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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Feb 03. 2019

‘우리가족’의 비법 레시피로 현지화에 성공한 ‘라멘샵’

[무비 패스] '우리가족: 라멘샵(2018)'

이 글은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되었으며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일본의 어느 시골 마을, 라멘 한 그릇이 만들어진다. 그 라멘을 파는 라멘집은 꽤나 맛집인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아이마저 활짝 웃으며 라멘을 먹고 있다.


영업시간이 끝난 밤이 되었다. 활기찬 낮과 달리 문을 닫고 손님들이 나간 가게의 분위기는 적막하다 못해 차갑다. 가게의 주인처럼 보이는 남자는 가게를 나가 이웃한 술집으로 향한다. 가게에는 그와 함께 일하던 젊은 남자는 아버지와 최근 관계를 묻는 삼촌의 질문에 자신이 차라리 라멘이면 좋겠다고 말한다. 라멘이면 지금보다는 더 많은 관심을 줄 테니까.


시간이 지난 어느 오전,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아침 식사를 하는데 밥만 먹을 뿐 삭막하다. 심지어 아버지는 아들이 다 먹기도 전에 일어나 나가버린다. 아들도 일상인 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잠시 후 라멘집으로 출근을 한 아들은 쓰러진 아버지를 발견한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 그리고 다시 일본의 시골 풍경들. 아버지 방의 문을 연 아들은 담담한 표정으로 검은 양복을 입고 있다.


https://movie.daum.net/moviedb/video?id=119189&vclipId=59443


‘우리 가족 : 라멘샵’의 첫 부분이다. 영화는 아버지를 잃은 아들 ‘마사토’가 우연히 아버지의 방에서 어릴 적 돌아가신 어머니의 옛날 물건을 발견하고 또 다른 가족을 찾아 싱가포르로 떠나는 과정을 담았다. 그리고 어머니의 나라인 싱가포르의 음식을 통해 문화를 더 깊게 이해한다. 따라서 식은 단순한 끼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싱가포르 음식 '바쿠테'라는 핵심 소재 외에도 치킨라이스, 생선 머리 커리, 싱가포르 가정식 일본의 라멘 등 다채로운 음식이 등장한다. 음식을 통해 ‘마사토’는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고 과거의 추억에 한 발자국 다가선다.


그러니 음식을 눈길을 끄는 이미지로만 담을 수 없었다. 거의 음식 다큐멘터리처럼 인물들이 관련된 전통이나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싱가포르와 일본의 음식이 생소한 관객에게는 음식의 유래와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고, 라멘이 일본의 소울 푸드가 된 이유를 설명한다. 간혹 설명이 이어져 집중력을 잃기도 했지만, 그들의 음식에 대해 몰라도 영화를 보는데 지장이 없도록 신경 쓴 모습이었다.


영화의 흐름이 ‘발단 – 전개 – 위기 – 절정 – 결말’처럼 통상적인 구성은 아니다. 주인공 ‘마사토’가 게임처럼 하나의 단계를 넘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느낌이다. 구성 자체가 거대한 위기나 긴장감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담백하고 차분하게 영화가 진행되도록 돕는다. 한 컷의 길이도 길게 편집해서 주인공이 화면 밖으로 나간 뒤까지 빈 거리의 풍경을 보여준다. 싱가포르에 도착한 후 컷 편집이 약간 빨라지고 배경음악이 나오며 분위기가 전환된다. 하지만 곧 원래의 흐름으로 돌아와 영화에 여백을 남긴다.


영화의 담백함은 색감으로도 만들어졌다. ‘마사토’는 아버지의 방에서 필름 카메라로 찍은 부모님의 젊은 시절 사진을 발견한다. 그와 비슷하게 싱가포르에서 ‘마사토’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과거가 등장하는 장면은 빛바랜 필름 카메라 사진 같은 느낌이다. 약간 뿌옇고 빛이 번지는 화면은 겹겹이 쌓인 시간을 보여준다.


새로운 음식을 경험하며 가족을 만나고 부모님의 과거를 따뜻하게 다루는 정도로 끝날 줄 알았던 영화는 더 깊게 파고들어 일본과 싱가포르의 역사를 다룬다. ‘마사토’의 가족이라는 미시적인 관점으로 역사적 사건과 아픔을 표현한다. 영화의 내용을 설명하자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무분별한 학살로 인해 ‘마사토’의 증조할아버지가 죽임을 당했다. 할머니는 그 때문에 ‘마사토’ 부모님의 관계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서로에게 상처만 입힌 채 ‘마사토’의 어머니는 일본으로 갔고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싱가포르 감독이 만들었기 때문인지, 주인공이  모르고 있던 역사적 사실을 직면하는 장면에서 일본의 학살을 다룬 묘사는 놀랄 만큼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다. 영화는 역사를 직접 겪은 할머니의 아픔과 그러한 아픔이 주인공을 포함한 다른 세대에게 어떤 모습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담으려 노력했다.


다만, 영화의 가장 큰 문제도 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의 아픔이 드러나기 시작하며 주인공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고 이야기는 공감을 잃는다. 주인공은 과거 일본이 잘못한 건 알겠지만 그게 아버지의 잘못이냐고 할머니에게 소리치며 따진다. 역사의 피해자인 할머니를 지옥 같은 시간 속에서 어머니를 살게 한 가해자로 만든다. 그리고 영화는 오만방자하고 무례한 주인공의 태도를 술주정으로 치부한다.


술에서 깨자 갑자기 싱가포르의 바쿠테와 일본의 라멘을 합쳐 ‘라멘테’를 만들어 할머니에게 선물한다. 음식을 전하며 무례한 태도에 사과한다는 이야기도 주인공이 직접 하지 않는다. 삼촌의 쪽지에 적은 '마사토가 그 날 일을 사과하고 싶어 해.'로 전해진다. 그걸 먹은 할머니의 태도는 마치 웃기려고 만든 광고의 한 장면 같다. 그리고 우당탕탕 해피엔딩. 누구를 위한 ‘라멘테’일까? 이제 시간이 지났으니 이해해달라는 걸까? 영화의 목적이 가족영화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려 했다. 그래도 감독이 역사의 큰 아픔을 꺼낸 이유가 ‘우린 음식, 문화, 언어가 다르고 심지어 아픔도 있지만 가족이니까 전부 상관없어!’라고 하기엔 누군가에겐 여전히 너무 큰 상처가 아닐까? 아무리 미시적인 관점이라도 역사를 표현하기에 영화는 짧았고 안일했다.


평소 음식영화를 좋아하고 담백한 연출을 선호하는 편이라 영화에 큰 기대를 했었다. 음식과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다가 갑자기 의구심을 들게 하더니 마지막에는 ‘우리 가족’의 비법 레시피로 현지화에 성공한 ‘라멘샵’이야기로 끝나버려 몹시 실망스러웠다. 마치 맛집인 줄 알고 찾아가서 줄을 섰는데 생각보다 실망스러운 기분이다. 아, 집 가는 길에 컵라면 사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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