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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Dec 25. 2018

‘그린 북’ 필요 없는 품위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무비패스] 그린북(2018)

이 영화는 브런치 무비 패스로 감상한 후 작성된 글입니다.
Jade in x의 두 작가의 의견이 모두 담겨있으며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작가 안은 : ‘그린 북’ 필요 없는 품위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런 시대가 있다. 피부색이 검으면 검을수록 가축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고, 아무리 지위가 높고 유명하고 재능이 있어도 흑인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재수 없다면 길을 걷다가도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당하고, 가만히 있는데 도둑 취급을 당해서 아무런 증거도 없이 체포당하고, 그렇게 수많은 것들을 당하는데 그들을 도와주는 이, 도와줄 수 있는 이 한 명 없는 그런 시대가 있다.


지금은 다른가? 나는 다른가?


인종차별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흑인만이 당하는 것도 아니고, 백인우월주의를 다르게 말하는 말도 아니다. 그 어떤 피부색을 가졌건 간에 인종차별은 어디서든 당할 수 있는 행패이자 폭력이다. 대체 왜 그래야 할까? 피부색이 뭐라고. 어디서 태어난 게 뭐가 그리 대단한 권력이라고 내세울 게 없어서 피부색과 태어난 나라와 족보로 타인을 당연하게 짓밟는 걸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많이 울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손에는 ‘그린 북’ 들려있기 때문에.



4살 때부터 공연을 다니기 시작했고, 백악관 무대에 2번씩이나 선, 미국 북부 지역에서 한창 잘 나가고 있는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 박사. 그가 남부 지역 순회공연을 위해 운전수를 구한다. 새롭게 구한 운전수의 이름은 토니 발레롱가. 피아니스트임에도 불구하고 박사라고 불릴 정도로 따놓은 학위도 많고, 점잖고 우아한 행동과 말투를 가진 셜리 박사에 비해 새로 고용한 토니는 말을 시작하고 끝을 맺을 때마다 욕을 하고, 운전할 땐 자꾸 앞을 보지 않는 다소 거친 남자다.


나이트클럽에서 주먹으로 고객을 관리하는 거구의 중년의 토니와 백인들의 고급 사교모임에서 연주를 하는 피아니스트 셜리 박사. 아마 일 때문이 아니라면 절대 어울리지 않을 두 남자의 로드무비, 그게 바로 영화 ‘그린 북’이다.


보통의 흑인과 백인의 우정을 다룬 영화들이 그렇듯 이 영화의 전개 방식도 익숙해서 뻔하다. 편견 가득한 백인이 흑인을 만나 자신의 편견을 깨고 사회의 편견에 맞서 함께 앞으로 나아감으로써 진정한 친구가 되는 이야기. 그 과정에서의 갈등은 주인공 백인과 흑인 사이의 갈등이자 곧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아내가 집에 찾아온 흑인 수리공 두 명에게 대접한 물 한 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모두가 부엌을 나서자마자 두 명이 입을 댄 컵들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리는 토니가 흑인인 셜리 박사 밑에서 일을 하며 점차 그를 이해하고 안아주기까지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만 이 영화가 특별한 점은, 그 시대 속 그럴 법한 결국의 백인인 토니가 어떻게 흑인과 친구가 될 수 있는지 그 감정선에 주목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토니는 흑인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 편견이 꽤나 허무할 정도로 깨지는데, 셜리 박사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나서부터이다. 음악에 문외한이던 토니조차 손바닥이 닳도록 박수를 치게 만드는 박사의 연주를 듣고 토니는 박사가 천재임을 받아들이게 됐고, 박사의 일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주목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자신에 대한 인종차별을 대하는 셜리 박사의 태도다.

