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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Nov 29. 2018

팬으로서, 인간으로서 내 가수에게 바라는 단 한 가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2018)'

1. 오프닝;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아무나 볼 수 없는 장면


중학생 때만 해도 일주일에 3일, 방송 3사의 음악 프로그램을 매주 챙겨봤던 것 같다. 물론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는 잘생긴 오빠들을 보기 위함이 가장 컸지만 모르는 가수라도 음악이 좋으면 나도 모르게 흥에 겨워 어깨를 들썩이는 그 1시간 동안이 당시 내 인생의 낙이었다. 사실 그때가 한창 동방신기의 ‘주문’과 슈퍼주니어의 ‘쏘리쏘리’, 빅뱅의 ‘하루하루’가 한국을 집어삼킬 때였고, 거기에 샤이니까지 데뷔했으니 말 다 한 셈(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어른이 된 나는 어쩌다 한 번, 많이 봐야 1년에 한 번 정도 TV 채널을 돌리다가 슬쩍 지나치는 정도로 음악 프로그램을 보곤 하는데, 그때 새삼 절실하게 느낀다. 세상이 참 많이도 변했다고. 웬만큼 이름이 알려진 그룹도 멤버 개개인의 이름은 모를 정도다보니 출연하는 ‘아이돌’ 중 낯익은 그룹이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그 정도로 너무 많은 아이돌이 생산되고, 잊히고, 다시 생산된다. 지금은 그 정도가 지나친 듯도 하다. 오죽하면 ‘프로듀스 101’ 같이 아예 방송국에서 자체적으로 아이돌 그룹을 만들려고 할까.


데뷔하기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끝 모를 연습생 기간을 견뎌내고, 성공할 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데뷔했다가 무명의 쓴맛을 보고, 포기하거나 다시 도전한다. 데뷔를 했다고 해도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내 앞뒤로 놓인 경쟁자들보다 더 많은 팬을 모으기 위해 더 좋은 노래를 만들어야 하고, 더 자극적인 이미지를 구축해야 하고, 더 나은 재능을 갈고 닦아야 한다.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냄과 동시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던져지는 지나치리 만큼 아프고 의미 없는 악플들에 상처 받는다. 이 모든 것을 이겨내야 한다.


왜? 무엇을 위해?


그 질문의 답은 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오프닝에서 찾을 수 있다. 산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키우는 고양이들 마다 각자의 방이 있을 정도로 커다랗다 못해 거대한 저택, 그 안을 고양이보다 우아한 발걸음으로 걷는 한 남자. 이윽고 펼쳐지는 장면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오직 그만을 위한 무대, 그만을 위한 피아노와 그와 함께 하기 위해 모인 멤버들, 그들을 비춰 세상에 내보내기 위한 수십 대의 방송 카메라들, 그리고 오직 그를, 그들을 바라보고 함께 노래하고 눈 앞에서 박수를 보내기 위해 모인 수십만 명의 관객들.


출처: 다음 영화


 그 어떤 가수가 이 광경을 자신의 업적으로 남기고 싶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어떤 사람이 내 것으로 만인에게 사랑받고, 오직 나를 위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 사실에 이끌리지 않을 수 있을까. 특히나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업으로 살아가는 연예인이라면, 특히나 자신의 목소리와 뜻을 담은 노래로 인정 받고자 하는 가수라면 어떻게 전설이 되길 원하지 않을 수 있을까.  


2. 프레디 머큐리; 완벽한 가수이자 외로운 스타


이 이상 아는 척은 삼간다. 다만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흔하디 흔한 팬의 입장에서 이 영화를 보자면 ‘내 가수’가 생각나서 눈물이 흐르더랬다.


왜? 그들도 프레디 같을까봐. 프레디처럼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 때문에 외롭고,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해 외로울까봐.


그래, 처음 몇 분 정도는 그럭저럭 흥도 났다. ‘퀸’이라는 밴드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지만 ‘둥둥탁- 둥둥탁-’ 리듬 정도는 몸에 탑재되어 있고, 그들이 비틀즈와 마이클 잭슨처럼 한 시대를 대표할 정도로 엄청난 전설이라는 것 정도는 태어나기 전부터 알고 있던 것들이다. 때문에 이 영화의 결말이야 뻔하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성공하는데, 뭘’. 아르바이트생 프레디 머큐리가 해체 직전에 놓인 밴드에 들어가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마음껏 뽐내고, 마침 그들의 잠재력을 발견한 사람을 만나 데모를 녹음하고, 그 유명한 ‘보헤미안 랩소디’가 너무 실험적이고 대중적이지 않으니 다른 곡을 내놓으라는 당시 최고의 음반회사 사장에게 “당신은 밴드 ‘퀸’을 놓친 남자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며 악담을 퍼붓고, 결국 그 곡이 대박이 나 미국 전역에서 순회공연을 펼치며 승승장구. 거기에 지루할 틈 없이 반가운 퀸의 노래까지. 너무나도 뻔하디 뻔한 스토리에 지루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답게 위기는 찾아오고, 그건 바로 ‘퀸’의 리드보컬인 프레디 머큐리가 게이라는 점이다. 그로 인해 밴드는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결혼을 약속하고, 인생의 사랑이라며 노래까지 바친 메리와 헤어지게 되고, 순회공연을 다니는 동안 게이클럽에 다니며 여러 남자들과 잠자리를 갖는다. 그러는 동안 밴드를 향하는 스포트라이트는 모두 프레디에게로 조준되어 있어 밴드 내의 분위기도 안 좋은데 매니저 폴은 그 틈을 이용해 프레디를 솔로로 세우려 밴드의 해체를 조장한다. 그러면서도 프레디의 환심을 사려고 매일 밤 그의 집에 사람들을 불러 파티를 연다.


