콩깍지가 씌었다. 그 정도는 괜찮았다. 리스본행 항공권을 예매하고 마음은 대서양을 볼 생각에 두근두근 설렜다. 바다에 왜 이토록 집착했을까?


불과 2년 전, 패기 넘치게 여행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제목은 ‘사서고생’. 대학생 7명이 약 100Km의 동해안 해파랑길을 걷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사서고생'의 한 장면

지금 생각해도 제목을 정말 잘 지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날씨에 카메라, 삼각대 등 장비를 메고 걸어야 했다. 물집이 생긴 발은 걸을 때마다 따끔거렸고 다리는 점점 무거워졌다. 식당이 없어서 오후 4시가 지나서야 지친 상태로 허겁지겁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날이 갈수록 영상에 대한 부담감과 리더의 책임감은 심해졌다.


'사서고생'의 해파랑길

고된 상황과 달리 마음만큼은 즐겁고 행복했다. 팀원들과 서로 의지하고 믿으며 끝까지 함께 걸었다. 사소한 장난은 즐거웠고 시답지 않은 농담까지 기억난다. 팀원들 덕분에 함께 성취하는 기쁨을 배울 수 있었다. 도움도 정말 많이 받았다. 지역주민의 호의로 마을회관을 숙소로 사용할 수 있었고, 지나가시던 분들은 힘내라며 간식을 주셨다. 예상치 못했던 따뜻한 만남은 달콤하고 다정한 꿈같았다. 가끔 팀원들에게 그해 여름이 생각난다는 연락을 받으면,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은 것 같아 울컥한다. ‘사서고생’의 모든 배경이 바다였다.


바다가 아니라 즐겁고 따뜻했던 추억이 그리웠을까? 

그때의 여행으로 돌아가고 싶은 걸까? 

정말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다른 사람들은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을까? 돌아가서 무엇을 할까? 이젠 볼 수 없는 그리운 이를 만나러 갈까?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러 갈까? 상처 준 이에게 복수를 할까? 바보같이 놓친 사랑을 다시 찾으러 갈까?


'사서고생'의 깃발

내 대답은 '절대 아니요.'이다. ‘사서고생’이 아니라 생의 어느 순간이라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 ‘사서고생’이 행복했던 이유는 매 순간 후회 없이 온 힘을 다했기 때문이다. 모든 감각을 열어 바다를 있는 힘껏 즐겼다. 일렁이는 바다를 봤고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들었다. 그 조차 아쉬워서 바다에 몸을 맡겼다. 다시 오지 않을 순간처럼 팀원들과 열심히 걷고 촬영했다. 다른 순간들도 마찬가지다. 거기엔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온 과거가 벌써 존재한다. 간혹 멍청한 선택도 했었지만, 어차피 돌아가도 결과는 똑같다. 멍청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었으니.


지금도 시간은 계속 흐른다

아직 어려서 과거에 미련이 없을 수도 있다. 영화처럼 가슴 절절하게 애틋한 사랑이나 화려한 리즈시절이 없었다. 대신 어린 나이에 걸맞게 철없는 생각을 한다. 짧게 경험한 시간이 아닌 앞으로 인생의 황금기가 있길 바란다. 남들이 어제 먹은 음식에 감탄할 때, 내일 먹을 음식의 맛을 기대하고 싶다. 어쩌면 후회 없이 지금의 여행을 하기 위해 ‘카미노 포르투게스’와 바다를 선택했을지도.


다큐멘터리 ‘사서고생’은 내레이션으로 끝난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길을 걸었다고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다 힘든 순간이 오면 한 번쯤은 이 여행을 떠올릴 것이다. 때로는 용기로, 때로는 추억으로, 때로는 사람으로 기억될 여행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기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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