토니는 궁금해졌다. 왜 박사는 방 안에서 혼자 위스키를 마시는 걸까? 그리고 알았다. 그는 외로웠다. 고급 사치품들로 가득한 백인들의 파티에서 백 번 공연을 해봤자 박사는 흑인이기 때문에 백인과 같은 레스토랑을 이용할 수 없고, 화장실도 바깥에 놓인 공중화장실을 써야 한다. 그게 싫어서 자신의 숙소로 가는데, 가는 길에 경찰에게 아무 이유 없이 잡혀 시비를 잔뜩 걸린다. 백인들에게 셜리 박사는 그저 ‘피아노를 정말 잘 치는 신기한 흑인’ 일뿐이었다.


그러나 박사는 흑인들 사이에서도 별종이었다. 당시 사회에서 고급 양복을 빼입은 흑인은 어느 백인의 집사이거나 훔친 것으로 통하기 때문에 백인 운전기사까지 데리고 있는 박사를 모든 흑인들은 신기하게 바라본다. ‘왜 저 사람이 양복을? 왜 백인을 운전기사로? 대체 저 사람이 왜?’라는 눈빛으로 박사와 거리를 둔다.


충분히 백인 답지도, 충분히 흑인 답지도 않기에 셜리 박사는 늘 혼자였다. 안전하고 편안해야 하는 집에서조차 박사는 외롭기만 하다. 수많은 진귀한 물건들로 박사의 방은 가득 채워져 있지만 모두 선물 받은 것들이라고 한다. 코끼리 상아 장식품, 특이한 문양의 옷 등 그가 흑인이니까 좋아하겠지란 생각에 준 여러 사람들의 선물들은 오히려 그들이 얼마나 그를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고 있는지를 증명한다. 플로리다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고향 물건이라며 아프리카 물건들을 선물로 줬으니 말이다.


어디서도 온전히 머물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슬퍼서 울 법도 하지만 그는 울지 않는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 친절하고 우아하게 웃으며, 욕 한 마디 던지지 않는다. 미셸 오바마가 연설 중 이렇게 말했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그들이 저급하게 나올수록 우린 품격 있게 나간다).” 그 말처럼 자신을 향한 차별과 인신공격에도 주먹과 욕이 아닌 품위 있는 웃음으로 대함으로써 더 나은 사람임을 보여준다. 늘 그렇게 자신을 광대 취급하는 사람들에게 웃어 보여주기 위해 그는 눈물을 삼킨다. 그래서 그는 눈물을 흘릴 수 없어서 술을 마신다.


그런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해야 하는가? 다른 것도 아닌 피부색 때문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토니가 셜리 박사에게 고용되자마자 박사의 동료들이 토니에게 한 권의 책을 건네준다. ‘흑인 여행자의 안전하고 평화로운 여행을 위한 그린 북’. 일종의 여행 가이드북인 이 책에는 흑인 전용 호텔과 술집에 관한 정보와 흑인은 절대 가면 안 되는 장소, 절대 하면 안 되는 행동 등이 명확하고 자세하게 명시되어 있다. 이때 당시뿐인 이야기인가?


아니다. 당장 서점에 가도 해외여행을 떠나라고 자극하는 수많은 여행책들이 즐비하다. 그 속에 작가가 당한 인종차별 이야기나 어느 지역이 위험한지 쓰이지 않은 책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흑인보다도 동양인을 향한 인종차별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에 해외여행을 갈 때 낭만과 설렘보다는 걱정과 두려움이 조금 더 클 것이다.


‘그린 북’은 여전하다. 그때보다 지금이 심해지면 심해졌지 덜하지 않다. 그때야 잘 몰라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관심과 알려는 노력이 부족해서 그랬을 수도 있겠거니 애써 이해해볼 수는 있지만 지금은 너무도 명확한 고의적 혐오다. 알려고 노력한다면 휴대폰을 꺼내 검색만 해도 자기가 모르는 정보는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다. 모른다고 해도, 모르기 때문에 인종차별이 묵인되는 것 또한 아니다. 상대에 대해 모를수록 겸손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상대를 대하는 게 당연한데, 그 당연한 걸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린 북’은 여전하다.


