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de in x Jan 24. 2019

'증인'은 좋은 영화입니까?

[무비 패스] 영화 '증인(2018)'

이 글은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되었으며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보기 전 숨 고르기가 필요한 영화가 있다. 현실의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영화들. 보고 난 후에 여운을 짙게 남겨 가슴을 먹먹하고 저릿하게 만든다. 때로는 현실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기필코 알아야만 하는 사실을 알려주는 역할을 영화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다만, 스스로 그동안 비겁하게 침묵한 방관자처럼 느껴지기 때문일까? 들숨에 마음을 다잡고 날숨에 현실에 대한 무관심을 뱉는다.


영화 ‘증인’을 보기 전에도 숨 고르기를 했다. ‘증인’은 우연히 살인사건을 목격한 자폐 소녀 ‘지우’(김향기)와 그녀의 증언으로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 의뢰인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변호사 ‘순호(정우성)’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관람 전 대략적인 줄거리나 예고편을 살펴보는데 예사롭지 않았다. 변호사, 자폐아, 살인사건 같은 핵심 키워드를 보니 머리가 약간 지끈거렸다. 설명은 또 얼마나 자세히 해주려고 상영시간은 129분이나 되는지, 영화를 보기도 전에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한숨이 나왔다


http://tv.kakao.com/v/394344583 

영화 '증인' 티저 예고편


‘증인’의 장점은 주제를 은근하게 끝까지 밀고 가는 힘이다. 비열하고 각박한 세상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순호’가 직시한 현실의 모습은 거짓투성이다. 돈이 정의를 이길 수 있고 의뢰인에게 거짓말 탐지기를 요구할 만큼 믿음이 부족하다. 타인에게 계산적으로 접근하고 이용하는 능력은 필수적이다. 어느 정도 때가 묻어야 성공할 수 있고 빌런(악당)은 매력적으로 포장된다. 상황과 별개로 이상적이고 선한 가치를 추구하는 인물들이 ‘순호’의 곁에 있다는 사실이 그를 더 혼란스럽게 한다. 결정타는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 살아가는 ‘지우’가 이따금 ‘순호’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아저씨도 나를 이용할 겁니까?”


‘순호’를 비롯한 관객들은 ‘지우’를 불완전하고 부족한 존재라고 판단하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자폐의 이미지에 치중하여 ‘그들은 거짓말도 못하고 순수해. 그러니까 넌 믿어야 해.’라며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영화가 담고 있는 주제의식과 마찬가지로 차곡차곡 자폐의 특성을 새롭게 쌓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재판이 열린 듯 ‘지우’를 둘러싼 오해와 편견에 대해 논리와 사실을 바탕으로 하나씩 설득한다. 그녀의 세계를 이해하고 발을 딛게 한다. 자폐가 사건의 갈등과 변화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그저 소재일 뿐이다. ‘순호’에게 결정타는 자폐라는 특성이 아니라 ‘지우’라는 선한 존재 자체다.


‘순호’는 ‘지우’의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까? 사실 영화의 중반부터 결말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일부 장면이나 대사는 감정 과잉처럼 느껴져 부담스러웠고 여타의 한국영화와 비슷하게 과하게 친절한 엔딩이 아쉬웠다. 담백한 생략이 관객이 여운을 길게 느낄 시간을 줄 수 있다. 예측 가능한 결말과 일부 부담스러운 장면들은 그나마 크게 불편하지 않았던 이유는 차곡차곡 쌓은 주제의식 덕분이다.


배우들의 연기 덕분이기도 하다. ‘증인’의 핵심 관계인 ‘순호’와 ‘지우’는 물론이고 그의 아버지, 상대편 검사 등 주변 인물들과 호흡이 잘 맞았다. 인물들 사이의 티키타카가 자칫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는 분위기를 적절하게 유지했다. 특히 아버지 역할의 박근형 배우님을 보기 위해서라도 ‘증인’을 볼 이유는 충분하다.


영화 속 ‘지우’처럼 물어본다. ‘증인’은 좋은 영화였을까? 좋은 영화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답할 수 없으나 ‘증인’이 좋은 영화가 되기 위해 노력했으며 나쁜 영화는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다. ‘증인’을 보기만 해도 답답해지는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이라고 생각했는데, 미세먼지 속에서 주변 공기만은 깨끗하게 만들어 줄 것 같은 거대한 나무 같은 영화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린 북’ 필요 없는 품위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