찬란한 태양 같던 프레디는 수많은 별빛에 잠식되는 밤처럼 빛을 잃어갔다. 자신의 의지와 의도와는 상관 없이 밴드 ‘퀸’의 리드보컬이 아닌 ‘프레디 머큐리’에게만 관심이 집중되어 그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물론 루머와 스캔들까지 떠안아야 했다. 탄탄대로일 줄만 알았던 솔로 데뷔는 음반 작업부터 제대로 되질 않았고, 급기야는 에이즈까지 걸려 시한부를 선고받았다.


모두 떠난다. 밴드 멤버들도, 믿었던 변호사도, 인생을 바쳐 사랑했던 단 한 사람까지. 세상 사람 모두가 그를 사랑하고, 그의 노래에 열광해도 프레디는 외로웠다. 공연장 위에 올라간 그를 세상 사람 모두가 칭송하며 정말 ‘여왕’을 받들 듯하지만 정작 프레디가 필요했던 건 어두운 집 한 가운데서 온몸과 마음이 아파 떨고 있을 때 그를 안아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픈 자신을 찾아온 메리에게 매달리듯 안긴 프레디의 모습을 보며 울었다. 떠나려는 메리를 붙잡으며 ‘날 떠나지마, 난 네가 필요해’라며 울부짖는 프레디의 모습을 보며 내 가수들을 떠올렸다.


내가 그토록 좋아한다 자랑스레 얘기하던 그들이 어쩌면 또 다른 시대 속 프레디일 수도 있을 지도 모른다. 사람들 앞에서 자기 노래를 하며 그저 행복하길 바랐던 청년의 주변에 별의 별 사람들이 모여 그를 압박하며 그게 사랑이라 말한다. 관심이자 성공이라 말한다. 정작 청년의 외로움은 자기 자신조차 돌봐줄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리고 만다. 내가 좋아하는 청년들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사람이 내가 될 수 없어서, 내 사랑이 어쩌면 그들을 압박해 더욱 외롭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아파서 내내 울었다.


3.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레디는 다시 일어서고자 한다. 기침에 피가 섞여도 노래를 부르려 하고, 날 혐오하듯 바라보는 멤버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며 자신을 다시 받아달라 말한다. 자신을 원하는 팬들 앞에 서서 자신의 노래를 부르길 바라고, 자신의 노래를 따라 불러주는 팬들 앞에서 손을 흔들길 바란다.


왜? 그게 ‘나’니까.


프레디는 자신의 노래를 부르고자 했고, 자신의 노래를 듣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거창한 시대정신을 세상에 널리 알려 혁명을 일으키려는 게 아니라 그저 자기 자신이 사는 이유가 바로 거기 있기 때문이다. 노래가 곧 자신이었고, 그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는 팬들이 곧 노래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된 것이다.


출처: 다음 영화


그래서 앞선 내 눈물과 걱정이 정말 쓸데없단 걸 알아 안도의 눈물을 또 흘렸더랬다. 팬으로서의 내 사랑이 그들에게 짐이 되지 않아도 돼서, 어쩌면 어느 순간에는 오히려 힘이 될 수 있어서, 그 만한 생각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내가 그의 외로움을 달랠 단 한 사람이 될 수는 없어도 그의 공연장을 채우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서 목소리를 더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내 가수가 ‘아이돌 그룹’이어서 다행이었다. 프레디에게 모든 이목이 집중되어 프레디에게도, 밴드 전체에게도 큰 상처가 될 정도였지만 밴드라는 특성상 보컬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때문에 밴드에 대한 찬사는 물론 비난의 화살까지 프레디를 향할 때가 많다. 그 또한 프레디를 예민하게 자극한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누가 더 인기가 많고 적고는 따질 수 있어도, 누구 하나 덜 하거나 더 멋진 것을 헤아릴 수 없이 같이 있기에 더 멋지고, 서로의 단점을 장점으로 보완할 수 있는, 서로의 가치를 그 누구보다 더 잘 아는 그런 사람들이 모인 그룹이어서 다행이었다. 프레디처럼 의지할 곳이 없어 자신을 해치는 것에 손을 뻗지 않아도, 의지할 수 있는 서로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내 가수들을 더 오래, 좋게 보고 싶기 때문이다.


당신의 음악을 들으며 힘을 얻고 낭만을 즐기는 한 사람의 팬으로서, 같은 하늘 아래서 함께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단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다. 춤 추고 노래하느라 고생하는 건 좋으니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은 사람들 곁에서 좋은 말을 듣고 좋은 사람이 되어 오늘보다 내일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날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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