우린 아직 멀었다. 영화는 다짜고짜 들어오면 안 된다며 손바닥부터 내미는 사람들에게 품위 있는 웃음으로 대해주자 말하지만, 애초에 그런 무례한 사람들이 없는 품위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아직까진 사치인가 보다.




Jade : 오늘도 불 꺼진 현관을 마주할 당신에게 추천하는 영화


1960년대 초반 인종차별이 만연한 미국에서 공연하기 위해 남부로 떠난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와 백인 운전사 ‘토니 발레롱가’가 여정을 떠난다. 그린북의 영화 줄거리이다. 대부분 관객은 줄거리를 보고 영화가 어떻게 전개될지를 예측한다. ‘주인공들의 위기는 인종차별 때문에 생기겠구나.’, ‘서로에 대해 잘 모르던 주인공들이 시간이 지나며 친구가 되겠구나.’, ‘감동적인 영화겠지.’ 그린북은 사람들의 예측에 뒤통수를 때리는 영화는 아니다. 예측 그 이상을 보여주는 영화다.


가장 큰 이유는 캐릭터에 있다. 가난한 이탈리아계 백인과 부유하고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흑인. 한 사람은 말이 많고 비속어를 많이 사용하며 허풍이 심하다. 또 다른 한 사람은 품위를 중요시하고 발음을 정확히 말한다. 두 주인공은 이분법적으로 모든 부분이 정반대의 특징을 가진다.  영화도 그들의 과거 사연보다 인물의 특징에 더 집중한 것 같다. 친척들이 옹기종기 모여 작은 텔레비전을 보는 ‘토니’의 집과 혼자 앉아있는 ‘셜리’의 온갖 진귀한 물건들이 있는 큰 방은 그들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서로 보며 느끼는 결핍은 발생하는 사건을 각자의 측면에서 입체적으로 보게 한다. 특징이 뚜렷하고 결핍을 지닌 주인공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그럼에도 둘 다 자신의 집단에 온전히 속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통으로 지닌 소외감은 그들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고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들의 감정에 동화되게 만든다. 영화 관람 후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스틸컷을 보니 친구가 되어야만 하는 운명처럼 느껴진다. 


다른 이유는 담백하고 물이 흐르듯 진행되는 영화라는 점이다. 130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절체절명의 위기나 거대한 사건이 없어도 지루하지 않다. 영화 전반의 재치 있는 유머 요소들이 자칫 무겁고 신파로 빠질 수 있는 영화의 분위기를 조절해준다. 주인공이 피아니스트인 만큼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도 여럿 등장한다. ‘셜리’의 현란한 연주도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게 하지만, 연주 후 그가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면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유머 요소를 적절히 살리고 피아노 연주를 완벽하게 소화한 배우들의 연기도 영화를 풍성하게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다.


필자는 잔잔하고 감성적인 영화를 좋아한다. 이야기의 흐름이 주인공의 성장에 맞춰진 영화라면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하다. 모두의 취향이 같을 수 없다. 친구들이 ‘이런 영화들은 화려한 액션이나 CG도 없으니까 영화관에서 돈 주고 보긴 아까워. 넷플릭스나 왓챠로 집에서 봐도 충분해!’라고 말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런 생각도 각자의 취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감성적인 영화를 영화관에서 꼭 봐야 한다고 추천한 적은 드물다. 하지만 그린북은 영화관에서 봐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


해가 바뀔 때는 각종 모임으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꼭 참석해야 하는 불편한 모임에서 군중 속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다. 혹은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은 즐거워도 불 꺼진 집의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며 오히려 더 외로워진다. 외로움이 유독 추운 날, 영화 한 편 보는 건 어떨까? 불이 켜진 따뜻한 집 같은 영화 그린북(2019년 1월 10일 개봉)을 추천한다.


추신) 영화에서 옥석을 보면서, 이 글을 쓴 제이드(옥이라는 뜻의 영어)도 기억해주세요.


*사진출처: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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