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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Feb 05. 2019

‘킹덤’은 좀비물이 아니지만 좀비물이 좋아졌다(스포O)

드라마 '킹덤(2019)

1. 좀비물을 못 보는 내가 본 「킹덤」


나는 좀비물을 못 본다. 싫어한다기 보단 못 견딘다는 표현이 더 맞다. 겁도 많은 주제에 공포영화를 참 좋아하고, 괴물이 나오는 영화는 극장에서 꼭 챙겨볼 정도로 애정하면서 유독 좀비물에는 손이 안 가곤 했다. 재작년에 한창 유행했던 「부산행」도 남들 다 보러 갈 때 혼자 예고편도 못 볼 정도였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감정이입을 심하게 하는 편이다. 얼마나 심하냐면 보통은 정이 가는 주인공이나 몇몇 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가게끔 영화가 짜이는데, 영화 속 상황이 현실적이고 있을 법한 상황일 때면 엑스트라들에게도 공감하곤 한다. 그래서 공포영화나 괴수영화는 벌벌 떨면서도 잘 볼 수 있다. 가짜 티가 나고, 가짜일 수밖에 없어서 인물과의 거리 두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좀비물은 약간 다르다. 가면을 쓴 살인마나 귀신이나 괴물이 커다란 무기나 존재 자체로 나에게 위협을 가하는 게 아니다. 내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누군지도 알아보지 못하고 오로지 내 생살을 물어뜯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이를 세워 달려든다. 오로지 그의 손과 이빨만으로 내 살 속에 파묻힌 내장을 노리고, 뱃속이 파헤쳐지는 도중에도 나는 두 눈 시퍼렇게 떠서 있는 그대로의 고통을 느낀다. 심지어 좀비 바이러스에 전염되는 속도가 무지막지해 물 밀 듯이 몰려와 말 그대로의 인산인해를 이룬다. 살아남기 위해선 도망쳐야 하지만 결국엔 막다른 길로 몰려 죽음을 기다려야 한다.


출처 : 넷플릭스

좀비가 인물의 팔을 물면 내 팔이 근질거리고, 눈이 뒤집혀가며 죽어가는 인물의 모습을 보면 내가 까무러칠 것만 같다. 이입하기 너무 쉬운 고통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려 지금 당장 내가 죽어가는 것처럼 아프다. 아프려고 영화를 보진 않기에 당연하게도 좀비물을 멀리 했다.


그런데 넷플릭스에 「킹덤」이 떴다. 영화 「간신」에서도 사극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주지훈 배우와 이미 한국의 장르여왕으로 불리는 김은희 작가가 그려내는 조선판 좀비물, 게다가 분위기 째지는 예고편에 이 드라마를 안 볼 수가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밌긴 하다. 솔직히 예고편을 보고 기대한 만큼의 퀄리티는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드라마는 확실하다. 제대로 된 한국판 좀비물을 기대하고 본 사람이라면 좀비물을 가장한 궁중암투극에 매우 실망할 것이고, 영화 「창궐」에 실망했거나 나처럼 좀비물을 잘 못 보거나 경험이 없던 사람이라면 꽤나 흥미롭게 볼 것이다.


2. 호; 좀비의 시작이 재밌다


(약간 국문과 티를 내자면) 문학 속 질병은 현대사회의 건강성에 대한 척도로서 상징하는 바가 있다. 예를 들면, 김애란 작가의 『두근두근 내 인생』 속 조로증(피부가 빨리 노화하는 병)을 앓는 신체나이 여든의 16세 소년 아름이는 현대 청춘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나이에 비해 일찍 철이 든 아이들이 느끼는 고독감이나, 삶의 목적을 잃어 스스로가 쓸모없이 느껴지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짐만 될 뿐이라 느끼는 무기력감과 낮은 자존감. 살아도 내 나이에 맞게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의문들을 시각적이면서도 병리학적으로 상징하는 것이 조로증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대문학이 만들어낸 좀비라는 괴생명체는 삶을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아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진 현대인의 불안감, 나아가 이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당대의 사회문제를 상징하곤 한다. 뱀파이어나 늑대인간, 외계인 등과는 달리 좀비가 등장하는 영화에서 유독 사회의 단면을 비추는 역할로 당시의 뉴스가 차용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또한 물리든 피부에 닿든 섭취하든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를 기반으로 좀비가 된다는 점에서 질병으로 간주된다.


