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 전: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돈을 버는데 즐겁지 않다
여행은 꽤나 낭만적이지만,
여행 준비는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2월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겠다고 결심했음에도 9월쯤 출발해야 했다. 영화나 책처럼 바로 떠나기엔 돈도, 계획도, 아무것도 없었다. 40일 여행보다 긴 약 7개월 간의 여행 준비가 시작되었다. 여행에 대한 에세이는 많지만, 여행 준비와 관련된 글은 정보를 전달하는 목적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난 여행 준비 과정에서 경험한 일과 생각을 적으려 한다.
낭만과 현실, 그 경계에 있는 질문에 대해서.
여행을 준비하면서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노력해서 여행을 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 까마득히 먼 여행을 기다리는 불안. 여행에 대한 설렘과 기대. 수시로 변하는 감정 사이에서 돈과 관련된 마음은 대부분 우울이었다.
처음에는 돈을 모을 수 없어 조급했다. 말이 좋아서 휴학생이지, 땡전 한 푼 없는 빈털터리였다. 가격이 오르기 전에 비행기표도 예약해야 하고 가기 전에 사야 할 물건도 많았다.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의 만화카페에 지원했다. 문자로 면접 날짜와 시간까지 정하니 첫 면접이 떠올랐다. 갓 22살이 되던 겨울이었다.
젊은 남자 사장님이 운영하던 작은 동네 카페였다. 종업원과 가족적인 분위기를 추구한다던 사장님의 말씀대로 아주 다양한 질문을 들었다.
첫 질문은 "22살까지 알바도 안 하고 뭐 했어요?"였다. 묘하게 비꼬는 말투. 솔직히 아르바이트를 구할 생각이 없었다. 부모니께서 주시는 감사한 용돈을 아끼고 아끼면, 꼭 필요한 물건만 사면, 충분히 생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능한 선배님들 덕분에 영상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상금으로 해외여행은 못 가도 친구와 2박 3일 국내 여행은 갈 수 있었다. 학교생활을 열심히 해서 장학금도 받았다. 그럼에도 제 나이에 할 일을 하지 않은 것 같아서 스스로 한심했다.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학교에서 영상 만드는 일이 좋아서 열심히 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끔찍한 질문이 돌아왔다.
"야동(야한 동영상) 만들어요?"
어이가 없어 "네?"라고 되묻자 장난이라고 했다. 제대로 화도 내지 못한 채 다른 질문들에 대답했다. 영상에 대한 조롱이었을까? 어린 학생에 대한 무시였을까? 사장님은 기억도 못 할 텐데 아직도 상처가 남아 생각할수록 아프다. 아르바이트는 떨어졌다. 경력이 없어서 뽑을 수 없다는 문자를 받았다. 지독하게 잔인한 현실이었다.
휴학 후 지원한 만화카페 면접은 짧았다. 이력서를 바탕으로 집에서 가까운지, 언제까지 일할 수 있는지 등을 간단하게 묻고 답했다. 며칠 뒤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고, 만화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경력으로 다른 개인 카페에서 일할 수 있었다. 모든 아르바이트 면접이 무례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어쨌든 여행이란 낭만을 위해 아르바이트라는 현실이 시작되었다.
여행 비용을 모으기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은 부러워했다. 심지어 고모는 20대를 생계가 아닌 여행에 돈을 쓸 수 있는 ‘축복받은 세대’라고 지칭했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 무조건 한치의 불행도 없이 분명 행복해야 했다.
정작 돈을 벌고 난 후에는 쓸 수 없어 우울하다. 한 달 월급 거의 전부로 최저가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뿌듯했지만, 남은 돈으로 다음 달까지 어떻게 버틸지 걱정하느라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통장에 돈이 있어도 항상 돈에 쫓겼다. 그림의 떡인 여행 비용 때문에 3,500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유혹을 참기도 했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돈을 버는데 왜 무조건 즐겁지 않을 걸까?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돈을 모아서 여행을 가야 할까? 현재의 행복을 담보로 미래의 불확실한 여행에 사용하는 걸까?
오랜만에 휴학한 대학 동기를 만났다. 최근에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응원해주던 친구가 이어서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최근에 돈 많은 사람이 처음으로 부러웠다고. 우린 아르바이트를 해서 몇 달 만에 겨우 여행을 가는데, 그들은 여행을 지금 당장 떠날 수 있으니까.
여행을 위해 돈을 버는 내 모습이 자랑스럽고 멋있지만 어디인지 모르게 자꾸 안쓰럽다.
여행이 끝나면 괜찮아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