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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May 10. 2019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 걸으면 뭘 배우나요?

[에세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느낀 점

끝까지 주책없는 여행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서 안 나오던 눈물이 경유지인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자 터져버렸다. 창가 자리와 복도 사이에 중간 자리가 비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이륙과 동시에 우는 옆자리 사람 때문에 많이 놀라고 당황하실 뻔했다.


우는 순간에는 오직 ‘끝’이라는 단어만 떠올랐다. 잘 여행하고 11시간 정도만 지나면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울 필요까지야. 스스로 당황스러울 만큼 속절없이 떨어지는 눈물을 누가 볼까 봐 옷소매로 열심히 훔쳤다. 자신에 대해 고마움과 자랑스러움, 무사히 돌아가는 안도의 마음, 성취의 기쁨이 더해져 복합적으로 섞여 복받친 감정이 아니었을까? 다 울고 나서 영화도 두 편, 기내식도 두 번이나 먹고 간식까지 먹어 알뜰하게 배 속에 채운 후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얼굴을 봤고 친구들과 약속도 연달아 생겼다. 만나는 사람마다 궁금해했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뭘 배우고 왔니? 어떤 깨달음을 얻었어?”


기대에 차서 반짝이는 눈빛에 괜히 머쓱해졌다. 거창하고 원대한 꿈이 생겼다고 말하거나 인생의 진리를 배웠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애초에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어마어마한 변화가 생길 가능성은 희박하다. 떠나기 전부터 거대한 성과를 얻을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쑥스럽게 느낀 점을 이야기하니 한 친구는 ‘이미 아는 거잖아.’ 라며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많은 질문을 했고 나름대로 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가는 장소, 만나는 사람에 따라 새로운 가치들을 배웠으나 모든 배움을 관통하는 하나의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다.’

 

순례길을 떠나기 전, 여행을 준비하는 에세이를 읽고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큰 시험을 앞두었던 그녀는 아팠던 스물셋의 에세이에 공감했고 용기를 낸 나를 응원했다. 그리고 세계 일주를 하는 삶도 있고, 숲 속에서 자연인으로 사는 삶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다양한 삶이 있는데 우린 꼭 대학과 취업이라는 루트를 반복하며 사는 게 맞는지 고민이라고 덧붙였다. 여행의 출발부터 도착까지 그녀의 말이 늘 맴돌았다.



그녀의 말마따나 순례길을 걸으니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삶이 있었다. 살아온 환경도, 생김새도, 성격도 다른 순례자들과 친구가 되어 그들의 삶을 조금 엿보았다. 순례길이라는 상황이 특별한 여행이 아니라 그저 집 앞에서 벌어지는 일상인 사람들도 있었다. 내 또래로 보이는 카페 점원은 엄마를 도와 카페에서 순례자들을 위해 음료를 만들어주었다. 포르투갈 시골길을 걸을 때, 할아버지가 운전하는 작은 트럭에 탄 할머니와 눈이 마주쳐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차가 코너를 돌며 할머니도 똑같이 손을 흔들었다. 포르투갈의 농부로 살아오신 할머니의 삶은 어땠을까?


순례길에서 대화를 나누거나 스친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하물며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한 수십억의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내 주변 사람들도 다양한 삶을 살고 있었을까? 지금 난 무엇을 향해 어떤 모습으로 삶을 걷고 있을까?


27일 차 카미노 피니스테레(산티아고 순례길 피니스테레 길)에서 만난 미국인 할아버지 댄(Dan)과 걸었다. 지독한 경사의 언덕을 넘으며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그는 미국에 있는 아내가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매일 전화를 걸고 계속 문자를 남기는 사랑꾼이었고, 자식들은 다 자라서 세계 각지에서 일하고 있었다.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한다고 말하자 자신의 아내가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친다며 그가 물었다.


“외국에서 공부하는 중이니?”

“아니요,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외국에서 공부해보고 싶지 않아?”

“못해요. 전 이제 돌아가면 직업을 찾아야 하거든요.”

“넌 아직 어려. 왜 안된다고 생각해? 다른 나라에서 공부하는 것도 좋아.”


씁쓸했다. 딱히 외국 생활에 관심이 있거나 공부를 할 마음이 있다기보다 어떤 일을 불가능한 일로 치부하고 삶을 한정시킨 자신이 별로 내키지 않았다. 앞으로 주어진 삶의 방식이 하나뿐이라고 단정 지은 때 묻은 고정관념이 조금 미웠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은 TV에 나온 거기, 유명한 연예인이 걸었다는 카미노 프란세스(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만 순례길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길이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고 유명하지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길은 다양한 갈래로 뻗어있다. TV에서 본 거기를 걸었냐는 물음에 늘 프랑스가 아니라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시작했다는 부연설명을 더 해야 했다.



순례자가 직업이고, 순례길이 인생의 전부인 사람이 있다. 그들을 보면 세상에 인간의 두 다리로 걷지 못할 곳은 없다. 하나의 길을 마치고 다른 방향에서 시작하는 다른 길을 걷는다. 어떤 순례자는 돈이 떨어지면 발이 닿은 곳에서 3개월 정도 일을 하고 돈을 벌어 다시 길을 걷는다. 지도에는 존재하지만, 인적이 극히 드문 외딴 길을 걷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도 한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거꾸로 걸어 다른 사람들의 출발지로 가는 경우도 꽤 있다.



댄을 만난 날, 한국인 순례자 한 분이 같은 숙소에 묵었고 셋이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테이블 매트엔 여러 종류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표시된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각자 걸었던 길에 관해 이야기를 하던 중 댄이 짓궂게 장난을 쳤다.


우리(댄과 한국인 순례자)는 카미노 프란세스를 걸었어. 우리가 표준(normal)이야. 표준이라고~(noooooooooormal)”

“나도 알아요. 저는 특별한 사람이네요.(Special)”



이젠 순례길을 걷기 전 물었던 친구의 질문에 답할 수 있다. 먼저 순례자가 여러 길 중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결정하는 것처럼 우리도 자신의 길을 하나뿐이라고 단정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재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취업 준비를 하고 앞으로 출퇴근의 연속인 삶을 살지라도 언제나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 앞으로도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싶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걷는 길을 표준인가에 대해 논하는 짓궂은 판단에도 오히려 당당한 태도로 특별하게 여길 수 있기를. 다르게 사는 중이라며 스스로 확신을 주길 바란다.


NEVER STOP (dreaming)

마지막으로 서로의 다양함을 응원하길 당부하고 싶다. 표준이라는 댄과 특별한 길을 걸은 내가 피니스테레 길에서 만났고 우린 함께 걸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해 걷는 똑같은 순례자이지만 다른 길에서 다른 추억을 쌓았고 새로운 길에서 만났다. 어느 길이나 동료는 생긴다. 삶에서도 어떤 목적지, 어떤 길에서 누구를 만날지 알 수 없다. 표준처럼 보이는 삶과 특별한 삶을 사는 사람이 같은 목표를 이룰 수 있고, 표준의 길이 특별해질 수도 있고. 반대로 변하기도 한다. 그러니 삶의 어떤 부분에서 만날지 모르는 서로에게 날 선 비판 대신 응원을 해주면 어떨까?


지금의 나부터 살면서 상처 받은 마음에 귀여운 캐릭터 반창고를 붙여주고 두 손을 활짝 펴서 꽉 안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깨를 토닥토닥 감싸고 따듯한 온기를 나누는 세상이 되길 소망한다.


이미 아는 사실이라고 실망해도 상관없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다.’

30일 동안 걸은 약 700Km 산티아고 순례길의 배움이자 깨달음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던 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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