드라마 「킹덤」은 그런 의미에서 좀비가 전염되는 원인과 과정을 다룸에 있어서 장르의 특성을 잘 살렸다고 생각한다. 두 차례의 왜란이 끝나고 황폐해진 조선, 나이 어린 중전이 임신을 했는데, 출산도 전에 왕이 사망한다. 중전과 그의 아이를 앞세워 권력을 잡으려는 영의정은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생사초를 왕에게 먹인다. 그로 인해 왕은 좀비가 되고, 중전이 출산할 때까지만 왕을 살려둘 생각으로 영의정은 몰래 궁에서 신하들을 데려가 좀비가 된 왕에게 식사로 바친다.


이때 어의가 왕에게 잡아먹혀 죽은 아이의 시체를 한 산골마을 의원으로 데리고 온다. 하필이면 마을은 외지고, 관아에서 쌀이든 고기든 제대로 된 먹거리를 주지 않아 굶어 죽어가는 환자들로 의원은 가득하다. 이대로 굶어 죽는 것보단 낫겠다 싶어 결국 한 청년이 아이의 시체로 고깃국을 지어 사람들에게 먹인다. 그래도 양심은 찔렸는지 자신은 먹지 않고. 좀비에게 물려 죽은 시체를 먹은 사람들은 그날 밤 좀비가 되었고, 비극은 그렇게 시작된다.


출처 : 넷플릭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사람들에게 아이의 시체를 먹인 청년은 이렇게 말한다.


“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남았을 것 같아? 그 사람들 살린 건 배고픔에 굶어 죽은 이웃들의 살과 뼈야.”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원인이자 좀비물을 더욱 공포스럽게 만드는 건 바로 이것이다. 그 누구도 완벽한 피해자도, 가해자도 될 수 없다. 살아남기 위해선 뭐든 해야 하고, 자신의 인간다움과 생존을 위한 극한의 상황 사이에서 갈등하게 만든다. 같은 사람조차 믿을 수 없고, 불신에 불신을 거듭해 산 사람들조차 서로를 적으로 몬다. 믿을 건 나 자신 뿐인 이 세상에서 나의 이기심 또한 극한으로 치닫을 때, 좀비는 끊임없이 밀려와 이 절망을 확인시켜준다.


살아남는 건 욕심이고, 도망치는 건 시간 벌기에 불과하며, 가족도, 연인도, 친구도, 이웃도 믿을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나야말로 좀비가 아니라고, 좀비와 다르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3. 「킹덤」의 불호; 하나도 안 무섭다


처음 1, 2화는 그럭저럭 섬뜩하기도 하고, 설정도 재밌어서 어서 다음 화가 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고개가 갸웃해지는 장면들이 많아지면서 집중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좀비물에 무지해서 「킹덤」을 꽤 재밌게 봤던 것이란 걸 영화 「부산행」을 제대로 보면서 알게 됐다. 「킹덤」의 좀비들은 너무 쉬워서 하나도 안 무서웠다.


「부산행」의 좀비들은 너무 무서웠다. 물리면 끝이고, 이 세상 진짜 끝났구나 싶어 나 자신이 무력해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킹덤」의 좀비들은, 다시 말하지만, 너무 쉽다. 주인공이 대처하기 쉽게,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연출과 기획과 각본이 짜이기 쉽게 설정된 요소들이 너무 많다.


