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de in x Sep 10. 2018

누군가의 기대에 숨이 막히나요?

[에세이]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 전: 착한 아이가 순례길에 바라는 점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랐다.

제일 좋아하는 꼬꼬마 사진

아니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 주변에 늘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넘치는 애정과 관심을 주신 부모님, 티격태격 다투지만 잘 챙겨주는 친오빠, 기쁜 일에 축하해주고 슬픈 일에 위로해주는 친구들, 응원과 도움을 주신 선생님들. 과분하게 느껴질 정도로 감사했다. 꿈을 키우던 어린아이는 그들이 보내는 기대와 열심히 노력해서 받은 칭찬으로 무럭무럭 자랐다.


그들의 기대가 언제부터 부담스러웠을까? 연 이은 불합격 소식으로 꽤나 시리고 혹독했던 대학입시가 끝나고 대학생이 되었다. 세상은 넓고 노력하는 사람은 많았다. 모두가 지독한 현실을 치열하게 살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의 기대만큼 무언가 이룰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였다.

대학에서 미디어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악의 없는 말에 마음이 상하기 시작했다. 대학 입학을 축하해준 친척 언니는 한참 뒤에 사실 내가 더 좋은 대학에 갈 줄 알았다고 고백했다. 부모님께서는 자랑스럽게 바라보시면서 이번 학기에도 당연히 높은 성적을 받았는지 물으셨다. 친구들에게 뭐든 열심히 하는 모습이 멋있고 존경스럽다는 칭찬도 여러 번 들었다. 여전히 사랑받고 있었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실망하게 될까 겁이 났다.


언젠가 친구에게 타인의 기대에 부담감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그래도 넌 기대라도 받잖아. 난 기대를 받아본 적이 별로 없어서 부러운데. 고마운 일이야.”


친구의 대답에 부끄럽고 창피했다. 누군가는 부러워하는 배부른 고민을 하다니. 기대에 부응하도록 더 열심히 살기로 다짐했다. 좋은 딸, 학생, 친구, 선배, 후배를 빠짐없이 잘하고 싶었다.


아르바이트 끝나고 집 가는 길

휴학을 하고 여행을 준비할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엔 좋은 아르바이트생이 되고 싶었다. 평일 중 이틀은 개인 카페에서, 주말에는 만화카페에서 일했다. 마침 돈도 필요해서 개인 카페의 대타를 전부 도맡았다. 오전 10시에 카페를 오픈해서 오후 10시에 마감까지 12시간 동안 혼자 일하기도 했다. 커피 머신에서 에스프레소를 많이 내려서 손목이 아팠다. 내가 영악하게 보이지 않아서 앞으로의 삶이 걱정이라는 사장님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묵묵히 일했다. 오히려 꾸지람을 듣고 싶지 않아 최선을 다해 커피를 만들고 청소를 했다. 그러던 중 사장님이 시간을 막무가내로 조정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친구들과 약속 때문에 대타로 일하기 어렵다고 말해도 계속 정확한 약속 시간과 바꿀 수 없는 약속인지 캐물었다. 착한 아르바이트생은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늦게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쉴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동화책을 재밌게 읽었다. 주인공인 나무는 소년이 친구라는 이유로 자신의 열매, 가지, 줄기를 내준다. 주변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고 싶었던 걸까? 나무는 내심 소년이 밉지 않았을까? 소년은 나무가 더 이상 멋지지 않아도 찾아올까?


잘못은 그들의 애정 어린 칭찬과 별거 아닌 말 한마디가 아니었다. 내 욕심이 날 가장 아프게 했다. 타인의 기대에 맞추느라 정작 본인을 옥죄고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스스로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한편으로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열매, 가지, 줄기를 내어주는 고통이 아니라 소년의 칭찬이 받고 싶어 자신에게 물을 과하게 주다가 뿌리부터 썩는 아픔이었다. 어른스러운 척 행동했지만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아이 같은 태도로 그들을 대한 게 아닐까?


어릴 때부터 나무였다

착한 아르바이트생은 일을 그만뒀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서 ‘착한’보다 ‘아르바이트생’을 하지 않는 게 더 빨랐다. 도망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구차하지만 삼십육계 줄행랑은 도움이 되었다. 일을 그만두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할 시간과 조금씩 변할 힘이 생겼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시작하면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 오롯이 홀로 걸어야 한다. 그곳에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될까? 시선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을까? 순례길을 걷는 동안 변해도 한국에 돌아와 같은 고민을 하지 않을까? 다시 숨이 막히지 않을까?


조금씩 자라겠습니다

그래도 조금씩 자라나고 싶다.

그들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별거 아닌 말은 넘길 수 있도록.

스스로를 더 사랑할 수 있도록.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이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으면 다 괜찮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