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 전: 떠나지도 못했는데 벌써 버거웠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집에서 가까운 곳 위주로 찾으니 평일 중 이틀은 개인 카페에서, 주말에는 만화카페에서 나눠 일하게 되었다. 언젠가 만화카페 사장님이 물었다.
“그래도 여행을 위해 돈 벌면 즐겁지 않아요?”
그럴 줄 알았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목표를 이루는 삶을 배웠다. 중간고사 성적, 원하는 대학, 다이어트 등 쉴 새 없이 변하는 목적에 따라 전진한다. 그러니 목표한 바를 이룬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과정은 어떻든 일단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게 아닐까? 심지어 바라던 휴학을 했고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그래서 휴학하고 여행을 위해 일하면 동화 속 같을 줄 알았다. 과정의 힘듦은 다 괜찮고 여행이 짠하고 나타날 거라 믿었다. 휴학이라는 기쁨에 취해 잠시 잊고 있었다. 인생이 동화였던 적은 별로 없었는데.
처음 해보는 일에 적응하느라 긴장했던 기억, 서서 일하느라 다리가 붓고 아파서 계속 주물러줬던 기억, 손님이 몰려 진땀 흘린 기억, 커피 머신에 손을 델 뻔한 기억. 몸이 힘든 건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보다는 진상 손님을 만날 때 제일 버거웠다.
음료를 마시고 나가려는 커플과 눈이 마주쳤다. 여자 손님이 다 마신 컵이 든 쟁반을 들고 오시면서 “이거 가져다 드리는 거죠?”라고 물었고, 남자 손님은 “난 못 배워서 그런 거 몰라.”라고 말하며 나가셨다. 다 마신 컵을 가져오면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굳이 가져오지 않아도 아르바이트생이 알아서 치운다. 안 해도 될 말을 꺼내 속상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많다.
유난히 바쁜 날이었다. 동네 모임이 전부 일하던 카페에서 열리는지 의심할 만큼 단체손님이 몰렸다. 열심히 음료를 만들고 있는데 10명 정도 모인 테이블에서 큰 소리로 “아가씨!”라고 불렀다.
“왜 카라멜 마끼야또에 휘핑크림이 없어요?”
“손님, 저희 가게는 원래 카라멜 마끼야또에 휘핑크림을 안 올려서요.
드시려면 따로 추가하셔야 해요.”
“얼마인데?”
“500원입니다.”
“500원?”
코웃음을 치시더니 자신 있게 5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셨다. 손님의 행동에 당황해서 굳어있자 같이 온 일행들마저 놀리지 말라며 말렸다. 그 손님은 끝까지 본인은 장난이 아니라며 오만 원권을 내미셨고, 일행이 천 원짜리 지폐를 내며 상황이 마무리되었다. 겨우 500원 때문에 휘핑크림을 올리는 손이 떨릴 정도로 화가 날 수 있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옛 격언도 다시 한번 느꼈다. 개인 카페에는 화장실이 외부에 있었다. 화장실 청소와 청결상태 확인도 아르바이트생의 몫이라 습관처럼 화장실을 살핀다. 그날도 야외 테이블을 정리하고 화장실을 살피려 가고 있었다. 화장실에는 세면대가 있는 문과 변기가 있는 문으로 이중으로 되어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모든 문을 활짝 열고 볼일을 보고 계셨다. 일단 놀라서 재빨리 카페로 들어왔다. 어이가 없었다. 대체 왜 거기서 문을 열고 계셨을까? 이렇게까지 해서 여행을 꼭 가야 할까?
물론 알고 있다. 이상한 손님보다 정상적인 손님들을 훨씬 많이 만나고 진상 손님들은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없다. 잠깐 마주칠 사람에게 속상하고 화를 내도 스스로만 더 울적해진다. 곧 가게 될 여행을 떠올리면 진상 손님마저 즐겁지 않을까?
쓸데없는 상상을 해본다. 비 오는 날, 차가 빠르게 지나가서 물벼락을 맞았다면 ‘괜찮아’하면서 지나칠 수 있을까? 입고 있던 옷이 얼룩덜룩한데 이미 지나간 차에 화내지 않을 수 있을까? 내일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뜬다는 말이 위로가 될까? 얼추 비슷한 기분이다. 함부로 행동하는 손님 때문에 마음이 얼룩덜룩했다.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중요할까? 소중한 오늘이 갑자기 물벼락을 맞았는데.
여행이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어도 준비하는 과정이 전부 즐거울 수는 없다. 결과를 위해 힘든 순간을 참는 과정은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목표를 향하는 모든 어려움을 당연하게 여기고 싶지 않다.
만화카페 사장님께 솔직히 대답했다.
“돈 버는 게 쉬울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