출처 : 넷플릭스

첫째, 죽이기가 쉽다. 죽이는 방법도 다양하다. 목을 베면 되고, 물에 빠뜨리면 수영을 못해서 익사하고, 불에 태우면 죽는다. 좀비의 매력이자 좀비물의 서사의 핵심은 좀비라는 존재 자체가 죽지도 살지도 않은 걸어 다니는 시체가 끊임없이 몰려와 살아있는 사람들을 궁지에 몬다는 것이다. 어떻게 할 방도도 없이 도망치는 것 밖에는 살아남을 방도가 없다. 존재 자체와 그 존재가 떼로 몰려왔을 때 육체적·정신적으로 짓눌리는 공포심이 자극되는 점이 매력인데, 「킹덤」은 무술을 잘하는 사람들의 화려한 액션신이 오히려 좀비물 특유의 공포심을 희석시켜 버렸다. 이때부터 더 이상 이 드라마는 좀비물을 포기하고 주인공 세자와 영의정의 권력을 잡기 위한 궁중암투극으로 돌아섰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 좀비들은 낮에 움직일 수 없다. 왜인지는 정확한 이유가 (아직?) 나오진 않았지만 개인적인 추측으로 궁중암투극으로서 세자가 지방에서 세력을 키우는 장면이 나와야 하기 때문인 듯하다. 좀비가 계속 움직이고 다니면 세자는 언제 세력을 키워서 영의정을 몰아내고, 서사는 언제 진행시키겠는가. 게다가 이 드라마가 시즌 1에 6화가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할 얘기가 너무 많아서 좀비들이 나오는 시간을 특정해야 하고, 좀비들을 대비하기 위해 준비할 시간도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좀비들이 낮에 움직이는 설정을 만들어 놨는데, 낮까지 버티면 살 수 있으니까 죽을 수 있다는 긴장감이 생기질 않는다.


셋째, 이해가 안 되는 점들이 좀 많다. 왕은 생사초를 먹고 좀비가 됐는데, 좀비가 된 왕한테 물려 죽은 사람들은 왜 좀비가 안 되고, 이 중 한 사람의 시체를 먹은 사람들은 또 왜 좀비가 되고, 이때부터 전염성이 폭발하는 걸까? (스포 주의) 좀비들이 해가 뜨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사실 햇빛을 견디지 못해서가 아니라 밤엔 기온이 낮기 때문에 나타나는 거라는데, 그걸 알게 된 계기가 어느 날 비가 와서라는데, 그럼 계절별로 나타나는 시간이 다른 건가? 아침에 해가 떠도 추울 땐 춥지 않은가? 밤보다 아침에 더 추울 때는 어떡한담?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4. 다음 시즌이 기대되지만 좀비물을 기대하진 않을 것 같다


사실 좀비물이라고 해서 궁중암투극을 그리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코미디든, 공포든, 신파든 여러 장르와 섞여 재밌으면 그만이다. 좀비가 나오는 조선시대를 역사 고증이 제대로 안 됐다며 비판할 생각도 없다. 사실 정통사극이 아닌 이상 고증된 역사를 바라지도 않는다. 콘텐츠는 그 어떤 형태로든 일단 재밌어야 그다음을 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음 시즌은 기대된다. 주지훈 배우와 류승룡 배우의 연기가 비극적이면서 미스테리한 사극 분위기와 너무나도 잘 맞물리고, 그들이 연기하는 인물 간의 충돌이 이 드라마에서 가장 긴장감 넘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너무 명확한 선악구조가 요즘 드라마 트렌드로는 약간 촌스럽기도 하지만 두 배우의 연기라면 그저 보고 싶기만 하다. 그래서 「킹덤」이 그려내는 궁중암투극이 다음 시즌에선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다.


단지 조선시대 좀비를 보고 싶어서 이 드라마를 보고 싶진 않을 것 같다. TV가 아닌 컴퓨터로 실시간 스트리밍도 아닌 콘텐츠는 가차 없이 건너뛰기를 하기 마련인데, 어쩌면 좀비와의 액션 장면을 건너뛸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든다.


앞으로 몇 시즌이나 더 남았는진 모르지만 다음 시즌에서는 좀비가 좀 더 좀비답게 무섭고, 생사초 등 좀비를 둘러싼 설정들이 알기 쉽게(재밌는 방향으로) 설명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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