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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Dec 07. 2018

순례길은 정말 하루 종일 걷기만 하나요?

[에세이]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길(1) : 순례자의 소중한 일상

"순례길? 그거 정말 하루 종일 걷기만 하는 거야? "


하나의 질문, 여러 개의 뉘앙스. ‘순례길?’에 강세를 두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몰라 순수하게 궁금증을 담은 질문이 된다. ‘그거’, ‘걷기만’을 강조하면 굳이 고생해서 걷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으니 설명해달라는 의미이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살짝 입을 벌린 놀린 표정으로 물어본다면, ‘인간이란 존재가 하루 종일 걸을 수 있단 말이야?’라는 확인 사살용이다. 어떤 의도로 물어보든지 내 대답은 하나다.


 "응, 정말 계속 걸어."


흙길을 걸으면 늘 신발이 더러워진다

순례자들은 자신들의 일상을 떠나 산티아고 순례길로 온다. 그리고 순례자들에게 새로운 일상이 생긴다. 각자가 정한 출발지에서 매일 산티아고를 향한다. 도보 순례자의 비중이 많지만, 자전거, 보트, 말 등 교통수단을 이용해 이동할 수 있다.


하루 동안 걷는 거리도 개인의 선택에 따라 다르다. 몸상태가 좋지 않아서 7Km 떨어진 다음 숙소까지 걸을 수도, 정해진 날짜에 산티아고까지 도착하기 위해 40Km 이상씩 걸어도 상관없다. 보통은 20~30km 정도 걷는다. 아침에 눈을 떠 걷기 시작한다. 중간에 나오는 마을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식사를 한 후 다시 걷는다. 숙소에 도착해서 씻고 저녁을 먹으며 쉬다가 잠이 든다. 다음 날도, 다음의 다음 날도 비슷하다. 어쩌면 등교나 출근만큼 단조롭다.

순례자라면 꼭 찍는 그림자 사진

단조롭지만, 지루하지는 않다. 걸으며 풍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포르투갈엔 파스텔색으로 알록달록 칠해진 집이나 다양한 무늬의 타일로 만들어진 집이 많았다. 순례자들은 ‘사랑스러운 집’이라며 감탄하고 미래에 살고 싶은 집을 상상한다. 하늘만 봐도 흥미롭다. 어떤 날은 구름이 작고 몽글몽글하게 가득하고 다른 날은 길게 뻗은 X 모양의 비행운을 보기도 한다. 미세먼지 없는 푸른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 근심이나 걱정이 사라질 것 같다.


산에 올라가면 빨간 지붕으로 가득한 마을의 전경을 볼 수 있고 숲에서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크고 오래된 나무를 만나기도 한다. 큰 강을 건너고 바 옆을 지난다. 평소에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는 창밖의 꽃을 보려고 목적지가 아닌 곳에서 멈춘 적이 없었다. 순례길에서는 잠시 멈춰 꽃을 찍고 향기를 맡아도 괜찮다.


예쁜 순례길의 풍경은 앞으로 쓸 글에서 계속 보여드릴게요

매일 보는 산, 매일 보는 숲마저 지겨워진 순례자들은 나름대로의 행복을 찾는다. 아끼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보내고 통화를 하며 자신의 안녕과 순례길에서 보내는 시간을 공유한다. 남편은 아내에게 무엇을 먹었는지 설명하고 딸은 엄마에게 셀카를 보내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먼 곳의 친구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본 풍경이 얼마나 멋지고 본인이 얼마나 경이로운 경험을 하는지 자랑하는 사람도 있다. 가까이 지낼 때보다 더 다정하고 반가운 목소리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제일 부러웠던 말은 ‘다음엔 당신이랑 같이 이 길을 걷고 싶어.’라는 사랑고백이다.


하트모양 울타리

기록에 의미를 두는 경우도 있다. 하루는 2시간 정도 길에서 ‘조’와 ‘피터’라는 이름의 아일랜드 부부를 만났다. ‘피터’는 모든 풍경을 사진으로 찍었다. 길게 뻗어있는 도로의 모습을 찰칵. 화살표 표지판이 나올 때마다 찰칵. 길을 걷는 아내의 모습을 찰칵. 길가에 이름 모를 열매를 찰칵. 순례길의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어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혹은 작은 수첩에 순례길을 그리는 사람도 있다. 손바닥 만한 팔레트와 작은 붓으로 자신만의 순례길을 남긴다.


때론 맛있는 음식으로 활력을 얻는다. 오늘도 열심히 걸은 자신에 대한 보상이자 내일을 위한 원동력이다. 가끔 성에 차지 않는 음식을 먹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엉망인 불상사가 생기기도 한다. 방법은 많다. 새로운 사람과 대화에서 즐거움을 찾거나 반대로 혼자 조용히 사색하며 시간을 보내는 순례자도 있다. 하루 종일 걷는 일상 속에서 내가 찾은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아주 사소하지만 빨래였다.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스트레스가 쌓이면 빨래를 했다. 사실 세탁기와 건조기가 다 알아서 하지만, 혼자 살면 더러워진 옷을 모아 세탁실에 내려가서 동전을 넣고 섬유유연제를 추가할 시간을 맞추는 일도 제법 귀찮다. 그래도 건조까지 마친 따끈따끈 옷을 차곡차곡 개서 옷장에 넣으면 얼룩지고 복잡했던 마음이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옷을 입고 가장 좋아하는 섬유유연제 향기를 맡을 때 무색무취의 삶을 그나마 향기로 채울 수 있었다.

대도시에서 제일 먼저 갔던 곳이 코인세탁방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거의 매일 손빨래를 했다. 손으로 흙과 먼지가 잔뜩 묻은 옷을 빨아 물기를 털고 숙소에 있는 빨랫줄에 널어 둔다. 10월 초의 포르투갈은 오후의 햇빛이 살이 따가울 정도로 강해서 빨래가 금방 바삭하게 말랐다. 잘 마른빨래를 걷는 행동이 순례길 일상의 기쁨이었고 내일도 깨끗한 옷을 입고 기분 좋게 출발할 수 있어서 설렜다.



순례길을 매일 걸어야 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다. 신발의 편안함, 가방의 무게, 걸음걸이 등 작은 이유 때문에 발에 물집이 생긴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걸으니 어깨, 다리 등 매일 아침 근육통에 시달리며 일어난다. 내리쬐는 햇빛에 온몸의 수분이 바짝 마르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도 순례자들은 계속 걷는다. 하지만 걷기’만’ 하지 않는다. 걸으며 자신의 취향을 분명하게 알고 좋아하는 일을 행동하려 노력한다.



순례길의 일상과 우리의 현실 일상은 별반 다르지 않다. 순례길은 별나라가 아니다. 가끔은 인생에 꼽을 만큼 멋지고 새로운 순간을 직면하지만, 매일 삶을 뒤흔드는 사건이 일어날 수는 없다. 그리고 순례자들은 뛰어나게 ‘걷기’를 잘하는 초인이나 외계인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 누군가의 가족이자 직장동료, 친구, 연인이다. 순례자들이 행복을 찾는 방법 중 대부분은 순례길이 아닌 현실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학생에게 공부가 중요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일은 해야만 한다. 하지만 공부’만’하고 일’만’하고 살 수 있을까? 남들에겐 평범해 보여도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 방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제 반대로 물어보고 싶다. 학교에서 어떤 모습으로 쉬는 시간을 보내요? 오늘 사랑하는 사람과 연락했어요? 첫눈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어요? 맛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걸 좋아하나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평소와 다른 방법으로 선택한 적이 있나요? 당신이 일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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