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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Aug 03. 2018

제 여행이 고생길인가요?

[에세이]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 전: 내 시련은 나에게만 시련이다

“넌 왜 안 해도 되는 고생을 사서 하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겠다고 말하자 엄마가 물었다.  딸의 도보 여행에 대한 엄마의 걱정은 당연하다. 그런데 엄마를 시작으로 여행에 대한 평가가 이어졌다. 일했던 카페 사장님은 ‘겁도 없다.’라고 기겁하셨고 친척 어른들은 ‘거길 굳이 왜 가니?’라며 갸우뚱하셨다. 어른들 말씀은 틀린 게 없다는데, 이쯤 되면 산티아고 순례길은 고생길이 아닐까?


TV가 좋은 꼬꼬마 제이드

꼬꼬마 제이드에게 ‘고생’은 힘들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아빠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탓이다. 대부분 드라마 주인공은 시련을 이겨내고 우여곡절 끝에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행복한 결말을 위해 고구마를 먹은 듯한 답답함과 끓어오르는 분노는 참을 수 있었다. 인생이 드라마 같은 줄 알고 열심히 예습했다. 노트 필기를 했으면, ‘고생 끝에 낙이 온다.’에 별표 백 개를 그렸을지도 모른다. 이왕이면 내 인생에 매력적인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치열하게 역경을 극복해 세상마저 구해내는 히어로처럼.


소음 차단에는 이어폰이 최고다

어리석었다. 히어로는 둘째치고 역경에 이리저리 맞아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진짜 문제는 역경 자체가 아니었다. 인생 선배님들은 세상이 ‘원래’ 더럽고 치사하며, ‘겨우’ ‘이 정도’로 힘들다는 말하지 말라고 다그쳤다. ‘그까짓’ 것도 못 참으면서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지에 대한 걱정도 빠지지 않았다. ‘원래’, ‘겨우’, ‘이 정도’, ‘그까짓’. 내 고통이 별거 아닌 투정으로 바뀌는데 4 단어면 충분했다. 드라마 주인공의 슬픔에는 공감하고 함께 눈물 흘리지만, 현실 속 타인의 고통엔 냉정한 평가를 한다. 귀를 막고 자신이 가장 아프다고 소리친다. 내 시련은 나에게만 시련이다. 시청자의 기대에 못 미치는 위기는 드라마를 지루하게 만들고 주인공의 매력을 앗아간다.


힘들 때마다 꺼내보는 선배님의 편지

신기하게 계속 들으니 익숙해졌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비슷한 말을 했을 수도 있다. 시련을 긍정적으로 해결하고 극복하기보다 그 순간이 언젠가는 끝나길 단순하게 기다렸다. 참으라니 참았고, 버티라니 버텼다. 거의 1년간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한 번 울면 앞으로 멈출 자신이 없었다. 눈물도 사치라 여겨, 대신 어금니로 잇몸을 깨물었다. 부어버린 잇몸에 눈물샘의 버튼이 있는 것처럼. 주인공 연기력이 나날이 늘어 미소 띤 얼굴로 잘 참고, 견디고, 버텼다. 오죽하면 동아리 선배님께서 주신 편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넌 힘들어도 그늘진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참… 대단하다? 란 생각이 들었어.’


이 악물고 버티던 시간도 결국 지나갔고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마냥 신났고 억지로 미소 짓지 않아도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사람들이 고생에 대한 걱정과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여행이 얼마나 위험하고 힘들지를, 포기하면 얻을 수 있는 달콤한 행복에 대해서. 다시 혼란스러웠다.


고생을 미화시키던 어린 나

고생 가득한 현실을 원망하며 버티던 나

굳이 사람들이 고생이라 칭하는 길을 걷는 나


무엇이 맞고 틀렸는지 알 수 없었다. 대체 어디까지 고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고생은 나쁜 걸까? 타인의 행동을 평가할 기준과 자격은 누가 부여하는 걸까? 사람들이 던진 작은 의문은 나에게 큰 파동으로 번졌다. 여행에 대한 기쁨은 흔들렸고 여전히 흔들린다. 질문은 넘쳤고 남이 알려준 답은 마음에 안 들었으며 난 답을 모른다. 그래서 내게 산티아고 순례길이 고생이냐고 묻는다면 약간은 뜬금없는 대답을 하고 싶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정말 고생길인지 아직 말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모두가 고통스럽지 않다고 단정 짓는다면, 스스로 ‘힘들었지?’ 묻고 두 팔을 벌려 안아주고 싶습니다. 아직 한 걸음도 걷지 않은 길에 대해 마음대로 고생이라고 말한다면, 괜찮으니 용기를 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결국, 매력적인 드라마 주인공 대신 열정적인 시청자가 되기를 선택했다.



엄마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왜 걷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이유▼

https://brunch.co.kr/@jadeinx/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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