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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Jul 27. 2018

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요?

[에세이]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 전: 무섭지만 버킷리스트니까

1년의 시간이 주어졌고 여행을 떠난다. 사람들은 어디로 갈까? 휴양지에서 지친 몸과 마음에 쉴 시간을 주거나,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세계 일주를 꿈꿀 수도 있다. 도시 하나를 정해 생활하는 것도 멋지다. 학교 탈출이 목표인 예비 휴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휴학하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거야"


이미 다녀왔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지나치게 많이 말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휴학의 동의어였고, 지긋지긋한 학교생활을 버티게 해준 마법의 주문이었다. 이상하다. 산티아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가겠다고 이야기했을까?


일반적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은 종교적인 이유로 걷는다. ‘산티아고’(Santiago)는 스페인어로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성 야고보를 뜻한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는 그의 유해가 모셔진 성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며, 그곳으로 향하는 여정을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라고 부른다. 이처럼 종교나 역사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장소지만 스스로를 가장 많이 믿는 내가 가기엔 뜬금없다. 산티아고를 걸으려는 이유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했다.



책에서 본 순례길에 끌렸을까? 중학생 때, 순례자 필독서라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었다. 내용을 세세하게 이해할 순 없어도 주인공의 성장은 예민한 사춘기 감성에 참 멋있었다. 나중에 크면 주인공처럼 나를 찾는 여행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지금 보니 주인공 이름이 ‘산티아고’다.


고등학교 친구에게 20살 생일 선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쓴 에세이를 받았다. ‘연금술사’ 속 순례길이 실제로 존재했고 도전과 낭만이 가득했다. 그래도 책 몇 권 읽었다고 순례길을 걷기로 한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행에세이를 수없이 읽었고 모든 여행지는 낭만적이었다. 더 확실한 이유가 필요하다.

막상 고민하니 가야 할 이유는 넘치도록 많았다. ‘걷기’ 자체를 좋아한다. 걸으며 느껴지는 오감의 자극과 목적지에 도착한 뿌듯함이 좋다. 그리고 휴학하면서 놀기만 할 수 없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가겠다는 말만 하고 안 지키는 거짓말쟁이가 되기는 싫었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이유가 빠진 공허한 기분이었다. 예쁘지만 곧 사라질 비눗방울 같았다.



그즈음 생일이 돌아왔다.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매년 버킷리스트를 정리하는 습관이 있다. 지금까지 했던 일을 확인하고, 새롭게 추가하거나 관심 없어진 일을 삭제한다. 마지막으로 올해 이루고 싶은 목록을 정하고 한 해를 열심히 살기로 다짐한다. 올해는 유독 많은 항목을 지웠다. ‘이루기엔 너무 큰 목표야.’ ‘내년엔 취직 준비하기로 했잖아’ ‘1년 휴학은 짧아.’ 이렇게 생각하니 남는 버킷리스트가 없었다. 드디어 현실감각을 찾았다고 축하해야 할지, 해보지도 않고 겁먹은 바보라고 꾸짖어야 할지 복잡했다.


단지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이루지 못했다고 혼내거나 평가할 사람도 없었다. 이제야 산티아고에 가야 할 이유가 왜 비눗방울 같은지 알게 되었다. 무언가 하려면 곧 터져버릴지라도 타당한 이유가 필요했다. ‘그냥’ 가고 싶으면 안 되는 걸까? 순수하게 꿈꾸던 내 모습은 이유와 핑계라는 비눗방울을 남긴 채 인어공주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버킷리스트를 이룰 수 있는 열정까지는 필요 없으니 지우지 않을 만큼의 용기가 간절했다.


버킷리스트 13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로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동화 속에서 왕자님을 찾는 낭만이 아니라 현실에서 용기를 잃어버린 겁쟁이의 발악이다. 꿈을 무서워하기 싫다고 외치는.



산티아고를 모두 걸은 후 느낀 점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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