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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Aug 24. 2018

일상이 여행 같을 수 있을까요?

[에세이]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 전: 일상 속 나만의 여행을 만드는 법

여행과 일상이라는 단어는 괴리감이 든다. 여행을 업으로 사는 게 아닌 이상 대부분의 사람에게 여행은 지루한 일상 중 발생하는 특별한 사건이다. 휴가, 관광, 회피 등 여행의 목적은 제각기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일상을 벗어나는 일이다. 어디로든 떠나야 빛나는 순간을 만날 수 있다고 믿었다. 여행 갈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아르바이트에서 어떤 노부부를 만나기 전까지는.


아르바이트 가는 길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했다. 카페는 인도나 가로등이 없어 자동차를 타고 와야 하는 외진 위치에 있었다. 그럼에도 많은 손님들이 야외 테이블에 앉아 따뜻한 봄 햇살과 뒷산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를 즐기기 위해 찾아왔다.


주문을 받으며 보는 손님들의 표정은 제각각 다르다. 매사에 화가 난 사람, 급한 사람,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사람, 메뉴판만 보는 사람, 신나는 사람. 사람의 얼굴은 무수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카페의 단골손님인 노부부를 기억했던 이유도 할머니의 표정 때문이었다. 온화한 눈빛과 미소 짓는 입꼬리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주문은 늘 비슷했다. 할아버지는 항상 뜨거운 아메리카노에 스틱 설탕 두 개를 넣으셨고 할머니는 따뜻한 차를 드셨다. 간혹 연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셨는데 커피를 마실까 고민하는 표정은 마치 10대 소녀 같았다. 1시간 정도 음료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매주 똑같았다. 늘 먹던 메뉴에 늘 같은 모습. 하지만 다른 손님들과 다르게 빛이 났던 건 할머니의 표정 덕분일까?


그들의 일상은 마치 여행 같았다. 아니, 일상 속에서 작은 여행을 만들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까? 좋아하는 음료를 마시며 더없이 편한 누군가와 별거 아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도 빛날 수 있을까? 할머니의 여유는 단순히 나이에서 나오는 연륜이 아니라 일상의 순간을 충분히 즐기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 같았다. 안 오시면 아쉽고, 언제 오실지 기다려지는 유일한 손님이었다.


아르바이트 끝나고 본 하늘

그동안 난 여행이라는 특별한 사건을 만드느라 일상의 빛나는 순간을 지나친 걸까? 

굳이 떠날 날짜를 정하거나 새로운 사건이 아니어도 기분 좋아지는 나만의 여행은 무엇일까?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어쩌면 노부부에 대한 기억은 일하기 싫었던 카페 아르바이트생의 조작된 망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상이 여행 같을 수 있다는 생각은 곧 잊고 벗어나려 발버둥 칠 수도 있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그들을 따라 일상 속 나만의 여행을 만들어 본다. 소파에 누워 블루투스 스피커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고이 모셔둔 책을 읽는다. 책을 검은 글자를 따라서 꿈나라로 떠나면 금상첨화다. 


쓰디쓴 아메리카노에 녹여진 설탕 두 개만큼, 일상이 달콤하게 변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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